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천 년을 여는 디지털 네상스(naiss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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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천 년을 여는 디지털 네상스(naissance)
  • 주형일 영남대학교·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 승인 2023.07.2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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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에게 듣는다_ 『미디어, 디지털 세상을 잇다』 (주형일 지음, 한국문학사, 384쪽, 2023.06)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미디어는 인간의 본질을 규정하는 역할을 해왔다. 흔히들 인간을 이성적 동물이라고 한다. 인간은 언어능력을 가진 존재라는 뜻이다. 바로 언어라는 미디어가 인간을 규정하는 중요한 기능을 해 온 것이다. 디지털 기술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미디어가 인간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몇몇 호사가들은 이미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가 아니라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제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디어를 먼저 이해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미디어, 디지털 세상을 잇다>는 미디어와 관련된 다양한 이론과 관점, 사례들을 제공함으로써 디지털 시대를 사는 독자들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증진할 목적으로 기획되었다.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문해력을 가져야 일상생활을 어려움 없이 해나갈 수 있듯이, 미디어를 이해하고 사용할 줄 아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가져야 현대 사회의 시민으로서 생활할 수 있다.

미디어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은 그 자체로 융합과 통섭의 학문이다. 사람들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을 막연히 신문이나 방송 같은 매스미디어의 원리나 효과를 학습하고, 광고나 영상 제작 기술을 배우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의 일부일 뿐이다.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 인간 커뮤니케이션이다. 

인간 커뮤니케이션은 인간이 사회문화적 환경 안에서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살아가는지를 연구하는 분야이다. 인간은 여러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을 실천한다. 자기와의 내면적 대화부터 시작해서 타인과의 대화, 집단 안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대중을 상대로 한 연설이나 강연, 언어나 영상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 등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형태의 커뮤니케이션이 인간 커뮤니케이션이다. 

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초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지만,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형태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친구와의 잡다한 대화에서부터 미디어 콘텐츠 제작과 예술 활동에 이르기까지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스펙트럼은 매우 방대하다. 커뮤니케이션이 인간의 고유한 활동이라는 점에서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원리와 방법을 알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기본적인 미디어는 언어, 즉 말이다. 언어는 개인적이거나 중립적인 미디어가 아니다. 언어는 오랜 역사를 통해 형성되어 온 기호 체계이며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의식 구조를 담고 있다. 이처럼 언어 자체가 사회적 산물이고 문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사회와 문화에 대한 지식은 커뮤니케이션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하다.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사용되는 미디어가 대부분 특수한 기술을 바탕으로 제작되고 운영되기 때문에, 자연과학이나 공학적 지식도 커뮤니케이션을 이해하는 데 필요하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사회를 지배하게 된 디지털 미디어를 이용한 커뮤니케이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보 기술이나 인공지능 기술 등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인간이 살면서 경험하고 실행하는 모든 종류의 활동이 사실상 커뮤니케이션 행위라고 할 수 있기에,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인간뿐만 아니라 인간이 속한 사회와 문화, 인간이 사용하는 기술을 배우고 아는 과정을 통해 이뤄질 수 있다. 

<미디어, 디지털 세상을 잇다>는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해 논의되는 다양한 이론들과 사례들을 중심으로 미디어 커뮤니케이션의 전체적인 윤곽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이 책은 크게 보면 두 부분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부분은 우리가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흔히 사용하는 미디어를 중심으로 미디어의 특성과 작동 방식, 미디어의 역사와 미디어 효과 등을 설명하는 데 할애되었다. 두 번째 부분은 좀 더 인간과 사회에 초점을 맞춰서 인간의 심리, 기호의 의미 작용, 사회적 관계와 문화적 차이 등이 커뮤니케이션에 미치는 영향 등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구성되었다.

이 책은 미디어 리터러시 개념에 대한 설명, 미디어의 역사, 여러 영화를 통해 살펴본 미디어의 속성, 디지털 미디어의 특성, 미디어 효과 이론, 미디어 콘텐츠의 분석, 사회문화적 갈등 상황에서의 미디어의 역할을 정리하고 분석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특히 가능한 최신의 사례를 소개하고 분석함으로써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디지털 미디어 기술과 문화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높이고 실생활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각 장마다 디지털 미디어의 사용과 관련된 최신의 사례를 소개하고 설명하는 내용을 Tip의 형식으로 별도로 분리하여 구성함으로써 정보와 재미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이 책의 특색이자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는 제1막이 열리면서 음유시인 그랭구아르가 ‘대성당들의 시대’라는 노래를 부른다. “아름다운 도시 파리 / 전능한 신의 시대 / 때는 1482년, 욕망과 사랑의 이야기 / 대성당들의 시대가 찾아왔어 / 이제 세상은 새로운 천년을 맞지 / 하늘 끝에 닿고 싶은 인간은 유리와 돌 위에 그들의 역사를 쓰지 / 대성당들의 시대가 무너지네 / 성문 앞을 메운 이교도들의 무리 / 그들을 성안으로 들게 하라 / 세상의 끝은 이미 예정되어 있지 / 그건 이천년이라고”

15세기 르네상스의 유럽에서는 수백 년을 이어온 대성당의 시대가 끝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신과 교회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대성당들의 시대에 신의 말을 문자로 기록한 성경은 소수의 성직자가 독점하고 있었고 대성당의 돌과 유리 위에 새겨진 신의 문자와 이미지가 인간을 가르치고 있었다. 대성당들의 시대를 끝낸 것은 바로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금속활자 인쇄술이었다. 

 

출처=brewbart_a_post-truth_world_in_which_students_are_successfully__fd76c3d4-7ef4-4cfc-bcd6-1f3c89d1ac6f-975x546

21세기의 세계는 수백 년을 이어 온 금속활자 인쇄술은 물론이거니와 지난 100여 년 동안 세상을 지배한 아날로그 매스미디어의 시대가 끝나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디지털 혁명은 새로운 인류의 탄생 시대를 열고 있다. 르네상스(renaissance)가 아닌 네상스(naissance)의 시대이다. 새로운 천년이 시작되는 도입부에 우리는 서 있다. 

디지털 혁명은 인류를 초연결 사회로 인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디지털 미디어의 발전과 함께 진행된다.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를 통해 인간들은 언제 어디서나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으며, 정보와 콘텐츠의 접근성이 증가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가 허용하는 이동성은 디지털 노마드를 넘어 이동하는 인간, 즉 호모 모빌리스를 탄생시킨다. 호모 모빌리스를 중심으로 시간과 공간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구성될 것이다. 

인공지능의 탄생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는 동시에 사회관계를 유지하는 윤리적 규범과 법체계까지도 다시 생각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인공지능의 존재는 단순히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학습 데이터에 기반하여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과정에서 개인정보 노출과 사생활 침해는 물론 정치적, 문화적 편향성이나 차별성이 드러날 수 있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것이 고유한 창작물인지 기존 데이터의 복잡한 모방물인지 판단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것은 창작에 대해 인간이 지금까지 구성해 온 지식과 인식 자체를 파괴할 수 있다. 딥페이크 기술과 자연어 처리 기술의 발전은 인공지능을 가장 자연스럽고 정교하게 거짓말을 잘하는 존재로 만든다. 가짜 뉴스와 조작된 정보는 현실과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으며, 대중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고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가짜 뉴스와 진짜 정보를 구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좋아하고 믿는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디지털 미디어는 인공지능을 탄생시켰고 이제 새로운 인간을 탄생시키는 중이다. 새롭게 태어나는 인간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그를 탄생시키는 미디어를 이해해야 한다. <미디어, 디지털 세상을 있다>는 새롭게 탄생하는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 되고자 한다. 


주형일 영남대학교·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

영남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5대학교와 1대학교에서 공부했다. 주요 저서로는 『미디어와 성』, 『사진과 죽음』, 『영상커뮤니케이션과 기호학』,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 읽기』, 『문화연구와 나』, 『영상미디어와 사회』, 『이미지를 어떻게 볼 것인가?』, 『미디어학교』, 『이미지가 아직도 이미 지로 보이니?』, 『똑똑한 이상한 꿈틀대는 뉴미디어』, 『생존 사회』 등이 있다. 번역서로는 『문화의 세계화』, 『일상생활의 혁명』, 『중간예술』, 『미학 안의 불편함』,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환자』, 『정치실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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