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인문학, 한국을 넘어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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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인문학, 한국을 넘어 세계로”
  • 이재연 UNIST·한국문학
  • 승인 2023.08.05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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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참가기]

 

지난 7월, 오스트리아의 작은 대학도시 그라츠(Graz)에서는 큰 행사가 있었다. 10일부터 14일까지 각국 디지털 인문학 단체의 공동조직인 “디지털 인문학 단체연합”(Alliance of Digital Humanities Organizations, 이하 ADHO)의 연례학술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디지털 인문학의 가장 큰 세계조직인 ADHO의 연원은 1973년 유럽 디지털 인문학 협회(European Association for Digital Humanities, EADH)의 창설로 올라간다. 여기서 미국기반의 전산 인문학 협회(Association for Computers and Humanities, ACH)가 연합하면서 그 뒤에 캐나다, 호주, 일본 등 여러 나라를 대표하는 디지털 인문학(이하 DH) 단체가 가입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이번에 그라츠에서 열린 행사는 한국의 디지털 인문학 협의회(Korean Association for Digital Humanities, KADH, 회장 박진호)에게는 매우 뜻깊은 자리였다. 학술대회 기간에 있었던 총회를 통해서 한국이 ADHO의 열세 번째 기관회원(Constituent Organization)으로 승인을 받았기 때문이다. 2018년에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김현 교수를 위시한 한국의 디지털 인문학자들이 시작했던 신청절차가 코로나 시국과 같은 여러 어려움을 겪고 드디어 마침표를 찍은 것인데, 학술대회 개막식에서 ADHO 이사회 회장이 한국의 승인을 알렸고 한국에서 대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박수를 받았다.

 

ADHO내 여러 협의체는 각국의 대표가 참여하는 민주적 조직이다. 각 나라의 문화적 언어적 젠더적 다양성을 기반으로 이를 확대하는 한편, 기술 결정 주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CO가 된다는 것은 바로 세계의 디지털 인문학 단체에서 각국을 대표하여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2025년의 세계대회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개최하기로 결정되었는데 필자는 한국의 기관회원 승인 전, 신청인 자격으로 배석하여 그 과정을 참관하였고 이뿐만 아니라 다른 회의에 참석하여 어떻게 이렇게 큰 조직을 운영하는지 간접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기관회원에 가입하면서 국제 교류의 물꼬가 터졌다. ADHO가 KADH를 공식 승인한 이후, 일본의 JADH의 회원들이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모짜르트 초콜렛”과 장미를 들고 찾아와 우리의 CO 가입을 축하해 주었다. 저녁 식사를 함께하고 담소를 나누며 (동)아시아 DH의 협력과 교류를 위해 논의를 시작하자고 의기투합하였다. 이러한 교류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일본과 매년 정례교류 또 아시아 DH의 지속적 교류가 그것인데 이 아시아 교류에는 타이완의 TADH, 일본의 JADH, 이번에 한국과 함께 CO로 승인된 인도의 DHARTI, 또 ADHO의 기관회원은 아니지만 싱가폴에서 연구하는 학자들이 함께하여 교류의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 이러한 국제 교류가 어떠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지 크게 기대된다.

 

ADHO 연례행사는 800명 이상이 모인 큰 학술대회로, 이틀간의 사전 워크샵과 사흘간의 본행사로 구성되었다. 오전 혹은 오후 반나절이나 오전과 오후를 포함하는 한나절 워크샵에서는 최근의 기술의 반영한 프로그램 구동법, 세계의 학자들과 협업하는 방식, DH 관련 새로운 저널의 소개 등을 통해 디지털 인문학의 초심자와 전문가들이 서로의 관심사를 함께 나누었다. 예를 들어, 최근의 기계학습을 반영한 광학문자인식(OCR) 및 필기인식(HTR) 워크샵에서는 수기로 작성된 프린트 자료에서 코퍼스를 추출하여 분석하는 과정을 시연하였다. 세계의 각 지역을 연결하여 인문학-공학자들이 협업하는 방식에 관한 워크샵도 있었고, 『프로그래밍하는 역사가들 Programming Historian』과 같은 대안적 학술지에 저자나 심사자로 참여하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물론 전산 문체론(stylometry)과 같은 특정 분야에서 어떤 분석이 가능한지 초심자에게 설명해 주는 친절한 세션도 있었다.  

같은 시간대에 일곱 개의 세션이 동시 발표된 본 행사는 그야말로 DH 연구의 향연이었다. 7개의 주제가 따로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네트워크 분석, 통계분석, 전산문체론, 기계학습, 데이터 시각화, DH 교육 등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데이터 분석의 사례와 고민이 제시되었다. 여러 발표 중 특히 눈길을 끌었던 세션은 일리노이 주립대의 테드 언더우드(Ted Underwood)가 발표한 프로젝트였다(패널 제목: “Reception History in Many Dimensions: New Research on Book Reviews”). 여기서는, 어떤 작품이 아방가르드라는 특정 장르로 분류된 현상이 작품의 내재적 특질 때문인지, 출간 이후의 비평에 의해 구성된 것인지를 묻는다. 한 작품의 참신함 속에서 시대를 앞선 문학적 조숙성(precocity)을 찾고 이를 수량적 지표를 통해 변별해 내는 작업이 발표의 핵심이었는데, 꼼꼼히 읽기로는 생각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구해가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한국 학자들의 발표는 한 팀이 있었다. 필자가 참여하고 있는 “네트워크형 디지털 인문학 교육 모델 개발” 팀(한림대 김용수, 한양대 문수현, 가천대 류수린, 홍익대 배병철, UNIST 김형훈)이 “Beyond the Boundaries of Individual Universities: Allegiance to Digital Humanities Education in Korea”라는 제목으로 발표를 했다. 개별 대학의 경계를 넘어서 DH 수업을 개발하고 개방하는 과정, 각 수업의 내용, 개발과정 상 어려움과 기대효과에 관해 설명하여 한국의 DH 관심이 있는 학자들의 교육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우리 팀이 계획하는 네트워크형 교육 모델을 한국뿐만 아니라 해외의 DH 교육프로그램과 연계하면 좋겠다는 반응도 들을 수 있었다. 
  

올해의 일본 참가자 중 특히 대학원생들이 많아서 놀랐다고 JADH 관계자에게 얘길 했더니, 큰 미소를 지으며 답을 한다. “일본의 대학, 특히 도쿄대에서는 10년 이상 DH 교육에 투자했습니다. 아마 그 노력의 결실이 지금 나타나는 모양입니다.” 그 미소는 그간의 노력을 이웃 나라의 학자가 알아주었다는 느낌 때문이리라. 개인이나 집단 차원의 DH 연구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변화시킬 교육은 더더욱 중요하다. 제도화되지 않은 연구는 10년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의 DH 대학원생들이 세계를 누비며 연구하고 소통할 날을 꿈꿔본다. 내년의 ADHO 연례학술대회는 미국의 워싱턴 D.C.에서 열린다. 

 

이재연 UNIST·한국문학

UNIST 인문학부 교수.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를, 시카고 대학에서 한국문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식민지시기 소설과 비평, 신문과 잡지 매체에 관심이 있고 디지털 인문학의 이론, 사례,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문학 내 수량적 분석의 방법론을 제시한 프랑코 모레티의 『그래프, 지도, 나무』(문학동네, 2020)를 옮겼고, 수량적 분석을 통해 한국 근대 작가의 형성을 살펴본 Formation of Periodical Authorship in 1920s Korea: Distant and Close Reading(Routledge, 202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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