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다 하루키 “나의 한국전쟁 연구를 회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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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하루키 “나의 한국전쟁 연구를 회고하며”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8.0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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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초청 강연

 

지난 1일 서울 서대문구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열린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학 명예교수의 초청 강연회 /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정전 70년을 맞아,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2권이 완역되어 출판되는 등 한국전쟁 연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저서 《한국전쟁 전사》의 한국어판 출간을 계기로 서울을 방문한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학 명예교수를 초청하여 8월 1일(화) 15시 재단 11층 대회의실에서 ‘나의 한국전쟁 연구 회고’를 주제로 강연회를 개최했다.

와다 교수는 소련·러시아사 및 남북한 현대사 등 동북아 국제관계사 연구자이자, 한국 민주화 운동을 지원했고 한일 역사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 온 일본을 대표하는 행동하는 진보 지식인이다. 한국에서도 그 공로를 인정받아 김대중 학술상, DMZ 평화상, 만해상 등을 수상했다. 와다 교수는 1990년대 이후 공개된 미국 국무부, 첩보 기관의 기밀문서는 물론이고 러시아(구소련)와 중국의 관련 자료, 미국이 노획한 북한 자료를 망라하여 《한국전쟁 전사》(이와나미 서점, 2002)를 발간했다. 그 외 주요 저서로는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1992), ‘한국전쟁’(1999), ‘북조선’(2002), ‘한일 100년사’(2015), ‘북한 현대사’(2014),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2016), ‘아베 수상은 납치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2018) 등이 있다.

 

■ 《한국전쟁 전사》 … 정전 70년 맞아 한국전쟁 연구 성과 총괄

한국전쟁이 정전협정으로 멈춘 지도 어느덧 7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간 몇 차례 화해 무드가 조성되기도 했으나, 남북 관계는 여전히 갈등과 대립을 지속하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평화보다는 전쟁 쪽으로 무게가 더 기울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전쟁을 재고찰하고 그 결과와 의미를 되새겨 보는 것은 한반도에 평화를 구축하고 새로운 세기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일이다.

김일성과 스탈린, 마오쩌둥은 왜 남침을 계획했을까? 미국은 북한의 침략 계획을 몰랐을까? 미국이 원했던 것은 한반도 통일이었나, 현상 유지였나? 남북한, 미국, 소련, 중국, 일본, 타이완은 한국전쟁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했을까? 중국은 이 전쟁을 왜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 주장했을까? 

와다 교수가 한국전쟁 정전 기념일 70주년(7월 27일)을 맞아 내놓은 《한국전쟁 전사》 한국어판은 교수 스스로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마지막 책”이라고 평가할 정도로 방대한 자료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전사(全史)’라는 제목이 무색하지 않게 한국전쟁의 발발 전부터 1953년 7월 정전협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남북한은 물론 미국과 중국, 소련, 일본 등의 사료에 근거해 써내려갔다.

한국전쟁 관련 기밀 자료는 소련이 해체된 1990년대 이후 공개되기 시작했다. 그 후로 국내외에서 한국전쟁과 관련하여 수많은 연구가 나왔으나, 한국전쟁의 전모를 종합적으로 다룬 ‘전사(全史)’라고 할 만한 것은 드물었다. 한국전쟁에 관여한 여러 국가의 언어로 된 사료를 해독하고 이해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와다 교수는 미국 국무부와 첩보 기관의 기밀문서, 암호전보, 러시아(구소련)와 중국의 전쟁 관련 자료, 미국이 노획한 북한 자료 등 지금까지 공개된 수많은 자료를 총망라하여 한국전쟁의 전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냈다. 

존스홉킨스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이자 미국 우드로윌슨국제학술센터 연구책임자인 캐스린 웨더스비는 이 책을 “지금까지 출판된 한국전쟁사 서적 중에서 가장 포괄적이며 균형 잡힌 책”(the most comprehensive and balanced single-volume history of the Korean War yet to be published)이라고 호평했다. 한국전쟁의 전모를 진보와 보수의 논리가 아니라 오로지 1차 사료에 근거하여 구체적이고 객관적으로 서술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71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연구서지만, 한국전쟁을 입체적으로 보여주어 마치 재미있는 소설을 읽는 듯한 몰입감을 준다.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일본의 불법 점령에서 벗어났다. 그 기쁨도 잠시, 냉전체제 속에서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 양국에 의해 남북으로 분할 점령되었고, 결국 남북에 별개의 정부가 수립되기에 이르렀다. 서로 한반도의 유일한 정통 국가라고 주장하는 두 개의 국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탄생하면서 분단이 공식화되었다. 중국과 소련의 원조로 군사력을 갖추게 된 북한은 국내외 정세 변화에 고무되어 무력통일을 기도했고, 1950년 6월 25일 기습적으로 남침을 감행했다. 이렇게 한반도 안의 특수한 내전으로 시작된 한국전쟁은 유엔군, 중공군까지 참전하며 국제전 양상으로 바뀌어 갔다. 소련의 스탈린은 크렘린궁에서 비밀리에 전쟁을 지휘했으며, 일본은 한국전쟁 특수를 톡톡히 누리면서 미국의 병참 기지 역할을 했다. 타이완은 한국전쟁에서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고 미국으로부터 자국의 안전을 충분히 보장받는 등의 이익을 누렸다. 이처럼 한국전쟁은 남한과 북한 간의 전쟁인 동시에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의 전쟁이기도 했던, 다양한 국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던 전쟁이었다.

와다 교수는 한국전쟁을 ‘동북아시아 전쟁’으로 규정했다. 이 책은 한국전쟁을 세계적 관점에서 바라보며, 전쟁의 발발 배경부터 1953년 7월 정전협정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방대한 자료에 근거하여 빈틈없이 제시하고 있다. 그는 한국전쟁이 발발하기까지의 원인과 상황, 한국전쟁이 남북한과 미국, 소련, 중국, 일본, 대만에 주는 의미, 한국전쟁이 이후 동북아와 세계 질서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는 데 방점을 뒀다. 또 김일성이 스탈린을 집요하게 설득해 남침 승인을 받아내는 과정, 1949년 말까지 김일성의 남침 제안을 거절했던 스탈린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게 된 배경, 북한이 소련의 지원을 받아 남침을 준비하고 1950년 6월 25일 군사작전을 시작하는 구체적인 과정 등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또 중공군이 전쟁에 개입하는 과정, 소련 공군이 중공군으로 위장해 참전했던 이유와 중공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전진을 멈춘 이유, 정전협정을 둘러싼 북한과 중국, 소련의 갈등, 소련과 북한이 실패로 끝난 한국전쟁을 마무리하기 위해 내부에 적을 만들어 책임을 전가하는 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냈다.

그러면서도 이승만 발언, 미국 문서 등을 토대로 이승만 역시 무력으로라도 통일해야 한다는 지향점을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북한과 별 차이가 없었음에 주목하여 그 사실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이승만이 독자적으로 반공포로를 석방하는 등 미국과 충돌한 양상, 미국이 한때 쿠데타를 통해 이승만을 물러나게 할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 이승만이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과정도 기술되어 있다. 또한 한국전쟁에 관여한 각국 지도자들의 정책 결정 과정뿐만 아니라 개인적 심리 상태와 스타일까지 엿볼 수 있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지난 1일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열린 초청 강연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제공<br>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지난 1일 동북아역사재단 대회의실에서 열린 초청 강연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동북아역사재단 제공

■ “나의 한국전쟁 연구를 회고하며” … 좌우의 논리를 넘어 제3자적 시점에서

6ㆍ25는 한국에선 한국전쟁, 북한에선 '조국해방전쟁', 일본에선 조선전쟁, 영어권 일각에선 잊혀진 전쟁으로 불린다. 그만큼 특정 관점에서 일방적으로 바라보면 곡해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와다 교수의 이번 저작은 그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 했다는 점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그가 특히 강조한 것은 "정전 협정 70주년이지만 이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는 메시지였다. 이어 "전쟁의 지속으로 인한 특수한 적대 상태로 인해 십자가를 짊어지는 사람들은 결국 남북의 사람들"이라며 "이웃 국가들은 (전쟁의 종식을) 도와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번 강연회에서 와다 교수는 자신의 한국전쟁 연구를 회고하면서 한국전쟁의 핵심 쟁점에 대한 견해를 다시 한번 밝혔다. 와다 교수는 한국전쟁을 남한의 내란 상황의 연장으로 보는 브루스 커밍스와는 달리, 그의 1990년 논문, 1995년 책, 2002년 책 등, 모든 저서에서 한국전쟁의 기원을 1948년 남북에서 두 국가가 탄생한 것에서 찾았다. 

“한반도에 통일 독립 국가를 수립하겠다는 민족의 염원은 좌절됐고, 1948년 8월부터 9월에 걸쳐 이 땅의 유일한 정통 국가라 주장하는 두 개의 국가가 한반도의 서울과 평양에 탄생했다. …  이 두 국가의 출현은 단순히 38선을 경계로 남과 북에 다른 국가가 탄생했다는 것이 아니었다. 한반도 전역을 자국의 영토라 주장하고 상대방을 자국 영토의 일부에 자리 잡은 외국의 괴뢰로 치부하는 대항적인 두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남북 모두에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상대 국가를 제거한다는 목표를 갖도록 했다.” (《한국전쟁 전사》 41, 42쪽)

그는 북한이 먼저 무력 통일을 시도했고, 남한과 유엔이 그 바통을 이어받았으나 둘 다 실패하면서 막대한 인명 손실과 국토 파괴, 분열의 심화를 초래했다고 봤다. 무력 통일은 두 번 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될 비극이라는 것이 와다 교수 주장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평화 체제를 향해 나아가는 데에 무엇이 부족했던 것일까. 와다 교수는 2020년 발표한 논문 「공통의 한국전쟁 상을 찾아(共通の朝鮮戰爭像をもとめて)」에서 “전쟁에서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사람들이 전쟁에 대한 공통 인식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반성과 사죄의 정신으로 전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전쟁에 대한 공통 인식 없이는 진정한 평화를 향해 도약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남과 북이 공통된 한국전쟁 상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남북의 역사학자들이 연구에 더 한층 매진하고 끈기 있게 토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와다 교수가 강조한 것은 남과 북의 대화 필요성이다. 현시점에서의 남북 대화가 어려운 점은 누구보다도 그가 더 잘 안다. 그럼에도 그는 "남과 북이 전쟁에 대해 인식을 공유하고 반성하는 것은 어렵지만 5년, 10년을 끈기있게 계속하면 변화는 틀림없이 온다"는 말을 남겼다.

한편, 이날 국내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와다 교수는 "대화가 어렵긴 하지만 중요한 건 믿는 마음"이라며 "현재 남북 대화가 어렵다면 일본 등을 참여시키거나, (비교적 갈등 소지가 적은) 고대사 연구부터 추진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그러나 호응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제로에 가깝다. 와다 교수 역시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 등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그는 "북한이 어디에서 자금을 융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계속해서 핵무기를 개발하고 미사일을 발사하는 상황"이라며 "북한과 미국의 지도자들의 오판으로 인해 또 다른 전쟁이 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심화하면서 이 또한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점쳤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한반도에서 벌인다면 미국과 중국은 살아남겠지만 남북 뿐 아니라 일본의 모든 사람들은 끝장이다"라며 "꼭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맥락에서 그가 강조한 것은 한ㆍ미ㆍ일 공조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미국과의 삼각 공조를 잘 구축하고, 그 안에서 미국이 중국에 과도한 적대시 정책을 펴지 않도록 설득하며 안정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며 "미국과 중국 나아가 러시아의 대립의 최전선에 서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한국과 북한 그리고 일본"이라고 강조했다.

한ㆍ일 관계 관련해서 그는 "일본에 대해선 추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頭をなでる)'는 일본어 표현과 같은 행동도 필요하다"며 "추궁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은 변하기 어렵고, 다른 접근방법도 시도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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