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연마를 필요로 하는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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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연마를 필요로 하는 기술이다
  • 박찬국 서울대·철학
  • 승인 2023.07.1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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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말하다_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읽기』 (박찬국 지음, 세창미디어, 220쪽, 2023.06)
                      
 

『사랑의 기술』은 2009년도 기준으로 전 세계적으로 2,500만부가 팔린 세계적인 초베스트셀러다. 『사랑의 기술』이 이렇게 엄청난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당연히 그 책의 내용이 훌륭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프롬이 이 책에서 제시하는 통찰은 예리하면서도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신뢰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이유는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누구나 사랑 때문에 고뇌에 빠진 적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사랑으로 인해 기쁨을 느끼기도 하지만, 사랑으로 인해 슬픔에 빠지고 심지어 절망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식의 성공을 함께 기뻐하기도 하지만, 자식에게 닥친 재앙으로 인해 함께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성의 사랑을 얻을 때 우리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뻐하지만, 그 사람이 우리의 사랑을 거부할 때 우리는 절망에 빠진다. 우리가 웃고 우는 대부분의 이유가 사랑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우리는 누군가에 대한 사랑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랑이란 현상은 굳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너무나 자명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법을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사랑이 상대방의 개성과 고유한 인격을 존중하는 성숙한 사랑이 아니라 사실은 상대방을 통해서 자신의 욕망을 구현하고 싶어 하는 집착의 형태를 띤다. 부모는 자녀의 적성이나 개성 그리고 소망을 고려하지 않고 자녀에게 자신의 욕망을 강요할 수 있다. 이성에 대한 사랑에도 이성을 소유하고 지배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개입되기 쉽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을 통해서 서로 성숙하고 함께 행복하기보다는, 사랑으로 인해 힘들어하고 슬픔과 좌절에 빠지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우리의 사랑은 쉽게 증오로 바뀐다. 

우리는 흔히 사랑은 사랑할 만한 상대만 있으면 저절로 생긴다고 생각하지만, 프롬은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것이며 끊임없는 노력과 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랑의 기술』에서 프롬은 동물의 사랑과 비교할 때 인간의 사랑이 갖는 특수한 성격, 모성애와 부성애 그리고 남녀 간의 사랑 등이 취할 수 있는 건강한 형태와 병적인 형태, 건강한 사랑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하는 것 등에 대해서 깊이 있는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프롬은 강단철학계에서는 깊이가 없는 통속적인 사상가로 치부되는 경향이 있다. 프롬이 이렇게 평가받고 있는 것에는 프롬이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한 사상가라는 점이 작용한 것 같다. 프롬은 유럽이나 미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읽혔고 지금도 끊임없이 읽히고 있는 사상가다. 『사랑의 기술』뿐 아니라 『자유로부터의 도피』, 『소유냐 존재냐』는 한 때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의 대열에 오른 적이 있을 정도다. 

그러나 나는 프롬이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사상가가 아니라, 심원한 사상을 대중도 이해할 수 있게 평이하게 이야기할 줄 알았던 사상가라고 생각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나는 프롬의 사상은 상당 부분 하이데거가 극히 난해하게 말하고 있는 것을 평이하면서도 명쾌하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프롬은 인류 역사에 나타난 철학적, 종교적인 천재들이 제시한 다양한 통찰을 종합하면서 현대인과 현대사회의 문제점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깊이 있게 천착해 들어간 사상가다. 인본주의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프롬은 인간의 잠재적인 능력과 위대성을 신봉하는 근대 계몽주의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무엇보다도 마르크스에 경도되어 있다. 그러나 프롬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과 불교·그리스도교·유대교 신비주의 그리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하여 실존철학에 이르는 서양철학의 전통을 수용함으로써 계몽주의에 깊이와 폭을 더하고 있다. 이러한 깊이와 폭을 갖는 만큼 프롬은 근대 계몽주의처럼 인간에 대해서 소박하게 낙관하지 않고 거의 냉소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한계와 추악함 그리고 현대인들의 병적인 성격과 심리를 날카롭게 꿰뚫어 보고 있다.

 

                                                   Erich Fromm (1900.03.23-1980.03.18)

『사랑의 기술』은 프롬의 종합적이면서도 심원한 사유가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프롬은 마르크스와 프로이트, 불교·그리스도교·유대교 신비주의, 실존철학의 통찰들을 원용하면서 독자적인 ‘사랑의 현상학’을 개척하고 있다. 

『사랑의 기술』은 1956년에 쓰였고 그 후 70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지만, 이 책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큰 감동을 준다. 『사랑의 기술』은 공자나 부처, 플라톤이나 칸트의 책들과 같은 고전적인 철학서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을 돌이켜 보게 하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이 책, 『프롬의 「사랑의 기술」 읽기』는 사랑에 대한 프롬의 통찰을 최대한 명료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다.

이 해설서를 쓰기 위해 문예출판사에서 나온 황문수 번역의 『사랑의 기술』을 다시 읽어 보았다. 그런데 프롬의 사상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들의 경우 이 번역서를 통해서 사랑에 대한 프롬의 사상을 명료하게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이는 황문수 번역본은 오역은 별로 없지만, 요즈음의 독자들에게는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문체를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문수 번역본 초판이 나온 것은 1972년이다. 그 후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니, 요즈음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읽을 수 있도록 다시 번역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황문수 번역본이 『사랑의 기술』에 관한 독점 번역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는 불가능하다. 이 해설서가 독자들이 『사랑의 기술』에서 프롬이 펼치고 있는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박찬국 서울대·철학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독일 뷔르츠부르크 대학교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비롯한 실존철학이 주요 연구 분야이며 최근에는 불교와 서양철학 비교를 중요한 연구과제 중 하나로 삼고 있다. 『원효와 하이데거의 비교연구』, 『니체와 불교』, 『에리히 프롬과 불교』, 『내재적 목적론』,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강독』, 『니체와 하이데거』 등이 있고, 역서로는 『니체 I, II』, 『아침놀』, 『비극의 탄생』, 『안티크리스트』, 『우상의 황혼』, 『선악의 저편』, 『도덕의 계보』, 『이 사람을 보라』, 『상징형식의 철학 I, II, III』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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