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전형은 대학의 몫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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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전형은 대학의 몫이어야 한다
  •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
  • 승인 2023.07.24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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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칼럼]

 

지난 6월 15일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자, ‘킬러문항’을 비롯한 수능 난이도와 사교육 이권 카르텔 관계, 사교육 경감대책 등 수능 관련 이슈들에 대한 논란이 뒤따르고 있다. 

수능 이슈는 사교육 문제는 물론 여러 사안들과 연계되어 있다. 수능은 국가의 대입전형 시스템, 유∙초∙중등 교육, 각 대학의 입학 및 교육시스템과 연결되며, 국가 인재양성 전략에도 큰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수능 이슈는 큰 담론의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하며, 결과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개인별 흥미와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더 좋은 학교 교육을 만들어주는 일이어야 한다. 

그런데 대입전형이란 무엇인가? 이는 대학이 추구하는 방향에 따라 자신들이 양성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선발하는 일이다. 어떠한 학생들을 선발하여 어떻게 양성하느냐에 따라 개인, 대학, 국가의 생산성, 경쟁력이 영향을 받는다. 우선적으로 어떠한 학생들을 선발하느냐가 중요하다. 특히 오늘과 같은 대전환의 시대는 창의성을 비롯한 역량, 태도, 체험에 기반한 새로운 인재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표준화된 지식 암기, 정답 찾기 기술, 줄 세우기 기반의 대입정책도 백지에 다시 그려야 할 때다.

우리의 대입정책은 지난 수십 년간 정부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1986년 교육개혁심의회에서 학생선발에 대한 대학의 자율권을 살리기로 한 이후 10여 년은 대학의 자율성이 존중되다가, 1998년 2002 대입제도가 도입된 이후 ‘대학서열’, ‘사교육’, ‘공정성’ 이슈로 인해 대학의 입학전형은 정부가 제시하는 틀 안에 머물게 되었고, 갈수록 대학을 더 수동적인 위치에 서게 한다. 

예를 들어, 2019년 대통령의 갑작스런 말 한 마디에 학교 교육과정을 살리자는 학생부 위주 수시 전형이 부정되고, ‘공정성’을 빌미로 하루아침에 기존 정책 방향과는 정반대로 대학에 수능 중심의 정시모집을 확대하도록 요구하였다, 현재 교육부는 서울 주요 16개 대학은 40% 이상을 수능 위주로 선발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이는 정치적인 목적에 따른 결정으로 교육현장을 왜곡시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수능위주 전형 입학생들의 자퇴, 미등록, 학사경고 누적 등 제적률이 가장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제는 정부 주도의 대입정책은 바뀌어야 한다. 긴 안목이 중요한 대입정책을 5년마다 바뀌는 정부에 맡기는 것이 맞는 것인가? 그동안 정부마다 전문성이 부족한 가운데 여론, 정치에 흔들려 성공적인 대입정책을 만들어내지 못했는데, ‘사교육’ 이슈로 출발한 정책이 성공한 적이 있었는가? 해외 선진대학 중 정부로부터 우리처럼 통제 받는 곳이 있는가? 정부, 국회, 언론 등 우리 사회는 특히 표준화, 획일성이라는 산업화 과정의 사고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개인은 맞춤형, 대학은 독자적인 특성화로 다양화되어야 생존 발전할 수 있다. 이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가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한 과제이다. 대학 ‘서열화’ 문제도 ‘독자적 특성화’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대학이 특성화에 성공하려면 어떠한 학생들로 구성하느냐를 중요한 요소로 생각해야 한다. 이를 위해 대학은 자율적으로 독자적인 학생선발의 목적과 목표를 새롭게 세워야 하고, 이에 맞도록 입학전형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지금까지와 같이 정부가 제시한 틀 안에서 학생을 받는 위치에서, 선발목표에 따라 다양한 학생들을 발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대학의 몫으로 대학이 선도적으로 나서야 할 일이다. 

대학은 우선 현 대입전형 환경에서 시행하는 전형방식, 전형요소 등이 학생들의 4년간의 학교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세밀하게 분석해야 한다. 바람직한 것은 졸업 후 진로, 성장발전과도 연계해 분석하는 일이다. 대학별 미래 인재상에 기반한 새로운 대입정책도 이러한 연구의 기반이 있어야 한다. 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입학한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을 개인별로 효과적으로 안착, 성장시킬 수 있는 교육시스템을 섬세히 설계해야 한다. 이는 대학 주도의 대입정책에 대한 신뢰를 얻는 일이다. 

그런데 대학에서 대입전형을 설계할 때, 유∙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우리 아이들이 개인별 흥미와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학교 교육이 이루어지도록 각 단계의 학교들과 협업을 해야 한다. ‘공정성’은 개인별 잠재력을 인식해주고 키워주는 일에서 찾아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다. 대입전형 방식이 초∙중등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다는 점에서, SKY 등 대입전형의 영향력이 큰 대학들은 특히 무한 책임감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과제다. 대학별로 공공성을 기반으로 전형요소, 전형방식을 새 시대에 맞게 백지에 새롭게 그려봐야 할 때다. 사실 초∙중등교육과정에서 ‘제대로’ 성장이 된 학생들이 대학에 와야, 대학도 자신의 철학과 비전에 따른 우수인재를 배출할 수 있으며, 미래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현재 입학생 채우기에 급급하고 재정이 매우 악화된 대학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고 이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갈수록 왜곡이 심화되는 교육현장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현재 교육현장이 우리 아이들이 미래를 살아가는 데 요구되는 역량, 태도, 가치관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되고 있는가? 사고하는 방식, 일하는 방식, 일자리가 급변하고 있다. AI, 기후재난은 물론 미중 갈등 등 국가 간 치열한 경쟁으로 양극화되어 가는 상황 등 급변하는 대전환의 시대에, 우리는 시야를 내부에서 밖으로, 기성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빨리 돌려야 한다. 

현재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핵심 그룹, 예를 들어, 정치인, 공무원, 교육자, 산업인재 등이 우리 사회와 국가의 미래에 어떤 희망이 되고 있는가? 다음 세대에서는 새로운 희망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이는 모두의 생존 문제이다. ‘사람’을 키우는 교육에서라도, 기성세대보다 더 뛰어나고 바람직한 역량, 태도, 가치관을 가진 인재들을 길러내야 한다. 대입전형을 시행하는 대학의 자율적 역할이 그 중심에 서 있어야 한다. 대입정책의 출발은 현장이지만, 사고의 출발은 본질이어야 한다. 기존 정책의 개선이 아니라, 다른 그림이어야 한다.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연세대 수학과 명예교수로 연세대 대학원장, 대한수학회 회장, 국제퍼지시스템협회(IFSA) 집행이사 및 부회장,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분과 의장, 포스코청암재단 이사, 국무총리 소속 인사혁신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과실연 명예대표, 태재학원 감사, 국가인재경영연구원 이사장,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문위원회(SAB)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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