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tGPT를 넘어 인문코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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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를 넘어 인문코딩으로
  • 박충식 유원대학교·인공지능
  • 승인 2023.07.30 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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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인문코딩”은 생소한 단어의 조합이다. “인문학”과 “코딩”이라는 단어 조합이 있지만 이것은  2012년 미국 code.org로부터 시작된 코딩 학습 열풍 이후 등장한 것으로 기억한다. 전 세계를 강타한 코딩 교육은 이제 컴퓨테이셔널 씽킹(computational thinking, 컴퓨터 사고)이라는 이념으로 한국의 정규교육과정으로 들어와 있다. “코딩”이라는 단어와 함께 오르내리는 “인문학”이라는 단어는 코딩으로 치닫는 세태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고, 또는 함께 하기 위한 호응이기도 하다. 이 단어 조합은 인문학 전공자들이 코딩 교육을 받는다거나, 코딩에 인문학적인 소양이 필요하다는 논의에 등장하기도 하였다.

그 이전 “빅데이터”가 버즈워드로 떠오르던 때는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공학기술과 통계학 분석이 안정되면서 숫자들 속에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어 매스미디어 등의 인문학 전문가들이나 인문학적 통찰력을 가진 사람들이 빅데이터 팀에 책임자가 되기도 하였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은 “인공지능”과 “딥러닝”이라는 전문 용어를 모든 대중에게 생활용어가 되게 하였다. 그리고 작년인 2022년 말 ChatGPT의 등장은 이제 모든 대중들 누구나 그리고 아무나 인공지능을 손안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필자가 적지 않은 세월 인공지능 공학자로 지내오기는 하였지만 인공지능 초창기부터 ChatGPT가 등장한 지금까지도 현재의 인공지능 기술들조차 아직 인간의 능력을 구현하는 데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으로서 오랜 세월 인간의 사고와 감정, 윤리와 예술, 인간과 사회에 대한 탐구를 해왔으며 그리고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결과물들이다.

인공지능이 가능한 공학 기술을 기반으로 인간의 능력을 만들어 가는 상향 방식이라면 인문학은 가능한 생각으로부터 인간의 능력을 탐구하는 하향 방식이라고 할 수 있고 아직은 그 간극이 적지 않아 보인다.

알파고는 천하무적의 놀라운 바둑 능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결정을 전혀 설명해줄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설명가능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아직 만족할 만한 결과를 보여주고 있지 못하다. ChatGPT는 단순한 대규모 언어 모델(Large Language Model)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다양한 인간의 일들을 할 수 있는 파운데이션 모델(Foundation Model)로 여겨지며 특정 분야가 아닌 모든 지능적인 일을 하는 인공일반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의 전조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hatGPT도 알파고처럼 자신의 결과를 설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환각(halluciantion)이라고 부르는, 이치에 닿지 않는 말들을 토해낸다.

“인문코딩”은 “인문학적 이론이나 상상력을 필요로 하는 코딩”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과거 빅데이터 유행기에 수만 개의 트윗으로부터 성별을 구별해본다거나 행복한 정도를 추정해본다거나 챗봇 프로그램으로 공자처럼 또는 춘향이처럼 대화하는 챗봇을 만드는 수업을 진행하였다. 사실 컴퓨터를 이용한 문제해결이라는 컴퓨터 사고 수업의 취지로 볼 때 코딩 교육을 진행하면서 홈페이지나 앱을 만드는 것은 교양교육으로서 적절치 못한 수업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이전 인문학 전공자들과 문학이론을 반영한 문학코딩, 철학의 논리학을 이용하는 논리코딩, 역사를 컴퓨터로 재현하는 역사코딩과 같은 주제들을 관련 분야 연구자 분들과 논의하기도 하였다. 

인공지능 연구자로서 인문코딩은 아직은 많이 아쉬운 알파고나 ChatGPT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공지능을 만들어 보기 위하여 인간의 이성 능력에 대한 인문학 연구의 통찰들을 코딩하는 것, 즉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보려는 것이다. 사실 “인문코딩” 이라는 이름이 아니더라도 이러한 수업이나 연구는 당연히 있어 왔겠지만 하나의 영역으로 다루는 것도 의미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ChatGPT가 성행하는 이 시기는 컴퓨터를 이용한 문제해결의 컴퓨테이셔널 씽킹이 아니고 인공지능을 이용한 문제해결의 AI 씽킹(AI Thinking, 인공지능 사고)을 함에 있어서 인문코딩은 인공지능과 인간이 어떻게 다른지를 이해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윤리적으로 인공지능을 문제없이 활용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기, 어느 날 공동연구를 함께 했던 원로교수님께서 “인문코딩대회”를 해보자는 제안을 하셨다. 필자 외에 다른 분에게서 정확히 “인문코딩”이라는 신종 조합어를 처음으로 듣게 되어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으므로 취지에 공감하는 철학 전문가와 인공지능 전문가와 함께 인문코딩 대회를 위한 문제를 출제하고 대회가 가능하도록 계획을 수립하였다. 당시 코로나 시국이기도 하여서 인문코딩대회를 개최하지 못하고 현재까지 해당 기관에 실시 계획만 공지된 상황이다.

이후 원로교수님께서 “인문코딩”을 주제로 하는 도서 출판을 제안해주셨다. 이 또한 마다할 이유가 없으므로 분석철학, 유학, 사회학, 역사학, 국어학, 종교학, 인공지능, 예술, 등 여러 분야 10여 명의 전문가들이 인문코딩 취지에 부합되는 원고들을 작성 중에 있고 올해를 넘기지 않고 출간하려고 노력 중이다.

아마도 어떤 내용을 담아서 인문코딩이라고 하려는지 의아스러워 할 것으로 생각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필자들의 원고가 나와야 알 수 있겠지만, 본인의 경우 칸트의 이성비판 이론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코딩하려고 했던 사례들을 소개한다. 소위 “칸트 기계(Kant Machine)”라고 부를 수 있는 연구들이다. 칸트에 ‘기계’라는 말이 붙어서 마음이 편치 않은 인문학자들도 있겠지만 해외 연구 사례에서 흔히 사용되는 말이고 칸트 철학의 정교함에 대한 찬사라고 생각한다. 대상을 어떻게 알게 되는지에 대한 순수이성비판의 정교한 내용은 인공지능 학자들로 하여금 프로그램으로 만들어 보고 싶게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실제로 그러한 다수의 사례가 있다. 또한 인공지능의 윤리적인 문제가 시급한 이때 칸트의 도덕철학을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 윤리 연구도 많이 시도되고 있는 실정이다.

ChatGPT가 다음에 나타날 단어들의 확률을 기반으로 만들어내는 단어들의 덩어리는 엄밀한 의미의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런 점에서 ‘인문코딩“은 기술 기반의 인공지능과 현상 기반의 인문학의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혀 볼 수 있는 실마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박충식 유원대학교·인공지능

유원대학교 컴퓨터공학전공 석좌교수. 한양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인공지능으로 공학박사를 취득했다. 유원대학교(구, 영동대학교) 컴퓨터공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공저로 『인공지능의 존재론』, 『인공지능의 윤리학』, 『인공지능의 인간학』, 『내가 만난 루만』, 『정보 철학의 모든 것』(근간), 『인문코딩』(근간)이, 그리고 공역서로 『윤리적 노하우』, 『생물학이 철학을 어떻게 말하는가』, 『현대자연주의철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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