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여성들의 독서와 문자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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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여성들의 독서와 문자생활
  • 박재우 성균관대·고려시대사
  • 승인 2023.07.02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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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 에세이]

 

               밀양에 있는 고려 후기 문신 박익의 묘 벽화. 고려 말 여인들의 모습이다. 사진: 문화재청

흔히 전통시기에 문자는 남성들에 의해 장악되어 여성들은 문자생활에서 소외된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여성들은 한글이 창제된 이후에 그나마 언문으로 문자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한자의 사용은 남성들이 전유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이라면 한글이 창제되지 않은 고려의 여성들은 조선의 여성들보다 문자생활이 더욱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전통시기 한자의 사용에 대해 말하자면 그것은 지배층의 전유물이어서 피지배층이 사용하기는 쉽지 않았다. 또한 지배층을 대상으로 생각하면 독서와 문자생활은 기본적으로 남성의 영역이었다. 왜냐하면 독서와 문자생활은 출세를 위한 수단의 성격이 컸으므로 관료가 될 수 없었던 여성들의 영역으로 인식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고려도 마찬가지였다.
 
고려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서로 다르다는 의식 속에서 여성은 부모 공경, 자녀 교육, 친척 화목, 조상 제사, 길쌈과 바느질 등 집안 살림을 담당하는 존재로 이해되었다. 다만 남성과 여성의 역할 차이를 차별적으로 인식하지 않았고 각각의 역할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독서와 문자생활이 여성의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여성은 그것에서 소외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여성들이 출세를 위해 독서와 문자생활을 했던 것은 아니지만 지배층의 교양과 살림의 수단으로서 독서와 문자생활을 했던 것이다. 

고려의 지배층 여성들은 시경, 서경, 사기와 같은 경전과 역사서를 읽었을 뿐만 아니라, 예기의 내칙, 한나라 조대가의 여계, 당나라 송약소(宋若昭)의 『여논어(女論語)』 같은 여성 규범서들을 읽었다. 뿐만 아니라 불교 신앙을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기여서 반야경, 화엄경, 아미타경, 천수다라니경 같은 다양한 불경을 자유롭게 읽거나 암송하였다. 이숭인의 어머니 김 씨는 닭이 처음 울면 세수하고 머리를 빗고 앉아 불경을 암송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고 한다. 독서 목록에 대한 기록이 충분치 않아 분명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성들의 독서 목록에 특별한 제약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러한 독서 여성들은 기본적으로 지배층이었지만 여성들의 신분과 지위는 다양하여 왕실여성, 문벌가문, 관료가문, 향리가문, 그리고 지역 지배층의 여성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여성들의 독서와 문자생활이 지배층 내에서 특정 부류만 행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여성들은 독서를 통해 익힌 능력으로 문자생활을 영위했다. 부부나 가족끼리 떨어져 있을 때에 편지를 쓰거나, 연인들 사이에 시를 지어 보냈으며, 상속 문서의 작성에 참여하였고, 관청에 청원할 일이 있을 때에 청원서를 작성했다. 남성들처럼 과거 준비를 위해 문자 능력을 향상시키지는 않았지만 가정사나 사생활에 필요한 문자생활을 했다. 

정도전의 부인 최 씨는 우왕 초기에 남편이 북원 사신의 영접을 반대하다가 집권자에게 미움을 받아 유배를 가자 걱정이 되어 편지를 보냈고 정도전은 답장을 보내 부인을 안심시켰다. 충렬왕대 재상 김태현은 젊은 시절에 동년배와 함께 선배 집에서 공부를 했다. 하루는 과부로 있던 선배의 딸이 시를 지어 창문 틈으로 김태현에게 마음을 전했다. “말 탄 사람 어느 집 백면서생인지, 석 달이나 되도록 이름을 몰랐다오. 이제야 비로소 김태현인줄 알았는데, 가는 눈 긴 눈썹에 남몰래 정이 들었다오.” 연정을 담은 시였다. 그러자 김태현은 발길을 끊고 가지 않았다고 한다. 여성들이 글을 써서 교류하는 행위를 부정적으로 인식했던 조선과 달리 고려는 여성들이 자신의 마음을 시로 적어 전할 수 있는 시대였던 것이다. 

고려 지배층 여성들은 어린 시절에 가정에서 독서와 문자생활을 익혔고, 혼인 후에 자녀를 낳으면 그들을 가르쳤다. 여성의 역할인 자녀 교육에 포함되는 일이었다. 이는 남성들이 어려서 집에서 교육을 받다가 성장한 후에 가정을 벗어나 중앙의 국자감이나 사학, 지방의 향교에서 교육을 받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여성 교육은 기본적으로 가정에서 이루어졌던 것이다. 예기의 내칙을 보면, 남성과 여성은 어린 시절에 교육을 받고 13세가 넘으면 각각 성별로 서로 다른 교육을 받았다. 이러한 규범은 전통시기 여성 교육의 원리가 되었는데, 고려에서도 형편에 맞게 적용되어 남성과 여성을 교육하는 원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려시기에 남성은 독서와 출세를 담당하고 여성은 집안 살림을 담당했다고 해서 여성들이 독서 및 문자생활과 거리가 멀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 관직을 얻는 출세를 목적으로 하지 않았을 뿐이지 여성들 역시 독서와 문자생활을 영위했다. 

역사학의 미덕 가운데 하나는 편견을 깨뜨리는 것이다. 어쩌면 전통시기 여성들은 근대 이후의 여성들보다 모든 면에서 더 많은 차별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는 근대주의적 발상이, 당시 여성들은 독서와 문자생활에서 거리가 멀었을 것이라는 편견을 만들어 냈을 수 있다. 우리가 가진 지식이 편견인지 아닌지 성찰하고 의심하는 것보다 더 좋은 습관은 없는 것 같다. 역사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이든 대중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박재우 성균관대·고려시대사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의 연구로는 <고려시기 여성들의 독서와 문자생활>(2021), <고려시대 이혼의 사유와 성립 조건>(2018)이 있으며, 저서로 『절반의 한국사』(공저) 등 다수의 공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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