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는 종종 피카소 위작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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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는 종종 피카소 위작을 만들었다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3.07.22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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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명 교수의 〈생활에세이〉

 

                                      천경자 화백 미인도 위작 논란_ 출처: YTN 뉴스 캡처

천경자의 그림 ‘미인도’를 두고 아직도 잡음이 그치지 않는다. 법원에서 진품이라고 판결을 내렸는데도 천경자의 가족들이 여전히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 딸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하였으나 패소했다는 소식을 최근에 접하였다. 딸의 억울한 마음을 이해하지만, 이 사안은 법원의 판결을 존중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나는 ‘미인도’를 직접 본 적이 없고 사진으로만 보았다. 천경자의 작품 중에 직접 본 건 하나도 없다. 하긴 직접 보았다 한들 내가 진품 판정에 어떤 의견을 보탤 수 있으랴. 단지 많은 전문가와 전문 기관들이 진품으로 판정하였다는 사실을 중시한다.  

‘미인도’가 천경자 작품이 아니라는 근거로, 그녀가 평소 쓰던 재료가 아니다, 천경자 작품에 으레 등장하는 코드가 없다 등등의 주장을 하는데, 나는 그 코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평소 쓰던 재료가 무엇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말할 수 있다. 사람은, 작가든 거지든 부자든, 자기가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언제 어느 때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러므로 위의 주장들은 미인도가 가짜라는 근거가 될 수 없다. 

천경자는 살아생전에 자기가 그린 그림을 어떻게 몰라보겠냐고 하면서 자기는 ‘미인도’를 그린 적이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런데 나는 오랜 세월이 지나면 자기가 그린 그림을 몰라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수없이 많이 그리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그런 말을 했던가? 중요한 말이라도 생각 안 날 수 있다. 특히 그가 정치인이거나 돈 빌린 사람이라면 말이다. 나는 미국 유학 시절 어느 학생 하고 여름 방학 한 달간 같이 살았는데, 몇 년이 지난 뒤 그 사실이 생각나지 않아 민망했던 적이 있다. 자기가 그린 그림보다 더 또렷이 기억해야 마땅할 일 아닌가?

사람들은 프랑스의 권위 있는 기관이 가짜라고 판정했으니 가짜가 틀림없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판정한 곳은 거기뿐이고 다른 복수의 권위자, 기관들이 ‘미인도’를 진짜로 간주한다. 프랑스 기관이라서 특별히 더 믿어야 할 이유는 없으리라.

이와 반대 경우도 있다. 몇 해 전 시중에 나도는 이우환의 여러 그림들이 가짜로 판명 받자 이우환은 프랑스에서 귀국하면서까지 진짜라고 우겼는데, 이후 역시 가짜로 판명 나서 얼굴을 잃기도 했다. 단순한 판단 착오일 수도 있겠지만, 그림 값이나 신뢰도 하락의 우려가 작용했을 수도 있다. 

피카소는 젊고 가난했던 시절에 마구 그린 그림들을 밥값이나 술값 대신 사람들에게 주었는데, 이후 유명해진 다음에 그 그림들이 자기 것이 아니라고 우겼다. 그림의 수준이 자기 눈에 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유명해진 피카소를 한 친구가 방문했다. 피카소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 피카소는 어느 작품을 자기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자네가 그 그림을 그리는 걸 내가 봤는데.”

“친구여, 나도 피카소 위작들을 때때로 그리곤 한다네.”

피카소의 대답이었다. 

피카소의 인성은 별로였고 미술 세계는 짜장 요지경이로다.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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