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기록하는 역사 - 박찬순의 소설 『검은 모나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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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기록하는 역사 - 박찬순의 소설 『검은 모나리자』
  •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문학
  • 승인 2023.08.0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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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의 역사적 배경이 1789년의 프랑스 대혁명이 아니라 1832년에 일어난 6월 봉기라는 사실을 이제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다. 6월 봉기는 대혁명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수의 희생자를 내고 역사 속에서 사라진 작은 사건으로 여겨졌다. 위고가 이 작은 사건을 되살린 이유는 그것이 실패한 혁명이었기 때문이다. “성공한 혁명을 기록하는 것이 역사가들의 몫이라면 반대의 경우는 작가의 몫일 것이다”라는 언급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박찬순의 소설 『검은 모나리자』(강, 2023)를 소개하려다가 시작부터 너무 거창해졌다. 이태원 참사, 지하철역 스크린도어 참사, 코로나19 희생자들, 모두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다. 그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사건은 없지만 100년 뒤의 역사서에는 남아 있지 않을 작은 기록이 될지도 모른다. 소설가 박찬순의 신작 소설집 『검은 모나리자』는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고 저마다의 상처로 남은 사건들을 허구적 소설로 기록하고 있다. 앞의 사건 대부분이 현재 진행형이고 우리의 기억 속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만큼 이 기록은 소설가의 글쓰기라기보다는 ‘르포르타주’를 방불케 한다. 또 한 가지, 이 소설의 미덕은 영정 없는 희생자나 대구의 41번째 환자로 남을 수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려내고 그들의 삶을 되살려낸 데 있다.

첫 번째 소설 「검은 모나리자」는 지난 몇 년 사이에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파리에 사는 콩고 출신 소년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 알제리계 17세 소년 ‘나엘’을 떠올리게 하는 아둠은 음식 배달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으며, 주차된 차에 불을 붙이는 ‘불놀이’에 빠져들 수도 있는 이민자이다. 아둠은 미셸 투르니에의 소설 『황금 물방울』에 등장하는 사하라에서 온 소년 이드리스가 도시문명으로 상징되는 현실 너머의 이미지의 세계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듯이 ‘검은 모나리자’를 그리는 것으로 고향의 시간과 공간, 사람들을 되살리려 한다.

「네가 떠난 그 자리에서」는 이태원 핼러윈 축제 때 압사당한 이란 유학생 라일라의 사연을 담고 있다. 주인공인 내가 그녀의 죽음에 더 마음 아파하는 이유는 그녀가 나의 권유로 서울로 유학을 온 테헤란의 대학생이었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 외국인 희생자 26명 중 이란인이 5명이었다는 사실은 보도를 통해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중 라일라와 같은 소녀가 K-POP과 ‘대장금’에 열광하는 테헤란의 젊은이 중 한 사람일 수 있다는 사실은 이 소설 이전에는 실감하기 어려웠다. “히잡을 내던지고 한강변에서 자전거를 타고 씽씽 달리던…테헤란 소녀”의 죽음은 ‘나’의 죄의식을 넘어 모두의 슬픔으로 기억된다. 

                      박찬순 작가

「신 테트리스 게임」과 「팽이 돌리는 소년」은 각각 택배 노동자의 삶과 지하철 스크린도어 수리 노동자의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대학이 아닌 사회에서 노동자의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젊은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취직은 했어도 그냥 뭔가 허전하고”, 높은 월세와 식비에 끼니를 거른다는 대학생들을 부러워할지도 모르는 또 다른 10대, 20대 청년이다. ‘나’는 서울 광화문 근처의 공공미술 작품인 해머링 맨, 일명 망치 아저씨를 볼 때마다 느려 터진 속도로 일을 하는 사람이 노동자의 상징은 될 수 없다고 믿는다. 이 두 소설을 읽다 보면 소설가의 르포르타주 작가로서의 면모를 엿보게 된다. 테트리스에 비유되는 택배 회사 물류 센터의 상하차 작업과 컨베이어벨트 위에서의 분류작업은 물론 ‘고제총출(고객 제일 총알 출동)’을 모토로 지하철역 사고 현장에 나가 ‘PSD(플랫폼 스크린도어)’ 정비공으로서의 현실에 이르기까지 현장 취재가 아니면 쓸 수 없는 내용들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이다.

200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소설가 박찬순은 그동안 『발해풍의 정원』에서 『암스테르담행 완행열차』까지 현실에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기억과 기원을 넘나드는 상상력, 디아스포라적 삶을 이국의 공간을 배경으로 변주하는 글을 써왔다. 물론 정확하면서도 품격 있는 언어의 사용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작가가 현실의 사건에 이만큼 주목하고 역사의 허구적 기록으로서의 소설을 쓴 것만큼은 놀라운 변신이다. 어느 시대나 큰 사건은 있었고 누군가에게는 그 사건이 삶을 뒤흔들어 놓을 정도로 충격을 주었을 것이지만 지난 3년간 우리가 겪은 코로나19와 사회적 참사는 트라우마로 남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결코 가볍지 않았다. “타인의 고통에 감응하는 순간들이야말로 문학이 선물하는 가장 아름다운 꽃향기”라는 작가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어떤 더 큰 동인이 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는지 궁금해진다.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문학

건양대학교 휴머니티칼리지 교수. 서울대 대학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양대 휴머니티칼리지 브리꼴레르 학부 학부장과 박범신 문학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란 무엇인가』, 『투르니에 소설의 사실과 신화』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 『살로메』, 『춤추는 휠체어』, 『까미유의 동물 블로그』,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칸트 편』, 『데카르트의 사악한 정령-데카르트 편』, 『녹색 광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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