재현회화의 가능성 - 한운성의 낯선 꽃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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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회화의 가능성 - 한운성의 낯선 꽃 그림
  • 박영택·경기대 교수/미술 평론가
  • 승인 2019.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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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택의 그림이야기]

회화란 주어진 사각형의 화면에 눈속임을 불러일으키는 일련의 시각 장치라고 부를 수 있다. 서구미술사의 경우 르네상스 시대 이후, 그러니까 콰트로 첸토(Quattrocento: ‘1400년대’라는 뜻으로 이탈리아 문예 부흥 초기의 화풍)이래 그림은 외부세계를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주어진 사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서양 회화의 기법을 흔히 환영주의(illusionism)라고 부른다. 외부세계를 충실히 모방하는 것, 그림이 자연과 최대한 닮아야 하며, 따라서 그림은 ‘마치 실제의 대상을 보는듯한 착각을 일으켜야만 한다’는 그림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주어진 자연은 분명 3차원의 세계이고 그것을 모방하는 화면은 2차원의 평면이다. 지난 15세기에서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서양 회화의 유구한 전통은 평평한 표면 위에 3차원의 공간을 집어넣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미술의 환영주의적 방식은 19세기 중엽부터 와해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모더니즘 미술의 등장이 그것이다. 사실 회화란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평면의 물질성 위에 선을 긋고 채색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른바 평면성이 회화예술의 독특하고 배타적인 조건인 셈이다. 이 2차원성은 회화예술이 다른 어떤 예술과도 공유하지 않는 유일한 조건이었기에 모더니즘 회화는 평면성의 강조를 최대한 이슈로 내세웠다. 20세기 미술은 회화의 평면성을 강조하고 따라서 재현은 사라지고 납작한 캔버스의 피부, 물감과 색채, 붓질만이 가득한 추상회화를 드러냈다. 그렇다면 재현이란 애초에 불가능할까? 회화는 오로지 2차원의 평면만을 거느리고 살아야 하나? 사실 회화란 눈속임만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어진 물질적 조건에만 사로잡히는 존재도 아니지 않은가?

▲ 해바라기, Cucurbita Mocschata, 150x150cm, Oil on Canvas, 2017
▲ 해바라기, Cucurbita Mocschata, 150x150cm, Oil on Canvas, 2017

사전적 의미의 재현은 묘사, 상징, 구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어떤 대상의 현존을 전제로, 그것을 다시 보여주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재현이란 단어에는 ‘다시 나타나다 혹은 다시 보여주다’라는 뜻도 내재되어 있다. 재현은 표상이기도 하다. 주체와 대상 사이의 지울 수 없는 거리를 상정한 후, 주체가 대상에 대해 갖는 인식이 다름 아닌 ‘표상’이다. 그러니까 재현이란 ‘이미 있는 것을 다시 있게 하는 것이고 보았던 것을 다시 보여주는 행위’이다. 따라서 그것은 존재하는 대상을 연상하게 하고 추측하게 해준다. 즉 재현이라는 말에는 현상에 대한 부정, 그리고 현상 뒤의 어떤 실체나 본질에 대한 믿음이 내포되어 있다. 더불어 그것은 항상 부재를 환기하는 안타까운 상실감의 정서를 간직하면서 진행된다. 재현적 회화는 보이는 외계의 대상을 극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대상의 모방으로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조형적 재현이 유사를 내포할 수 있지만 닮았다는 것이 전적으로 재현으로만 귀착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서구의 전통회화는 눈에 보이는 외부세계를 강박적으로 재현하려 했고 이후 현대미술은 그러한 전통을 해체한 결과 즉물적인 사물로 귀결되어 끝내 미술이 사라지는 아이러니를 초래했다. 반면 우리 전통회화에서 재현이란 단지 눈에 보이는 가시적 존재의 닮은꼴에 머무는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그것은 오히려 큰 의미가 없는 일이거나 가당치 않다고 보았다. 그림은 가시적 세계에서 비가시적 세계를 보여주는 일이라고 보았다. 그런 기운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그림이었다. 망막에 전적으로 의지한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접한 세계의 기운을 통감각적으로 전달하려는 시도, 어쩌면 현상학적인 체험을 시각화하려는 시도가 아니었을까?

그런 측면에서 동시대 재현회화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가의 하나가 한운성이다. 그의 그림은 항상 단독의 특정 형상이 화면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고 주변은 단색의 색 면으로 마감된 형국이다. 따라서 구상과 추상이 공존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사실적 이미지와 납작한 색 면의 바탕, 재현과 추상 등 이원적 요소가 팽팽하게 긴장감을 이루며 조여져 있는 형국이다. 대단한 일루전을 주는 묘사와 경쾌하고 활력적인 붓질, 짙은 그림자를 거느리며 등장하는 이미지는 단단한 존재감을 구현하며 실존하고 있다. 바탕 면의 하단, 이미지 바로 밑에는 그려진 특정 꽃의 라틴어 학명이 사인과 함께 기재되어 있다. 그것은 흡사 텍스트의 기능을 한다. 그려진 꽃을 지시하는 동시에 그것의 재현을 재확인하고 있다. 그림인 동시에 부정할 수 없는 대상의 재현임을, 그림과 대상이 등가의 관계임을 방증하고 있다.

그가 그린 특정한 꽃은 대상의 중심부로 곧장 육박해 들어가는 시선이다. 오로지 꽃의 내부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된다. 작가는 흔하게 보던 꽃, 그래서 잘 알 것 같지만 볼수록 난해하고 이질감이 도는 꽃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대상은 바라보는 이에게 언제나 타자다. 작가란 존재는 대상/타자를 들여다보는 자이며 그림은 바라본 대상/타자를 드러내는 일이다.

‘드러내기’란 이른바 리얼리티의 추구이자 대상의 정체를 밝히는 일을 말한다. 한운성에게 있어 꽃을 그리는 일은 꽃의 본질을 드러내는 일이고 그것의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분명 꽃의 재현이지만 그것의 기계적 복사, ‘유사’가 아니라 그것의 회화적 이미지로 환생한다. 그림이 사진처럼 대상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생명력 있게 떠내거나 그 존재의 출렁임을 가시화한다. 더구나 떨리는 붓질의 감각적 처리는 동양화의 예리한 필순의 맛, 운필의 운용을 닮았다. 이처럼 한운성은 구상적 표현은 유지하되 재현 형식의 변화를 도모하면서 다양한 선묘와 붓 터치를 활용해 작품이 본질적으로 ‘회화’라는 사실을 부단히 상기시킨다. 이때 손의 감각, 작가의 육체적 감각을 부단히 삽입시킨다. 여기서 붓질은 그림을 이루는 기본 단위인 동시에 눈으로 본 대상을 손을 통해 인식하는 잣대이자 여전히 한 인간의 몸의 실존적 흔적으로서의 기술(記述)에 해당한다. 탈 신체성으로 치닫는 오늘날 문화 속에서 회화는 실존의 마지막 보루를 담당하는 중요한 사례가 된다. 따라서 그 붓질은 여전히 회화의 존재를, 그림 그리는 주체의 자리를 강력하게 진술한다.

한편 그려진 꽃의 종류에 따라 붓 터치는 제각기 다른데 이는 꽃잎의 질감, 두께, 그리고 꽃에 대한 작가의 느낌과 인상에 따른 감각의 차이를 반영한다. 주의 깊게 표면을 보면 그림은 상당히 ‘경제적’으로 이루어졌다. 애초에 바탕색이 결정된 상태에서 그 위에 약간의 물감을 입혀서, 붓질을 가해서 그려나간 경우나 캔버스 생전을 그대로 살려 예민하고 가볍고 투명한 꽃잎을 재현하는 경우 등을 볼 수 있다. 꽃의 이미지는 손에 의해, 붓질의 흔들림과 격렬하고 감각적인 운동 속에서 ‘생성’되고 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꽃은 원본의 꽃과는 또 다른 꽃, ‘회화적 이미지’가 된다. 생명 과정 자체를 그대로 추적하고 있는 그리기, 혹은 생명체의 조직과 그 섭리를 그림으로 반영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림의 멋으로 충만한 채, 암수가 한 몸으로 들러붙은 식물성의 세계가 삶과 죽음을 동시에 거느리면서 눈앞에서 자지러지게 피어있거나 쇠락해간다. 생의 한 절정과 끝을 처연하게 보여주고 있다.    


박영택·경기대 교수/미술 평론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 퀸스미술관에서 큐레이터 연수를 마쳤다.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를 거쳐 1999년부터 현재까지 경기대학교 서양화·미술경영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시분석, 미술비평, 큐레이터십, 이미지 읽기, 현대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식민지시대 사회주의미술관의 비판적 고찰」 「한국 현대동양화에서의 그림과 문자의 관계」 등이, 저서로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 『테마로 보는 한국 현대 미술』을 비롯해 다수가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서울시립미술관 운영위원, 한국미술품감정연구원 이사, 정부미술품 운영위원, 아트페어 평가위원, 2020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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