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인의 예절 그리고 사자와 산예
상태바
스코틀랜드인의 예절 그리고 사자와 산예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학교 인문도시 사업단장
  • 승인 2023.07.10 06: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연호탁 교수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_ Scottish Manners(스코틀랜드인의 예절) 그리고 사자와 산예 

 

섬나라 영국을 지칭하는 England라는 명칭은 4세기 경 유럽에서 시작된 게르만족의 대이동 시 바다를 건너온 앵글, 색슨, 쥬트 등의 이민족 중 앵글족의 이름에서 파생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국 북부의 나라 Scotland도 그 이름이 스코트라는 종족명에서 비롯된 것으로 본다.

최근 위스키와 코냑 같은 양주가 한국인의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위스키는 맥아로 만든 증류주이고, 맥주는 발효주에 속한다. 중세 십자군 전쟁에 참가했던 가톨릭 수사들을 통해 아랍의 증류 기술이 유럽에 전래된 후 아일랜드를 거쳐 스코틀랜드에 전파되어 증류주 위스키가 탄생한 것이다. 

위스키는 생산지에 따라 스카치 위스키, 아이리시 위스키, 버번 위스키(아메리컨 위스키의 일종) 등이 있는데, 영국에서 위스키라고 하면 특별한 언급이 없는 한 스카치 위스키를 가리킨다. 미국에서는 줄여서 스카치라고 부른다. Whisky라는 용어는 스코트인의 말이다. 정확하게는 ‘생명의 물’이라는 뜻의 라틴어 아쿠아 비태(aqua vitae)가 스코트 게일어에 들어갔다. 그리고 고전 게일어 이시커 바허(uisqe beatha)가 uskebeaghe라는 모습으로 영어에 차용된 후 (1581) 몇 차례의 변신을 거쳐 오늘날의 whisky가 된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딘버러(Edinburgh)는 한때 우리나라 신혼부부들이 가장 선호하는 허니문 여행 목적지였다. 이 도시명은 이 지역을 가리키는 브리튼 켈트어 Eidyn에서 왔는데, 그 의미는 여전히 미정이다. 과거에 Eidyn 지역의 중심은 Din Eidyn이라는 방어용 요새였는데 이 말의 Din이 burh로 대체되어 Edinburgh가 탄생한 것으로 본다. 이곳에 선주민이 살았고, 브리톤족이 들어왔으며, 스코트 게일이 뒤를 이어 들어왔고, 또 게르만 등이 쳐들어 와 세력을 잡았다. 현대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가족 중심의 씨족, 부족 사회에서 이제는 서로 다른 혈통은 물론, 다른 피부색, 연령, 성별, 출신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하이브리드 사회로의 전향이 전에 비해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자하니 충돌과 갈등이 야기된다. 다른 건 어쩔 수 없다. 사람 간의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최소한의 에티켓을 알고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낯선 사람과 접촉하는 데는 예절이 필요하다. 예의범절의 기본은 공손함, 예의바름이다. 그리고 적시에 요구되는 언행을 수행하는 것이다.

다른 영어 사용 지역에서와 마찬가지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부탁이나 양해를 구할 때 ‘please’, 사소할지라도 호의나 대접에 대해서는 자연스레 ‘thank you’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쓴다. 도움이 필요하거나 길을 물을 때는 무턱대고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Excuse me’나 ‘Sorry to bother you’라는 말을 먼저 건넨다. 스코틀랜드는 영국과의 사이에 복잡한 역사가 얽혀 있다. 따라서 스코틀랜드 사람을 영국 사람으로 인식하거나 부르는 건 자부심 강한 스코틀랜드인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일 수 있다. 때문에 Scot이나 Scottish를 사용하는 것이 안전하기도 하려니와 글로벌 에티켓에 부합되는 것이다.

정작 내가 말하고 싶은 바는 외래인에 대한 스코틀랜드인의 호의 내지 친절이다. 2017년 5월 어느 날 런던을 거쳐 저녁 늦게 스코틀랜드 에딘버러 공항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미리 예약해둔 호텔로 갔다. 택시 운전수에게 요금을 지불하려니 유로나 달러를 받지 않고 파운드를 달라고 했다. 호텔 환전소는 사람이 없고 운전수는 제 입장만 생각하고 늦었다며 요금을 빨리 달라 채근했다. 로비 라운지에 앉아 있던 남자가 무슨 문제냐고 물었다. 사정을 얘기하니 씩 웃으며 택시 요금에 해당하는 파운드화를 건네주었다. 택시 운전수를 돌려보내고 유로화로 채무를 해결하려니 손을 저으며 안 받겠다고 했다. 그럴 수는 없다고 했지만, 스코틀랜드 남자는 외지인을 돕는 것은 스코틀랜드인의 의무라고 말하며 자리를 떴다. 적지 않은 택시비도 그렇지만, 낯선 이에 대한 사심 없는 배려가 내겐 충격이었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스코틀랜드인의 매너를 우리에게 이식할 수 있다면...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유 가치는 지혜, 정의, 열정, 통합이다.    

각도가 다르지만 세상에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참으로 많다. 나는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궁금한 것을 당장 해결하지 못하면 머릿속에 오래 넣어두고 궁금증을 숙성시킨다. 그러다 때가 되면 문제가 풀리려니 하는 기대감 때문이다. 최치원 선생의 시문 제목으로 쓰인 속독(束毒)과 같은 용어가 그러하다. 속독은 속특(粟特)으로도 표기되는 소그드(sogd)의 음차어다. 소그드인은 6~9세기 河中지방 즉 소그디아나를 중심으로 실크로드를 따라 교역활동을 했던 상인집단을 말한다. 그런 소그드인의 춤에 대해 최치원 선생은 신라오기(新羅五伎)의 하나로 기술했다. 

신라 말의 최치원(崔致遠) 선생은 가난하나 어진 선비를 외따로 떠도는 구름에 비유한 고운(孤雲)을 호로 삼았다. 타고난 성정이 그랬거나 살아가는 태도가 무리 속의 삶을 경원시하는 것이었든 그는 홀로 무리 밖의 삶을 선택했다. 인생살이에 정답은 없다. 신라인 최치원이 당나라 조정에 들어가 벼슬살이를 한 것이 부득이한 강제적 선택이었는지, 의지적 선택이었는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그가 남긴 한시 향악잡영(鄕樂雜詠) 5首는 신라오기(新羅五伎)의 모습을 읊은 칠언시로 금환金丸, 월전月顚, 대면大面, 속독束毒, 산예狻猊 등의 연희를 다루고 있다. 『삼국사기』 권32 「악지(樂志)」 ‘신라악(新羅樂)’ 항목에 수록되어 있다. 향악이라 했으니 우리 고유의 음악을 의미하는 것일 텐데, 내용을 보면 서역악(西域樂)을 가리키고 있다. 

이 가운데 산예狻猊는 사자국(오늘날의 스리랑카)의 악무인 사자춤을 말한다. 우리나라 산하는 사자가 자생하는 곳이 아니다. 사자를 뜻하는 한자어 산예狻猊는 사자 산[狻, suan]과 사자 예[猊, ni]의 의미 중첩 복합어다. 사자 혹은 산예를 가리키는 우리 고유어는 없는 것일까? 한편, 아래에서 보듯 산예라는 말은 짐승의 이름은 물론 지명으로 더러 문인들의 글에 등장한다. 

〈짐승의 명칭〉

鳥畏鷹於天。魚畏獺於水。兔畏獹。狼畏兕。鹿脅于。蛇愯于豕。猛莫猛兮虎豹。遇狻猊而奔避。何玆類之孔多兮。羌難覼縷而備記。物固然矣。人亦有焉。새는 하늘에서 매를, 물고기는 물에서 물개를, 토끼는 사냥개를, 이리는 물소를, 사슴은 담비를, 뱀은 돼지를 두려워하고 가장 사나운 호랑이와 표범도 산예 즉 사자를 만나면 피해 도망친다. 왜 이런 따위가 그토록 많은지 이루 다 적을 수 없다. 미물은 본래 그렇다 하더라도 사람 역시 두려움이 있기 마련이다(東國李相國全集卷第一 / 古賦 六首)

〈지명〉

途經狻猊西丘。有懷往事 가는 길이 (벽란도 건너편) 산예서구(狻掜西丘)를 경유하게 되자 지난 일이 생각난다(陽村先生文集卷之四) 

사자를 튀르기예어로는 아슬란(aslan)이라고 한다. 이 말은 본래 고대 돌궐어 아르슬란(arslan)에서 유입된 것으로 현지인들은 우술룬(uslun)이라고 발음한다. 사람의 이름으로 쓰이며 사자같이 용맹스런 남자, 용사라는 의미를 지닌다.

고대 인도 범어로 사자는 심하(siṃhá)라고 한다. 이 말이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자바, 말레이 등 아시아 각지로 들어가 싱가(singa)가 되었다. 동남아 국가 싱가포르(Singapore)는 ‘사자의 城邑’이라는 뜻의 국명이다. 

언어 전파와 접촉의 과정을 고려할 때 중국 남동 해안지역은 외래 문물의 유입이 내륙 지역보다 일찍 이뤄졌다. 사자를 가리키는 siṃhá라는 외래어도 광동, 복건 등지에서 狻掜라는 중국화한 발음으로 첫걸음을 떼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 결과 오늘날 狻掜의 중국 표준 병음은 suānní이지만, 광동어는 syun1 ngai4, 민남어는 suêng1 ngi5로 발음이 차별되고, 통시적으로도 중세 중국어는  /suɑn  ŋei/, 고대 중국어는 /*sloːn  ŋeː/로 현재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르다. 물론 이런 전거로 사자를 지칭하는 狻猊라는 말이 고대 인도말의 음차어라는 주장이 100% 사실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나의 이런 호기심이 다른 이들의 관심과 부합되지는 않겠지만, 위스키가 아니더라도 생산적으로 취할 수 있음은 말하고 싶다. 지리한 기다림 끝에 불과 몇 시간 전에 우연히 알아낸 바 狻猊(OC *swar ŋe)가 獅(OC *sri, “lion”)보다 먼저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사자를 가리키는 인도-이란어 祖語는 *sinȷ́ʰás(싱하스)이며, 이란어 조어는 *cárguš(까르구시)라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중국에서 獅子라는 말이 등장하기 전에 *sinȷ́ʰás(싱하스)라는 원시 인도-이란어가 먼저 유입되어 사용되었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학교 인문도시 사업단장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명예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