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기술-환경에 대한 고찰 ··· 권혜원 작가의 〈행성극장〉
상태바
인간-기술-환경에 대한 고찰 ··· 권혜원 작가의 〈행성극장〉
  • 이현정 중앙대 교양대학
  • 승인 2023.07.29 14: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술관 답사기]

 

지난 6월 9일부터 7월 29일까지 권혜원 개인전 <행성극장>이 송은 갤러리에서 전시되었다. 환경과 기술에 대한 작가의 깊은 생각이 묻어난 작품들을 관람한 후 느꼈던 개인적 소회를 정리해 볼까 한다. 

인간의 관점에서 자연환경은 언제나 가장 하위 단계에 놓여 왔다. 현재 기술개발과 관련한 기업들은 대부분 환경을 자원으로만 보는 관점을 취한다. 환경오염이 심각한 수준에 이른 현재에도, 이를 개선하려는 목적보다는 "이용"하여 인간의 편의 향상을 위한(혹은 비즈니스 차원에서 돈이 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혹자는 현재 기술개발의 중심에 있는 디지털화가 마치 녹색경제로 이어지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디지털 산업의 동력이 되는 전기의 35%가량은 여전히 석탄을 통해 생산되고,† 디지털 산업의 전력 소비량은 해마다 5~7%씩 증가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현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기술개발이 환경과 사람이 상하관계가 아닌 평행에 가까운 관계가 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작품을 통해 강하게 드러낸다. 
† “Global electricity generation mix, 2010-2020”, Agence interntionale de l’énergie(IEA), 2021.3.1.
‡ “Numérique: le grand gâchis énergétique”, CNRS Le journal, 2018.5.16.

전시 공간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계단식으로 이루어진 오디토리움이 보인다. 벽면을 가득 메운 스크린에서는 ‘Green Flash Laboratory’의 홍보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Green Flash Laboratory’는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가상 연구소다. 이 영상에서는 “고래와 새, 해조류 등 다양한 생물종의 생태적 패턴에서 영감을 받은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센서와 자연어 처리 기술을 기반으로 자연과 인간의 새로운 소통 방식을 연구한다”라는 자막을 통해 연구소를 소개하는데, 이것이 전체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이자, 작가가 제안하는 기술 발전 방향을 담은 핵심문장으로 보인다.

2층으로 올라가면 넓은 공간에서 재생 중인 여러 퍼포머들의 행위예술 영상 ‘Sensing Cinema’를 마주하는데, 가장자리 통로로 들어가면 통유리 창 너머 배경을 이용한 작품 ‘빛나는 기억의 파편들’을 볼 수 있다. 바깥 풍경이 시원하게 보이는 창에는 올록볼록 크고 작은 다양한 렌즈들이 부착되어 있다. 오목렌즈를 통해 비치는 세상은 중심부를 향해 볼품없이 쪼그라져 있고, 볼록 렌즈를 통해 비친 세상은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듯 진취적이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기술이 우리의 생각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자신을 볼 수 없다. 다만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머릿속에 자신의 형상을 그려놓을 뿐이다. 세상을 보는 눈도 마찬가지다. ‘어떤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볼 것인가’에 따라 우리는 세상을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기술이 어떤 시야를 우리에게 전달하는가에 따라 우리가 해석하는 세상도 달라질 수 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기 전, 미지의 대상이었던 자연환경은 인간에게 두려움과 경이로움을 주는 존재였다. 그러나 갈릴레이의 망원경을 통해 우주의 별을 가까이 마주한 이래 카메라 기술의 발전은 인간을 천체와 점점 가깝게 느끼도록 하였고, 20세기 우주선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우리는 달에서 보는 지구의 모습을 확인하게 되었다. 3층의 한 구석진 공간에서 재생되는 ‘최초의 빛’ 영상은 처음 둥근 지구의 얼굴을 마주했을 때, 인간이 느꼈던 대단한 경외감을 전달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에 묵직하게 전달되었던 울림의 파장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인쇄술이 찍어내는 지구의 모습을 잡지를 통해, 교과서를 통해 어렵지 않게 접하게 되자 지구의 모습은 어느새 시시해졌다. 인간이 자연환경을 향해 내려다보는 듯 거만한 태도를 취하기 시작한 시기가 이때부터였을까? 

3층의 중심 공간 사방에서는 서로 다른 여러 영상 푸티지가 재생되고 있지만, 모든 영상들은 (작가가 생각하는) 자연의 소리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불가능한 세계’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작품은 자연에게 카메라를 맡긴 채 팔당호 주변의 봄·여름·가을·겨울을 찍은 조각 영상모음, 센서를 이용해 수온·ph농도·생물체들의 움직임 등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를 시각화한 영상, 그리고 미래 더 많이 발전된 기술을 이용해 보다 세세하고 많은 자연의 데이터를 캐치하여 이를 (아직은 가상의) AI가 인간의 언어로 들려주는 영상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자연의 메시지를 통역하여 전달하는 기술도 함께 발전하여, 사람들이 자연을 보다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되기를 염원하는 듯하다.

마지막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가면 넓게 펼쳐진 부채꼴 공간에 ‘궤도 위에서’라는 작품 영상이 빙 둘러 재생되고 있다. 이 영상에 담긴 다음 메시지가 많은 생각이 들게 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너무 많은 지구 이미지를 본 우리는 처음 지구의 이미지를 볼 수는 없다. 지구에서 멀어질수록 지구가 연약해 보일수록 조망효과는 커진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외감과 압도적인 감정, 자기 초월적인 느낌, 지구 전체와 연결된 감각. 너무 많은 이미지를 본 우리들은 더 멀리 가야한다. 되돌아오지 못할 만큼 아주 멀리 보이지 않는 지구를 보며 울 수 있을 때까지..."

과학기술은 우리 인간에게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은 물론이고, 구름의 움직임, 바람의 방향, 생태계와 기후의 변화 등 자연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주었다. 이런 지식들로 인해 우리의 생각이 인간 아래 자연이 있다는 착각 속에 갇힌다면 자연의 일부로서 환경과 함께 숨을 쉬던 우리 인류의 숨통은 점점 더 좁아질 수밖에 없다. Chat-GPT가 세상을 놀라게 한 지 채 일 년도 지나지 않은 현재, AI 관련 거대기업들은 앞다투어 그보다 훨씬 향상된 성능을 자랑하는 모델을 출시하느라 급급한 모습이다. 그러나 발전되는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그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도와 생각이다. 작가의 상상처럼 첨단 센서를 이용해 자연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활동은 주체의 의도에 따라 자연과 공감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자연을 철저히 인간 중심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대단하고 경이로운 지구가 그 신비함을 보존하며 인류도 그 안에서 마음껏 숨 쉴 수 있도록, 가능하다면, 단 몇 개월 만이라도 전 세계 모든 기업들이 발전을 멈추고 자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 사진 출처: 송은 갤러리 홈페이지 (https://songeun.or.kr/)


이현정 중앙대 교양대학

미국 Academy of Art University에서 Computer Arts를 전공했으며,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애니메이션 전공으로 석사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중앙대학교 교양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메타버스, AI, 공감 관련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