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의 법률 전문가들
상태바
조선시대의 법률 전문가들
  •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조선시대사
  • 승인 2023.07.15 16: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심재우 교수의 ‘법률과 사건으로 보는 조선시대’

 

법조인 전성시대

변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을 법조인이라고 한다면 요즘 대한민국은 이들의 세상이 아닌가 싶다. 정부, 국회, 자치단체, 기업 등에 법조인 출신이 다수 포진하고 있는 광경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며, 최근에는 TV, 라디오, 유튜브 등 방송에서 활동하는 사람들 면면을 보면 거기에도 법조인이 적지 않아 보인다. 

판사, 검사, 변호사. 이들은 많은 사람들의 선망을 받는 ‘사’자 붙은 직업군 중에서도 특별하다. 돈과 권력을 거머쥐기 쉬울 뿐만 아니라 온갖 특권을 누리는 존재처럼 보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들을 보는 우리의 시선은 복잡하다. 부러움, 질시 등...

그런데 새 정부 들어서 법조인 중에서도 검사 출신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법률 지식이 현대사회의 더없는 경쟁력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치더라도 이건 좀 심하다. 대통령도 검사, 장관도 검사, 기관장도 검사, 검사, 검사... 한마디로 검사 전성시대다. 대통령의 검사 편중 인사는 야당에서 얘기하듯 검찰 독재라 표현해도 지나친 말은 아닌 것 같다. 이러고도 국정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의 현실에 대한 생각은 추후 기회 있을 때 재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전통시대 조선의 상황을 점검하고자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지금의 법조인에 대한 대우에 비춰볼 때 중국과 조선의 법률 전문가들의 사회적 위상은 크게 낮았거나 심지어 불법적 존재이기까지 했다. 참 세상은 변화무쌍하다.

 

김준근의 법정변송도 그림. 조선의 법정은 변호사를 갖춘 근대적 대심제도의 골격을 갖추지는 못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중국 명청 시기의 법률 전문가, ‘송사(訟師)’

그럼 전통시대의 법조인들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법조인이라 부를 만한 법률 전문가들이 존재했을까? 이하에서는 이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 전통시대 법률 공부의 위상, 법률가에 대한 대우가 어떠했는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먼저 중국이다. 

명청 시기 중국의 법률은 백성들의 권익을 보호하기보다는 통제에 주목적이 있었다. 이는 범법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이 집중적으로 실려 있는 『대명률(大明律)』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인간 사는 세상인 이상 당시에도 분쟁이 없을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송사(訟師)’라 불리는 법률 전문가들이 민간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것으로 드러난다.

사실 중국 소송절차의 가장 큰 특징으로 철저한 문서행정주의를 들 수 있는데, 이 때문에 소송을 제기하는 사람은 반드시 문서로 소송장을 작성, 제출해야 했다. 따라서 문자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혼자서는 소송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지금의 변호사와 유사한 소송 조력인의 도움을 받았다. 바로 이들이 송사였다. 

 

청말 상해에서의 형제 재산 분쟁 모습. 소송을 부추긴 송사는 체포되었는데, 왼쪽 목에 칼을 차고 있는 자이다. 『점석재화보(點石齋畵報)』 수록.

당시 소송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는데, 이처럼 송사가 활약할 수 있는 사회적 배경 속에서 이들은 송대부터 존재하며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민간의 소송 대서인, 재판소송의 청부인, 분쟁조정인, 소장의 대필과 소송 수속의 대행인 등이 이들이 맡은 역할이었다.

다만 정부에서는 일관되게 소송대리인의 존재를 불법시했기 때문에 송사는 합법적 테두리를 벗어나 줄곧 음성적으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가 있었음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조선에서 율학의 위상과 ‘율관(律官)’, ‘외지부(外知部)’

이제 조선으로 가보자. 이전 칼럼에서도 대강 언급한 바 있지만 법학을 의미하는 용어로 조선에서 율학(律學)이 있었으며, 이 율학 지식에 대한 시험을 율과(律科)라 했다. 그런데 이 율학은 요즘과 달리 문과 시험을 보고 관리가 되고자 하는 조선 사대부들이 관심을 갖는 학문이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조선왕조에서 경전과 역사와는 무관한 법률 공부의 위상은 크게 낮았는데 이는 중국과 마찬가지였다. 조선에서 법률 전문가라 할 만한 사람들은 하급 관리에 해당하는 율관(律官) 외에도 민간의 소송 조력인으로 활동했던 외지부(外知部)를 꼽을 수 있다. 율관은 비록 직위가 낮아도 관리 신분이며, 외지부는 중국의 송사와 마찬가지로 불법적인 존재였다는 점에서 율관과 큰 차이가 있었다.

 

『대전회통』에 실려 있는 형조 관원. 고위 관리인 판서, 참판, 참의와 달리 그림 중간에 보이는 6품 이하인 율학교수, 겸교수, 명제, 명률, 심률, 율학훈도, 검률이 율관이다. 규장각 소장

율관부터 살펴보자. 율관은 율학을 공부하여 잡과의 하나인 율과(律科) 시험에 합격한 기술직 관리들을 말한다. 조선에서 잡과는 중인 신분의 집안에서 응시했던 분야인데, 이 율과와 함께 통역을 담당하는 역과, 의술을 시험하는 의과, 천문·지리 등을 관장한 음양과가 모두 잡과에 해당한다.

율관들은 형조에 예속되어 재판 시 범죄인의 죄목에 해당하는 법조문을 찾아 주는 사대부 관리들의 법률 자문역을 맡았다. 승진할 수 있는 관직이 제한되어 종6품 율학교수(律學敎授)까지만 오를 수 있었다. 한편 율관 중에는 율과 대신 더 간단한 시험을 치고 선발되는 이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율과를 거친 이들보다 더 낮은 직급에서 활동하였다.

 

MBC 사극 <조선변호사>. 조선시대 외지부의 활약상을 다뤘다.

다음으로 외지부는 최근 MBC에서 방영된 사극 <조선 변호사>로 익숙한 존재인데, 이들은 조선 전기에 활동했던 소송 전문가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사극에서처럼 합법적으로 활동하진 못했고, 정부에서는 외지부 활동을 하다가 적발된 자들은 모두 전가사변(全家徙邊)에 처하도록 하는 등 이들을 강력히 처벌하였다. 조선왕조에서 법률 지식, 법률 전문가를 보는 시각은 지금과 많은 차이가 존재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심재우 한국학중앙연구원·조선시대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조선시대사 연구로 석사,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를 거쳐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인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시대 법률문화와 사회문화사에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