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문자가 얽힌 한국사를 탐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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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문자가 얽힌 한국사를 탐색하다
  • 장지연 대전대·한국사
  • 승인 2023.08.06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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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 (장지연 지음, 푸른역사, 188쪽, 2023.06)

 

“한문이 말하지 못한 한국사”라는 책 제목을 들으면 대부분 “아, 한글을 중심으로 한 한국사 얘기겠군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한글의 형성사나 결과를 얘기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표지 이미지를 보자. 이는 『중간진언집』이라는 자료로, 조선 후기에 간행된 불교의 진언을 모은 책이다. 이 이미지의 흥미로운 점은 당시 우리나라에서 사용된 문자들이 다 나와 있다는 점이다. 한문(한자), 훈민정음, 산스크리트어를 표기한 범자, 그리고 차자(借字) 표기법의 일종인 구결까지.

흔히 우리는 전근대 한국사의 사료라고 하면 조선왕조실록 같은 한문 자료만 상상하기 쉽다. 조금 더 하면 이두문이 쓰인 고문서를 생각할 수 있고, 고전문학을 떠올린다면 한글 자료 정도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훈민정음이 창제된 것은 겨우 60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그 훨씬 이전인 삼국시대부터 훈민정음이 창제된 이후에도 조선 말까지 향찰, 구결, 이두같이 한자의 뜻과 음을 사용해서 우리말을 표기하는 여러 종류의 차자 표기법이 사용됐다. 약 1,400년 정도의 세월이다. 범자는 불교의 문자로 고려시대까지 꽤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고, 『중간진언집』에서 볼 수 있듯이 억불을 당했다고 하는 조선시대에도 살아남아 있었다. 우리 역사상의 문자는 단지 한자/한문과 한글만이 아니었다.

이처럼 이 땅에서는 여러 문자가 다양하게 섞여 사용되었고 계층이나 젠더에 따라 사용하는 문자가 달라지기도 했으나 총체적으로는 그러한 사람들이 섞여 살았다. 한 발 더 떨어져 본다면 문자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20세기 보통교육이 일반화되기 전까지는 세계 어디에서나 소수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비문자 및 여러 문자의 세계를 통합적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 역사학, 문학, 언어학, 종교학 등의 분과로 쪼개져 자기 분과 자료 보기에도 급급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러한 한계를 넘어 여러 문자가 섞여 사용된 과거를 새로운 시각으로 통합적으로 살펴보자는 시론을 담고 있다. 이는 과거의 실재가 언어/문자를 통해서만 현재의 우리에게 전달될 수 있다는 점, 다른 언어/문자는 다른 실재를 보여줄 수도 있다는 가정에 기초해 있다. 만주문 자료에 대한 역사학자의 감수성이 한문 자료로는 파악할 수 없었던 신청사를 연 것처럼 말이다.

 

책의 처음은 문자로 남지 않거나 그 표기법이 단절되어 사라진 지식이나 정보는 없을지, 정말 다른 문자는 다른 세계를 보여줄지를 탐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인류 역사 대부분은 말의 세계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사라진 세계가 훨씬 클 것이라는 건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상상해보긴 힘들다. 한편 한문과 한글의 세계 역시 대비해보았다. 신분별 등급, 천자국, 제후국 등의 국가의 등급에 따라 사용할 수 있는 글자가 엄밀하게 구분되는 한문과 그렇지 않은 한글의 세계, 한문 자료와 한글 자료의 같은 장소에 대한 서로 다른 묘사 등을 살펴보았다.

두 번째 장에서는 훈민정음 창제 이전, 차자 표기법이 사용되던 고려 시대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삼국시대부터 한문이 보편문어이자 외교적 수단으로 사용되기는 하였으나, 이것만이 절대적인 위상을 차지한 것은 아니었다. 불교의 문자인 범자에 대비한다면 한문 역시 번역어였으며, 차자를 이용한 노래인 향가의 위상도 만만치 않게 높았다. 향가, 그리고 이를 향유하는 국선(화랑)과 불교계의 문화는 단지 삼국시대만이 아니라 고려시대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고려 500년 동안 몇 차례의 변곡점을 거치며, 이러한 문화가 변화했다. 특히 원 간섭기를 거치며 한문 이해도가 높아졌는데, 이는 몽골 제국 안에서 고려인이 교류와 소통의 수단으로 한문의 유용성을 확인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해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시기를 거치며 차자 표기법을 통한 우리말을 소리나는 대로 적는 방법이 거의 형해화되었다는 점이었다.

세 번째 장과 마지막 장에서는 훈민정음의 창제와 그것이 가져온 결과를 여러 가지로 제시해보았다. 한글은 식민지 시기를 거치며 근대 한국 민족을 탄생시키는 결정적인 구심점이었다. 문제는 이 때문에 근대 한글에 투영한 감정이 15세기 세종대 훈민정음까지 소급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선악이나 우열의 구도로 훈민정음 창제의 배경이나 의도를 파악하고, 선한 창제자와 악한 반대자라는 이분법으로 파악하려는 것은 이러한 감정에서 비롯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당대로 돌아가보면 훈민정음의 창제 자체는 그렇게 특별한 사건이 아니다. 중국 당나라 이후 세워진 중국 주변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자기 문자를 만들었다. 서하, 거란, 여진, 몽골, 후대의 청까지 모두 그러했다. 이는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수반된 작업이었다.

우리는 이른 시기부터 차자 표기법으로 우리말을 표기해왔으나 조선이 건국됐을 무렵 이는 형해화된 상황이었다. 동아시아의 시대 흐름을 본다면,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는 조선 건국 후 언제고 일어날 법한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특별한 점은 세종의 기획이 단순히 나라의 행정을 다지기 위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는 점, 문자의 만듦새가 매우 훌륭했다는 점이다. 불교와 유교 경전의 언해를 도모하고 한자의 발음을 바로 잡는 것은 현실의 어떤 중국 왕조를 모범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이상적인 문명을 겨냥한 것이었다. 조선 시기 내내 훈민정음 보급이 장려된 것도 아니었고 말과 글이 금지된 식민지 시기까지 거쳤음에도 한글이 살아남은 것은 그 만듦새를 떠나서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처럼 어떤 사건의 배경과 그 사건을 초래한 인물의 의도는 구분해서 봐야 한다. 더구나 그 사건의 결과는 더욱 구분해야 한다. 결과는 의도보다 대체로 크며, 때로는 결과가 의도를 배반하기도 하며,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세 번째 장에서 다룬 남은 이야기는 훈민정음이 의도한, 혹은 의도하지 않은 부문을 탐색한다. 아마도 세종이 의도했을 ‘배운 사람들’의 증가, 의도였으면서 동시에 결과일 수도 있는 우리말 표음적 표기의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 

마지막 장에서는 한글을 중심으로 새로운 연구의 주제나 소재가 될 만한 부분을 제시해보았다. 우선 일반적으로 한문은 남성, 한글은 여성이라는 이항 대립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제기했다. 한글은 문자 교육의 기초였고 사대부 남성 역시 한글을 많이 사용했다. 임금도 가족과 스스럼없이 한글 편지를 주고받는 시대에 박지원처럼 한글을 배우지 않은 이가 오히려 예외적이었다. 사대부 남성의 한문과 한글에 대한 태도를 통해서는 감정사 연구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반면 여성의 한글 사용 사례를 통해서는 이들이 정치적, 법적 주체로 자신들의 자리를 마련해가는 데 한글을 어떻게 이용하였는지를 다루었다. 이와 동시에 조선의 정치사를 한문 자료를 남기는 남성들의 부면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한글을 활용한 정치를 하는 여성들을 포괄하여 보아야 한다는 점을 제기하였다. 여성의 행위주체성을 보는 관점, 젠더화된 문자 생활을 살펴보는 관점, 젠더사를 보는 관점 등을 환기한 것이다.

이와 함께 새로운 욕망의 발생, 애착의 변화, 친족의식의 공고화, 몸에 새겨진 규율의 해체 등 여러 가지 문제를 제기해보았다. 여기에서는 문자생활을 통해 이러한 주제들을 제기해보았지만, 이들 주제는 문자 이외 다양한 통로를 통해 탐구해볼 만하다.

이 책에서는 글쓰기에서도 여러 가지 도전을 했다. 개인사나 구어를 많이 섞은 점이 대표적이다. 대중에게 한 걸음이라도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역사학은 물론, 거의 모든 학문 분과가 좁고 깊게 전문화되는 동안 대중은 점점 학문의 첨단으로부터 유리되고 있다. 그 틈새를 전달력이 좋고 미디어 영향력을 얻은 비전문가가 파고들었다. 문제는 이들이 전문적인 업계와 대중을 연결해주는 징검다리의 역할보다는, 의식적/무의식적인 이데올로기적 선동에만 열중하거나 통속적인 구세대 담론만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에게 빼앗긴 대중을 전문 연구자가 찾아올 수는 없을까? 이 책의 글쓰기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비롯한 하나의 시도이다. 

논문이 아니라 대중도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책, 그러면서도 한국사 연구의 최첨단을 보여주자는 것이 이 책이 자리 잡은 <금요일엔 역사책> 시리즈의 기획의도였다. 저자로서 이러한 기획의도에 충실히 호응하고자 했으나, 얼마나 달성되었을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대중이 ‘한국사도 새롭네?’라고 느낀다면, 연구자들이 자기 우물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영감을 얻고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고민해보는 계기가 된다면, 일단 이 책의 저술 의도는 일차적으로 달성됐다고 하겠다. 그러나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결과는 의도와 일치하지 않는다. 질문으로 마무리한 이 책의 마지막은 이 책이 더욱 큰, 혹은 저자는 미처 의도치 않은 결과를 불러오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항상 정답보다는 질문이 더 중요하다.


장지연 대전대·한국사

대전대학교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원,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조선의 한양과 고려의 개경을 중심으로 궁궐을 비롯한 수도 계획 전반에 대해 연구해 왔으며, 언어와 의례, 이념을 통해 공간의 역사성을 살피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은 책으로 《고려 황도 개경》(공저), 《고려․조선 국도풍수론과 정치이념》, 《경복궁 시대를 세우다》가 있으며, 유본예의 저서를 역해한 《한경지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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