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천년의 만남: 고통없는 삶을 탐구하다
상태바
『논어』, 천년의 만남: 고통없는 삶을 탐구하다
  • 이영호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 승인 2023.07.22 23: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편역자에게 듣는다_ 『논어, 천년의 만남: 논어에서 조우하는 유불회통의 사유』 (이지·장대·지욱 지음, 이영호 엮고 옮김, 궁리출판, 564쪽, 2023.06)

 

불경이 중국으로 전래되어 번역된 뒤, 유학자들 사이에서는 불교와 유교의 이념을 상호 소통시켜 이해하려고 시도하였다. 특히 『논어』를 사이에 두고 이러한 작업은 왕성하게 이루어졌는데, 천년의 시간이 흘러 이 만남은 정점을 찍었다. 이 책은 그 만남의 결실에 대한 모음집이다. 

부처(B.C. 624∼544)와 공자(B.C. 551∼479)는 그 살아간 시기를 보면, 약 10여 년 겹치는데 공자가 후학이다. 한 사람은 왕자였지만 한 사람은 유복자로서 그 처지가 매우 달랐다. 그러나 부처는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애자(哀子)였으며, 공자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은 고자(孤子)였으니, 어찌 보면 고단한 삶의 시작은 같았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성인이 모두 세상을 떠나고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뒤, B.C. 2년 무렵에 인도의 불교는 중국으로 전래되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다시 수백 년의 시간이 지나 구마라즙(鳩摩羅什, 344~413)과 현장(玄奘, 602~664) 같은 언어의 천재들이 나타나 인도어로 이루어진 불경들을 중국어(한문)로 번역함으로써, 비로소 중국 전역에 불교의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이즈음 불교와 유교가 서로 만난 흔적의 일부가 당시 『논어』 주석서에 남아있다. 이후 이 두 사상은 만남을 통해 중국에서 미증유의 새로운 사상으로 거듭났다. 이 중 대표적인 사상으로 불교에서는 선종(禪宗)을, 유교에서는 주자학(朱子學)과 양명학(陽明學)을 거론할 수 있다. 특히 유교의 양명학은 깨달음을 중시하였다. 그 분파 중, 양명좌파는 이 깨달음을 극도로 추구하여, ‘미친 선종의 무리[狂禪派]’라는 비난을 받는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 

양명좌파는 비록 중국 사상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두 측면에서 이들은 큰 공헌을 하였다. 첫째는 인도 문명과 중국 문명이 조우하는 현장에서 유불회통적 사유의 극치를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둘째는 그 경학사적 공헌을 들 수 있다. 종래 경학사에서 명대(明代)는 경학의 쇠퇴기로 평가받았다. 송학(宋學)의 의리학적 측면과 청학(淸學)의 고증학적 면모에 비해, 명대 경학은 뚜렷한 특징을 지니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명좌파의 유불회통의 사유가 내재된 경학은 전무후무할 정도로 독특한 양상을 구현하였다. 비록 전통적 경학의 관점에서 보면 불교에 물들었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바로 이 지점이 그들 경학의 가장 큰 특징으로 종래 송학과 청학으로 대별되는 중국경학사에서 또 하나의 유파를 형성했다고 할 정도로 의미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이탁오(李卓吾: 1527년 11월 19일~1602년 5월 7일) 사진 출처=위키백과<br>
이탁오(李卓吾: 1527년 11월 19일~1602년 5월 7일) 사진 출처=위키백과

이러한 양명좌파 경학의 정점에 위치한 학자는 이지(李贄, 1527~1602)이다. 이름보다 그의 호인 탁오(卓吾)로 더 잘 알려진 이지는 그가 남긴 저서인 『분서(焚書)』에서 유불회통의 사유를 명백하게 드러내 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유불회통의 사유는 그의 경학 저술인 『논어평(論語評)』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이지의 『논어평』에 담겨 있는 유불회통적 사유는 이후 그를 존숭하는 여러 학자들에 의하여 계승, 심화되면서 하나의 학술 집단을 형성하게 된다. 

이지의 경학적 사유를 계승한 이들 가운데, 유가에서는 장대(張岱, 1597~1689?), 불가에서는 지욱선사(智旭禪師, 1599~1655)가 그와 가장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 그들의 『논어』 주석에는 이지의 『논어평』의 내용을 빈번하게 인용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 유불회통적 사유 또한 심화시켜서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이지의 『논어평』을 완역하고, 그 아래에 장대의 『논어우(論語遇)』와 지욱선사의 『논어점정(論語點睛)』에서 유관한 부분을 절취하여 붙이고 번역하였다. 즉 이 책은 이지, 장대, 지욱선사의 『논어』 주석을 번역한 것인데, 이지의 『논어』 주석은 완역을 하고 장대와 지욱선사의 『논어』 주석은 부분역을 하여 집성한 것이다. 

그러면 이 세 『논어』 주석서를 관통하고 있는 유교와 불교의 만남의 양상이 어떤지를 『논어』의 첫 구절에 대한 세 학자의 견해를 통해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주지하다시피 『논어』의 첫 구절은 “배우고 항상 익히면 기쁘지 않겠느냐![學而時習之, 不亦說乎!]”이다. 이 경문에 대하여 이지, 장대, 지욱선사는 각각 다음과 같이 해설을 달았다. 

 

이지(李贄), 『논어평(論語評)』 : “배우면 열락(悅樂)이 있을 뿐 불평은 없도다. 그 얼마나 쾌활하며 그 얼마나 안락한가! 배우지 않으면 참으로 소인이 되어, 일생 동안 번뇌 속을 헤맬 것이로다.”
(學則有悅樂, 而無慍. 何等快活, 何等受用! 不學眞是小人, 一生惟有煩惱而已矣.)

장대(張岱), 『논어우(論語遇)』 : “세상 사람들의 ‘배움’에 대한 인식이 참되지 못하도다. 만약 ‘배움’이 어떤 일인지를 인식하게 된다면, 곧바로 저절로 이 광휘 속에서 열락(悅樂)에 잠길 것이다. 오직 성인만이 이 열락의 한두 지점을 묘사하였는데, 이는 물을 마시면 차가움을 알고 꿀을 먹으면 달달함을 아는 것과 같다.”
(世人只認學不眞耳, 若識得學爲何事, 便自然悦此際光景. 獨聖人能描寫一二, 所謂飲水知冷, 食蜜知甜也.)

지욱선사(智旭禪師), 『논어점정(論語點睛)』 : “대체로 사람마다 영각(靈覺)의 본성이 있어서 애초에 외물에 얽매임도 없고, 그 근원에는 열락(悅樂)만이 있다. 이 같은 마음의 본성을 밝히지 못한 까닭에 셀 수 없는 두려움과 근심 걱정이 솟아나는 것이다. 배움이란 바로 이것을 깨쳐 나가는 지혜를 말함이다. 생각, 생각 그 본래의 깨어있는 성품[本覺]을 깨쳐 나가 어느 순간도 깨어있지 않을 때가 없는 것, 이를 ‘시습(時習)’이라 한다. 어느 때이건 깨어있기 때문에 항상 열락(悅樂)이 있는 것이다.”
(蓋人人本有靈覺之性, 本無物累, 本無不悅. 由其迷此本體, 生出許多恐懼憂患. 今學, 卽是始覺之智, 念念覺于本覺, 無不覺時, 故名時習. 無時不覺, 斯無時不悅矣.)

 

‘학이시습(學而時習)’에서 ‘학(學)’은 그 처음에는 하루, 한 계절, 일 년에 배워야 할 구체적 과목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다가 유교와 불교의 만남의 현장에서 그 한 축을 담당한 주자학에 이르러서 ‘학’은 ‘깨달음[覺]’으로 정의된다. 여기서 주자가 생각하는 ‘깨달음’은 우리의 본성에 대한 깨달음이다. 이미 여기까지만 해도 현실의 삶에서 인간의 본성으로 그 초점이 선회하였기에 다분히 불교적 영향이 짙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이지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깨달음으로서의 학이 없다면, 일생을 번뇌 속에서 보낼 것이며, 이 깨달음이 있어야만 번뇌 없는 즐거운 삶을 살 것이라고 확언한다. 깨달음에서 번뇌로 점점 불교적 색채가 드리워진다. 그러다 장대에 이르면 이런 깨달음의 결과로서 생겨나는 열락은 ‘물 마실 때 차가움을 알고 꿀 먹을 때 달달함을 아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이는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일상에서 진리를 찾는 선종의 사유와 그리 멀지 않다. 더 나아가 지욱선사에 이르면, 영각의 본성을 어느 한순간도 쉼 없이 깨우쳐 있는 상태로서의 학을 말하고 있다. 이지에서 장대로, 장대에서 지욱선사로 『논어』에서 유교와 불교의 만남은 그 농도가 점점 짙어진다. 

실상 이것뿐만이 아니다. 이 세 종의 『논어』 주석서에는 부처, 선, 깨달음 등등의 언어가 종횡무진으로 등장하고 있다. 마침내 공자와 부처를 동일시하거나 부처와 공자의 제자들을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지경으로까지 나아갔다. 

이상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불교가 중국으로 전래된 이래, 외래 사상이었던 불교는 중국 본토의 사상이었던 유교와 상호 융합하였다. 유교의 주자학과 양명학, 불교의 선종은 그 정점에서 성립한 새로운 사상이었다. 인도어로 이루어진 불경이 한문으로 번역된 지 약 천 년이 흐른 뒤에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그리고 이 만남의 현장을 역력하게 보여준 것이 이지를 중심에 두고서 진행된 장대와 지욱선사의 논어학이었다. 

그러나 한편 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어쩌면 유교와 불교는 서로 만나기 이전에 이미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지점을 공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사는 곳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지만, 인간이라는 공통된 바탕 위에 가지는 고민이 유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즉 부처와 공자는 태어난 나라도 자라난 환경도 달랐지만, 공통된 문제의식이 있었다. 바로 삶은 ‘고난’이라는 점을 철저하게 인식하였으며, 그 고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발견하였고, 또 그 방법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이 두 성인이 살았던 시대는 전쟁과 병마가 수시로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시대였다. 삶이 언제 끝나더라도 크게 이상하지 않은 그런 시대를 살았다. 설혹 잠시 전쟁과 병마가 비켜 가더라도 유한한 인간의 삶에서 겪는 희로애락과 늙음은 또 다른 지점에서 인간을 괴롭혔다. 

그러면 외적인 위협과 내적인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부처와 공자는 다양한 형태의 말씀을 통해 이러저러한 방법을 이야기하였지만, 가장 근원적인 해결책은 ‘무아(無我)’의 체득에 있다고 본다. 부처는 『금강경』에서 ‘나라는 형상이 없다[無我相]’고 하였으며, 공자는 『논어』에서 ‘나가 없다[無我]’라고 하셨다.  

‘나가 없다’는 두 분의 말씀은 고난 속에 살아가면서 고통을 겪는 인간에게 일종의 복음일 것이다. 이렇게 삶의 고비 고비를 넘어가기 어렵고 힘든데, 그것을 겪고 있는 주체인 나가 없다니... 

그러면 애초 우리가 가지는 이 근심과 고통은 도대체 어디서 생겨나는 것이란 말인가?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다면, 공자와 부처의 ‘나 없음’의 정체가 역력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 정체가 밝혀지면 우리는 더 이상 삶의 고(苦)에서 시달리지 않고, 공자가 『논어』의 처음에서 말한 ‘즐거움’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런 공통된 문제의식이 있었기에,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만났을 때 상호 융합이 그처럼 활발하게 이루어져서 새로운 형태의 사상을 탄생시켰을 수도 있다. 이 책은 사상사의 이런 현장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에서 편집하여 번역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이영호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성균관대학교 문학박사. 한국경학학회 회장. 한국경학 및 중국 주자학파와 양명좌파의 경학을 연구했다. 근래 유교와 불교의 회통적 사유가 『논어』에서 구현된 양상을 연구하였다. 저서로 『조선중기경학사상연구』, 『동아시아의 논어학』, 역서로 『이탁오의 논어평』, 『일본논어해석학』 등이 있으며, 약 7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