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의 반성 … 한일고금비교론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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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의 반성 … 한일고금비교론 ①
  •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3.07.09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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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칼럼]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비교론은 양쪽의 긴요한 관심사이다. 이미 많이 진행되고 있으나, 심각한 결함이 있다. 시각을 반성하고 다시 출발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재현하려고 하며, 한국을 멸시하고 폄하하는 논의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한국에서는 열등의식ㆍ피해의식ㆍ복수심을 가지고 일본을 공격하는 논자들이 크게 행세한다. 이런 잘못을 둘 다 시정해야 한다.

사태가 악화되는 것은 학문이 정치의 눈치를 보느라고 할 일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직무 유기가 공백을 만들어내 지적 수준을 낮춘다. 감각적인 문체로 인상비평을 늘어놓은 대중 출판물이 행세해 시비를 가리기 어렵다. 선입견을 적절한 선에서 서로 인정하는 타협으로 분란을 막고자 하는 시도가 진지한 논의를 보류하도록 한다. 

한일문화 비교론을 사실과 논리 양면에서 타당하게 전개하는 학문을 힘써 해야 한다. 말썽 많은 역사의 표면에 머무르지 말고, 내면으로 들어가 다각적인 탐색을 해야 한다. 문제가 있으면 치열한 논란을 해야 한다. 비교연구에 관한 이론과 방법을 다지는 것이 선결 과제이다. 

두 나라 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어나기도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4백 년이 된 1992년에 ‘92 한국문화통신사’라는 행사가 일본에서 열렸다.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회복한 전례를 되살려 오늘날 더욱 가까워지는 길을 찾고자 했다. 

그 행사의 하나인 ‘한일문화포럼’에서 ‘한국문화와 일본문화: 그 동질성과 이질성’을 공동주제로 삼고, 두 나라 학자 5인씩 모두 10인의 발표가 있었다. 발표마다 두 나라 학자 2ㆍ3인이 토론했다. 그 결과를 정리한 단행본이 두 언어로 출판되었다. (<<한일문화의 동질성과 이질성>>, 서울: 신구미디어, 1993; <<韓國文化と日本文化>>, 東京: 韓國文化院, 1993이다.) 

그 모임에서 나는 <한일문학 특질론 비교>라는 발표를 했다. 두 나라 문학의 특질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진 내력을 살피고 특질 비교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 내용이다. 긴요한 사항을 간추려 재론하고 그 뒤에 한 작업을 추가해, 새로운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일본문학 특질에 관한 견해를 두 책에서 찾았다. 加藤周一(카토수이찌)는 <<日本文學序說>>(일본문학서설, 1975)에서 일본문학은 네 가지 특질이 있다고 했다. 철학이 발달하지 않아 문학이 철학을 대신하고, 새 것이 낡은 것에 첨가되고, 시 형식이 단형이고, 자기 신분층의 생활만 집중해서 다룬다고 했다. 小西甚一(코니시진이찌)는 <<日本文藝史>>(일본문예사, 1985- )에서 일본문예의 특질은 짧은 형식을 좋아하고, 대립이 첨예하지 않다고 했다.    

이런 견해는 타당성이 입증되지 않았다. 加藤周一는 일본의 시 형식이 단형인 것은 존비법이 발달된 언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한국어 또한 존비법이 발달했지만 시형이 일본처럼 단형인 것은 아니다. 小西甚一이 일본문학의 특질을 한국문학과 비교해 살펴, 일본문학은 단형이고 서양문학은 장형이며, 한국문학은 중간형이라고 한 것도 타당하지 않다. 이것은 논자가 지닌 사고의 틀을 보여주기나 하고, 사실과 어긋난다. 한국문학은 몇 천 행이나 되는 시, 백 책 이상의 소설이 있어 아주 장편인 편이다.

두 논자가 말한 일본문학의 특질은 한국문학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한국문학에서는 철학과 문학이 밀접한 관련을 가져, 문학이 철학이고 철학이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길고 복잡한 구조를 가진 작품에서 여러 신분층의 상이한 주장을 겉 다르고 속 다른 방식으로 나타내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두 나라 문학의 특질을 파악하기 위해 상호조명이 필요하며, 특질이 생긴 이유를 알아내려면 문화나 역사 전반에 관한 비교가 요망된다. 이런 연구를 힘써 진행해 통찰력을 갖춘 이론을 정립해야 한다. 이 작업을 서로 교류하고 토론하면서 하면, 필요한 자극을 받아 더욱 타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말하면 문학의 특질 비교에서 연구방법의 비교로 나아간다.

1995년에 京都(쿄토) 國際日本文化硏究(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에 小西甚一과 함께 초청되어 문학사에 관한 소견을 발표했다. 문학사를 쓰기 위해 小西甚一는 서양 이론을 얼마나 공부하고, 나는 내 이론을 마련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말한 것이 서로 달랐다. “小西甚一이 일본의 중세는 中國化(중국화)된 시대이고, 근대는 西洋化된 시대라고 하는 견해가 한국에는 적용되지 않는가? 왜 공연히 딴 소리를 하는가?” 이런 질문을 받고 대답한 말을 옮긴다. 

“일본의 중세가 中國化되었듯이, 중국의 중세도 中國化되었는가? 일본의 근대가 西洋化되었듯이, 서양의 근대도 西洋化되었는가? 小西甚一는 일본문학사의 특수성을 찾으려고 하지만, 나는 한국문학사 전개의 보편적 과정을 해명한다. 중세는 共同文語(공동문어)의 시대이고, 고대는 그 이전, 근대는 그 이후의 시대이다. 한국문학에서 이룩한 이런 시대구분은 일본ㆍ중국ㆍ서양에서도 모두 타당하다. 문학사 일반이론을 이룩한다.” 

이에 관한 자세한 보고가 <<한일 학문의 역전>>(2023)에 있다. 그전에 낸 <<동아시아문학사비교론>>(1993), <<하나이면서 여럿인 동아시아문학>>(1999), <<공동문어문학과 민족어문학>>(1999), <<문명권의 동질성과 이질성>>(1999), <<동아시아문명론>>(2010), <<해외여행 비교문화>>(2018), <<대등한 화합>>(2020) 등에서도 한일 비교의 방법과 실상을 논의했다. 그 가운데 <<동아시아문학사비교론>>, <<하나이면서 여럿인 동아시아문학>>, <<동아시아문명론>>은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이제부터 한일고금비교를 다시 새롭게 전개하려고 한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금까지의 실패를 바로잡고 타당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정립하고, 새로운 착상을 보태 말한다.

(1) 막연한 인상이나 추정을 버리고, 사실을 근거로 한다. 사실은 구체적이고 명확할수록 좋으며, 직접 체험한 것이 특히 유용하다. 

(2) 이미 얻은 지식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려고 하지 않는다. 설명이 아닌 탐구를 소임으로 한다. 가능한 탐구를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게 진행해 발상의 전환을 기대한다. 짧은 글이 모이고 얽혀 총체성을 조금씩 갖추도록 한다.

(3) 정치적 논란을 피하고, 이해관계가 적은 쪽에서 참신한 작업을 시작한다. 문학이나 예술을 시발점으로 삼고, 문화의 다양한 양상을 면밀하게 파악한다. 고금을 연결시키고, 상하 층위의 문화를 함께 고찰한다.

(4) 공통점을 매개로 차이점을 확인한다. 차이점이 우열의 증거라고 여기지 않고, 상보적인 구실을 하며 선후의 역전을 가져오는 것을 밝혀낸다. 한 나라에 머무르는 학문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문제를 찾고, 기대하지 못할 이론을 이룩하는 성과를 얻는다.   

(5) 한국인도 일본인도 동아시아인이고 세계인임을 자각해 거시의 관점을 확보하고자 한다. 한일의 相克(상극)이 커다란 相生(상생)을 이룩해 동아시아에, 다시 온 세계에 대단한 기여를 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한다.

(6) 漢字(칸지, 한자)를 드러내 적고 자기 나름대로 읽는 일본의 관습을 일부 받아들여, 이해와 서술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을 갖추도록 한다.  

(7) 논문 형식의 구속에서 벗어나, 할 말을 자유롭게 내놓는다. 어렵고 복잡할 수 있는 논의를 되도록 쉽고 간결하게 해서, 이해하고 토론하는 동참자가 국내외에서 아주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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