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가 달라 … 한일고금비교론 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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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가 달라 … 한일고금비교론 ②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3.07.22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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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山水(산수)의 차이를 살펴 다른 모든 것을 이와 연결시켜 이해하는 風水(풍수)는 과학 이전의 미신이 아니다. 사람이 땅에 살고 있어 산수와 결별하지 못하는 동안 계속 타당하다. 옛사람이 풍수를 살핀 안목을 이어받고, 적용 범위를 대폭 확대하는 더욱 진전된 지리학을 이룩해야 한다.

먼저 중국의 산수는 어떤지 간명하게 말해보자. 중국은 산은 높지 않고 물이 긴 山不高水長(산불고수장)의 나라이다. 높은 산은 원래 중국이 아니던 서쪽 변경에 몰려 있고, 중원이라고 하는 곳에는 없다. 1,545m에 지나지 않은 泰山(태산)을 하늘 아래 으뜸이라고 여긴다. 그 대신 약 6,300km인 長江(장강, 揚子江), 약 5,400km인 黃河(황하)가 길게 흐른다.  

일본은 산이 높고 물은 길지 않아 山高水不長(산고수부장)이라고 할 수 있다. 3,775m인 富士山(후지산)을 비롯해 높이가 3,000m 이상의 산 21개가 전국에 고루 분포되어 있다. ‘江’(강)이라고 하는 것은 없고 ‘川’(천)만 있다. ‘카와’라고 하는 ‘川’ 가운데 가장 긴 것이 동북 지방의 信濃川(시나노카와) 367km이고, 그 다음은 東京(토쿄) 근처의 利根川(토네카와) 322km이다. 

한국은 어떤가? 백두산 2,744m, 한라산 1,950m, 지리산 1,915m, 설악산 1,708m, 덕유산 1,614m 등이 모두 중국의 泰山보다 높고, 일본의 富士山보다는 낮다. 압록강 790km, 두만강 548km, 낙동강 510km, 한강 494km, 대동강 450km 등이 일본의 信濃川이나 利根川보다 길고, 중국의 長江이나 黃河보다 짧다. 일본처럼 山高水不長도, 중국처럼 山不高水長도 아니고, 한국은 山高水長(산고수장)이다. 

山高水長은 중국보다 산이 높아 山高이고, 일본보다 물이 길어 水長인 사실만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산은 일본보다 높고, 물은 중국보다 길다는 것은 더욱 아니다, 산이 높은 만큼 물이 길고, 물이 긴 정도가 산이 높은 정도와 같아, 山水가 대등하다는 말이다. 산은 높아야 산답고, 물은 길어야 물답다. 산은 높고 물은 길어 각기 지닌 특성을 분명하게 해야, 둘이 대등한 화합을 이룬다. 

더 생각해보자. 山高는 위태롭고, 水長은 나태하게 진다. 山高의 위태로움을 水長으로 바로잡고, 水長의 나태함을 山高로 깨우쳐야 된다. 山高는 相克(상극)으로 치닫는 陽氣(양기), 水長은 相生(상생)에 머무르는 陰氣(음기)이기만 하면, 둘 다 한쪽에 치우친다. 陰陽이 둘이 아니고, 相克이 相生이고 相生이 相克이려면, 山高와 水長이 함께 있으면서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되어야 한다.   

주위에 있는 자연이 山高水長인 덕분에, 한국인은 이런 생각을 남들보다 더욱 분명하게 해왔다. 山高水長을 그림으로 그려 보여주고, 畫題로 삼는 것을 즐겨 했다. 어느 명승지에 가니, “山高水長” 네 글자를 아주 크게 새긴 돌비를 세워놓았다. 山高水長이 분명한 곳에서 山高水長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구태여 알린다.

山高水長인 한국의 산은 크고 완만한 것이 대부분이다. 그 좋은 본보기인 지리산은 어머니처럼 넉넉한 자태로 모든 것을 감싸주는 것 같다. 山高水不長인 나라 일본의 산은 아주 가파른 것이 많다. 원숭이도 올라가지 못할 정도이다. 바라보면 무서운 생각이 든다. 그 기세를 길게 흐르는 물이 완화해주지 않아, 사람이 온통 감당해야 하니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술로 관심을 돌려보자. 중국에서는 물을 대단하게 여긴다. 長江이나 黃河 또는 그 지류, 호수나 운하에서 왕래하고 유람하면서 지은 시문이나 그린 그림이 엄청 많다. 일본에서는 信濃川이나 利根川 따위는 관심에 두지 않고, 富士山만 우러러 받들고 시문을 짓고 그림을 그린다. 한국에서는 지리산과 낙동강, 금강산과 한강, 백두산과 두만강이 예술에서 대등하게 존중된다. 

중국 蘇軾(소식)의 <赤壁賦>(적벽부)는 長江 중류 거대한 사건이 벌어진 역사의 현장에서 밤에 뱃놀이를 즐긴 흥취를 뛰어난 문장으로 표현해, 중국문학의 대표작으로 평가된다, 일본 화가 葛飾北齋(가츠시카 호쿠사이)가 富士山의 원경을 곳곳에서 그리면서 갖가지 풍속을 근경으로 삼은 <富嶽三十六景>(후가쿠산쥬로구게이)은 일본미술사의 절정을 보여준다. 한국의 자랑인 鄭敾(정선)의 眞景山水畵(진경산수화)에서는, 금강산과 한강이 둘 다 거듭 그려 대등하다.  

일본의 산을 가까이 옮겨놓은 것이 城(성)이고, 가파르게 올라간 그 정상이 天守閣(천수각)인 듯하다. 높고 가파른 산, 우뚝 솟은 天守閣은 일본 武士(무사)의 날카롭고 용맹한 기상을 나타내준다. 물이 길게 흐르지 못하는 것이, 농민을 비롯한 일반 백성은 견딜힘이 부족한 사정을 말해주는 듯하다. 상하 양쪽 다 생각이 단순해 차등론이 경직되게 하고, 차등론을 대등론으로 뒤집는 역전을 준비하고 추진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    

지진이나 화산이 한국에는 아주 적고, 일본에는 무척 많다. 일본에서 근래에 겪은 지진의 피해가 심각한 것은 잘 알려진 바와 같다. 엄청난 지진이 곧 일어날 것이라는 추측이 불안을 조성한다. 지금도 불을 뿜고 있는 활화산이 전국 도처에 있다. 태풍이 해마다 한국에는 몇 개, 일본에는 여러 개 닥친다. 눈과 비도 일본에는 이따금 너무 많이 온다. 자연재해가 많아 일본인은 힘들게 살아간다.

한국에는 소나무, 일본에는 스기라고 하는 杉(삼)나무가 흔하다. 소나무는 적절하게 구불어져 멋이 있다. 스기는 꼿꼿하게 뻗어나기만 해서 삼엄한 느낌을 준다. 소나무 꽃가루는 향기롭고, 茶食(다식) 재료가 되기도 한다. 스기 꽃가루는 알레르기를 심하게 일으켜 국가적인 경계의 대상이다. 한국의 소나무로 지은 집, 만든 배는 단단하고 오래 간다. 일본의 스기로 지은 집, 만든 배는 물러서 부서지기 쉽다. 임진왜란 때 두 나라 배의 차이점이 극명하게 확인되었다.

일본에는 비가 오지 않는 날도 습기가 많아 견디기 어렵다. 습기가 적고 건조한 한국을 부러워하면서, 건조해야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어 철학이 생긴다고 한 일본인 학자가 있다. 일본에 가 있는 동안 이 말이 적실하다고 생각했다. 지식을 확충하는 입력에 힘쓰고, 생각을 가다듬어 표출하는 출력은 하지 않기로 한 것이 적절한 선택이었다.

습기가 많은 탓에 일본인은 땀이 너무 나 목욕을 자주 해야 한다. 錢湯(센도우)이라고 하는 공중목욕탕이 일찍부터 생겨나 누구나 목욕을 할 수 있게 했다. 오후 3시 일제히 문을 연 이후에 거의 모든 사람이 찾아가 잠깐 동안 몸을 적시고 닦는다. 매일 이렇게 하는 것이 일본인의 생활 습관이다. 한국인는 가끔, 중국인은 어쩌다가 목욕을 하는 것은 각기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자연 조건은 고려하지 않고, 목욕에 관해 서로 비난하는 것은 잘못이다.

일본 곳곳 온천이 있어 고급 목욕을 할 수 있다. 화산이 많아 겪는 재난을 온천을 선물로 받아 상쇄한다. 온천은 일본인의 성소이고, 露天溫泉(로덴부로)이 그 중심을 이루는 성체이다. 노천온천을 느긋하게 하고 하루 저녁 마음 놓고 잘 먹고 노는 각별한 호사를 누리기 위해 많은 기대를 걸고 오랫동안 저축을 한다. 온천욕 호사를 성소 숭배의 신앙심도 없이, 저축하면서 인내하는 과정도 생략하고, 외국인이 돈만 가지고 일거에 누리는 것은 신성 모독이다. 

일본의 온천은 한국의 찜질방과 상통하지만 차이점이 더 크다. 땀을 온천에서는 씻고, 찜질방에서는 낸다. 개운해지려면, 땀을 씻어야 하는 것과 내야 하는 것이 반대가 된다. 어느 말이 옳은가 시비하면 어리석다. 일본인은 거지처럼 그릇을 손에 들고 밥을 먹는다고, 한국인은 개처럼 그릇을 아래에다 놓고 밥을 먹는다고 서로 나무라는 것 못지않게 부당하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이런 일이 흔하다.   

일본 온천은 엄정한 법도가 있어, 아무렇게나 뒹굴어도 되는 한국 찜질방과는 다르다. 온천에서는 정해진 순서에 따라 진퇴를 분명하게 해야 하지만, 찜질방에서 계속 노닥거리며 자고 먹고 버티어도 된다. 온천은 천황 급에서 천민 급까지 품격과 가격의 서열이 분명한데, 찜질방은 모두 그게 그거다. 온천의 차등론과 찜질방의 대등론이 두 나라 문화의 차이를 분명하게 말해준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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