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시각의 사상사론이 필요한 이유 - 《중국정치사상사》 (류쩌화劉澤華 쓰고 엮음, 장현근 옮김, 2019)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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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시각의 사상사론이 필요한 이유 - 《중국정치사상사》 (류쩌화劉澤華 쓰고 엮음, 장현근 옮김, 2019)를 읽고
  •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 승인 2023.07.02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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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성빈 교수의 〈동아시아 담론〉

 

사진_ Wikipedia

번역은 ‘학문적 주체 되기’의 발판

우리는 모국어가 주체가 아닌 객체 되기를 강요받는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영어로 강의하고 논문을 써야 좋은 평가를 받는 황당한 제도와 살고 있다. 과거 오랜 세월, 우리는 한글이 아닌 한문으로 책을 쓰고, 학자 간에 한문 편지를 주고받고, 한문 작품을 내면서, 한글은 아래 것들이나 쓰는 글로 여기며 중화문화의 ‘객체’로 살았다. 이런 객체의 역사를 탈피하는 게 자연스러운 21세기 탈고전시대에 황당하게도 ‘영어의 객체 되기’를 강요받고 있다.

인류 역사상 어느 대가와 석학이 자신의 언어가 아닌 외국어로 고전을 쓴 게 있었는가를 상기하자. 한국 학자들은 자기 언어로 고전을 쓸 능력이 없으니 옛날엔 한문으로 지금은 영어로 그저 저들의 모방꾼 노릇으로 만족하라고 하는 것인가. 한국 학자가 한국어로 논문을 쓰는 게 영어 앞에서 주눅이 들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언제까지 나의 언어로 주체적 사유를 하기보다 남의 언어로 나를 사유해야 하는 객체이자 ‘언어 기회주의자’ 《꺼삐딴 리》(전광용, 1962)로 살아야 하는가.

이런 맥락에서 고전의 한글 번역은 나의 언어가 주체가 되어 그 고전이 제시하는 의미를 사유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는 훌륭한 작업이라 할 수 있다. 

몇 년 전, ‘정치사상학회’ 소개란에 ‘사람들이 잘 읽지 않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란 구절을 보았을 때,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다. 칸트는 교수로 임용이 되기 전에 호구지책으로 동프로이센의 쾨니히스베르그(지금은 러시아령 칼리닌그라드)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했다. 당시 그는 장서 중에 사람들이 거의 안 찾는 책들을 많이 보았다고 전한다. 그래서인지 철학자 아니랄까 봐, 극히 흥미 있는 전문가를 빼고는 어려워서 꼴도 보기 싫은 ‘3대 비판서’를 출판했다. 

이른바, 사상이니 철학이니 하면, 읽는 게 골치 아파서 사람들이 잘 안 보는 책들을 보아야 하는 분야이다. 그래서 문학에서 ‘시’와 같이 ‘정치사상’도 인기 없는 사양 산업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그런 와중에 또 다른 두통거리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서양 사상사의 고전은 번역이 많이 되어 있고 웬일인지 상대적으로 덜 따분하다. 내가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아마 상기한 대로 우리 사회가 서양을 따라 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고대 그리스, 프랑스와 독일 철학을 영어 번역서로 읽어도 원전을 읽으라는 압력이 덜한데, 희한하게 동양철학은 번역서가 아닌 한문 원전을 보라고 난리를 친다. 번역서는 한계가 있다고들 한다. 

그 인간들 말이 맞는다면, 고대 성서가 쓰인 언어(이디시어 혹은 히브리어인지 잘 모름?)의 성서를 안(못) 읽고 자국어 성서만을 본 기독교도는 다 가짜 신도라고 할 수 있다. 불교도 마찬가지로, 원래의 산스크리트(혹은 팔리어인지 잘 모름?) 경전을 안(못) 읽으면 다 가짜 불교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한자문화권의 철학책들은 심정적으로 무척 거리가 멀다. 그리고 읽기가 따분하다. 우리가 한자문화권에서 사는데도 왜 그런 것인지 논리적으로 설명을 못 하겠다. 

대중적인 동양학자 김용옥은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대단히 강조하였다. 그래서 ‘야! 이 양반은 앞으로 고전번역서를 왕창 내겠구나’ 생각하였는데, 내가 재미있게 읽은 것은 최영애 교수와 공역한 《루어투어 시앙쯔》(駱駝祥子, 老舍, 1937)라는 소설 한 편이다. 

어쨌든 그의 강조대로 번역은 지식의 범위를 넓히는 데 큰 공헌을 한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래서 특히나 고전시대를 다룬 중국과 일본 사상의 번역서를 읽으면서 항상 고마움을 느낀다. 이 번역서들이 없었다면, 한여름 한증막에 들어간 것처럼 땀을 뻘뻘 흘리면서 손수 원어에서 모국어로 이해하는 두 단계를 거치면서 보아야 할 것인데, 역자 덕분에 나의 언어로 술술 읽을 수 있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리고 모국어로 읽으면 내가 나의 언어와 사유의 주체가 되어 그 원전을 비평하는 데도 편하다. 물론 확인할 부분은 원서의 문장을 꼭 대조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나는 고전 반열의 사상서는 번역서와 원저 모두 구입한다. 

오래전, 그동안 책을 좀 읽었다고 으스대던 나에게 어느 선배가 한 말이 생각난다. “우리가 고전을 대하면서 무심하게 넘기는 사실이 있는데, 그것을 불과 며칠 사이에 일필휘지한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런데 사실 저자는 평생에 걸쳐 각고 끝에 쓴 것을 누군가는 또 오랜 시간 땀 흘리며 번역한 것이야. 우리는 불과 하루나 며칠 만에 다 읽을 수 있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는 것일세. 그게 번역서이든 원전이든지 말이야.”

저자와 역자의 수십 년의 공력을 한 달 만에 훔치기
 
근래에 읽은 고전 반열의 《중국정치사상사》는 모두 4천 페이지나 된다. 내가 보았던 국내의 중국과 일본의 번역된 사상서 중에서 가장 면수가 많았다. 시각적으로 너무 두꺼운 만큼 독서목록에 들어가고 나서는 이후 영영 독자의 눈으로 안(못) 들어갈 수도 있는 책이 아닌가 싶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역자가 20년을 들여 부분적인 주제에 관한 연구와 번역을 동시에 진행하면서 학자의 한 우물 파기의 전형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아마 20년 번역이 지적인 수행이라면 충분히 학문적으로 점수돈오(漸修頓悟) 했으리라 짐작한다. 그동안 하도 따분하게 긴 동양의 사상서를 많이 보고 익숙해서인지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고 재미있었다.

저자와 역자가 그야말로 수십 년을 투자한 이 책을 불과 한 달여 만에 완독하고 평을 하려니 스스로 건방지단 생각이지만, 독자로부터의 약간의 성의 표시로 보아주면 좋겠다. 

이 책과 함께, 그간 중국의 사상서들을 보면서 느끼는 점들을 같이 정리해 보겠다. 우선 이 책이 제시하는 내용의 특성을 지적해 보고, 이후에 21세기 동아시아학 학도로서 문제의식을 서술해본다. 


통사 형식의 중국정치사상사

이 책은 풍우란(馮友蘭)이 중국역사상 처음으로 시대에 따라 등장한 사상가들의 사상을 순서대로 백과사전처럼 서술한 《중국철학사》의 방식을 따라서 서술되었다. 이후 여러 중국 학자들도 이 같은 방식으로 사상사를 저술하였다. 위대한 저작인 《사기》와 《자치통감》이 사용한 과거의 것을 모두 통합 정리하는 서술방식이 전래하여 온 것으로 추론한다. 

그래서 주로 특정의 새로운 주제에 관한 사상서가 다수인 서양과는 달리 중국(과 한국, 일본)에서는 통사 형식의 사상서가 많다(신복룡, 이광래, 풍우란, 이택후, 갈조광, 소공권, 마루야마 마사오 등). 

“사상(철학)은 정치를 통해 구현된다.”라는 명제대로 류쩌화의 저서는 정치사상과 지배기제(통치이념과 제도)의 전개를 위주로 논하고 있다. 이게 풍우란이나 갈조광의 순수한 철학서와는 다른 점이다. 무려 중국의 삼대(하은주)부터 청말의 공자진(龔自珍, 1792-1841년)까지 정치사상사를 특별히 새롭게 재해석함이 없이 착실히 정리하여 서술하고 있어서 내용을 요약하기보다는 독자로서 책에 대한 전반적인 감상평을 제시하여 보는 게 적절할 것 같다. 

우선, 중국의 정치사상사를 ‘전제왕권의 성립과 확대, 강화의 과정’이라는 현실주의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정치의 주체로서의 군주’를 중심으로 확립된 지배기제의 흐름을 논하고 있다. 유교적 이상주의는 왕도의 실현이지만, 현실정치에서는 왕도와 패도의 혼합이 일반적이라고 논한다. 역사적으로 고전시대 중국정치에서는 군주와 체제가 내세우는 상징적 이념은 유교적(인치와 덕치, 민귀론)이고 도가적(無爲而治)일 수 있지만, 현실주의적 지배기제는 법가(군권 절대주의, 형벌주의)와 병학(손자병법), 제왕학(전국책)과 권모술수를 교묘히 혼합하여 사용한다는 사실을 잘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정치사상의 현실주의를 제사상을 통합하여 서술한 《고일서》, 《상군서》, 《관자》, 《여씨춘추》 등에서 찾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이 저서들은 고대 중국정치에 가장 영향을 크게 미친 사상의 총합이지만 정통이념(체제교학)으로 받아들여지진 않았다. 체제교학이 등장한 것은 진시황이 법가사상을 잠시 채택하였고, 이후 한무제와 동중서에 의해서 유교를 정통화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 후 한족 왕조들은 유교를 정통 체제교학이자 국가철학으로 삼는 전통을 계승한다. 특히 송대 주자학 이래로 그런 경향은 내면화되어 동아시아에 확산한다. 여기서 저자는 유교가 정통화하는 순간부터 천하의 사상을 독점하게 되고, 사대부들은 천하를 위한 봉사보다는 관료가 되어 입신출세를 위해 유교를 학습하게 된다고 비판적으로 논한다. 

다음으로 저자는 정통왕조의 부침에 따라 체제와 군주, 사대부의 정치행태에 관한 비판주의적 지식인들이 등장하였으나, 그들은 거의 개명군주의 출현에 의한 이상적인 유교사상의 실천과 실용주의적 개혁을 촉구하는 논리를 전개하는 수준에 머물렀다고 논한다. 한대 왕충의 비판에서부터 청대말기 공자진의 비판사상까지 이런 전통을 답습하고 있다고 비평한다. 

이 측면에서는 저자가 오늘날의 현대 정치학의 관점에서 중국사상사를 바라본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 정치학의 조망에서 비판을 수행하게 되면, 고전시대의 중국정치사상을 거의 부정하거나 서구와 비교하여 폄하를 해야 하는 결과가 올지 모르니, 그의 외재적 비판론은 그다지 철저하지는 않다. 고전시대에 중점을 두고 그 흐름에 따라 중국 사상가들의 논리를 정리하고 서술하는 게 주목적이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저서는 풍우란에서 시작한 삼대부터 19세기까지 사상가들을 망원경으로 모두 관조한 통사 형식의 사상사답게 친절하게 정치사상사의 기본적인 지식을 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정치사상을 배우려는 학습자에게 대단히 도움이 되는 책이며, 동시에 연구자에게도 미시적인 탐구로 나갈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문제와 담론에 대한 문제의식

위와 같은 특성, 즉 시대 흐름에 따라 등장한 사상가 중심의 저술이다 보니, 역사를 통하여 생성 전개된 문제와 담론을 오늘날의 관점으로 재구성하고 그 의미를 탐구하고 논하는 주제 중심의 서술방식과는 다르다. 따라서 중국정치사상사를 장기역사적으로 관조하는 필자에게는 특히 다음과 같은 주제들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 

첫째, 체제교학으로 유교사상이 수용된 이래 “유교화-정치발전”은 고전시대의 전형적인 지배기제이다. 이른바 봉건제에서 군현제와 군국제로의 통치체제 변화, 군주의 자의적 지배에서 율령제 확립, 세습호족 정치에서 사대부 관료정치의 확립, 능력주의 과거제에 의한 비세습적 관료임용제, 국가 교육기관의 설립과 유교경전의 교육, 간언의 제도화 등이다. 유교화-정치발전은 한대와 수-당대에 서서히 도입되면서 송대 이래 주자학으로 체계화되어 명-청대에는 거의 완성되었다. 이러한 유교화-정치발전은 한국과 일본으로 동천하여 지역적 특수성이 적용되면서 수용되었다. 

둘째, 한대에 순자의 현실주의적 유교사상은 존숭 받았으나 이후 점차로 정통유교에서 배제되었다. 송대 주자학에서는 도통론에서 순자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제외하였다. 그런데 중국사를 돌이켜 보면, 공맹의 이상적 유교와 순자의 현실적 유교를 모두 존숭한 한대에 가장 문화적, 정치적으로 중국성(Chineseness)이 확립되었고 중화주의적 제국체제가 강고하였던 시대였다. 한족 중심의 중국문화 생성, 유교 중심의 사상통일, 비단길 개척, 군국제(郡國制), 왕도와 패도의 혼용, 사기의 편찬, 한사군의 설치 등 업적이 말해준다. 

이른바, 중국은 순자의 현실주의적 유교사상을 이단으로 규정한 주자학에서부터 유교적 도덕주의 지배기제를 강화하면서 통치이념의 교조화, ‘판옵티콘 감시사회’가 출현한 점이 특이하다. 순자 유교의 현실주의적인 사고가 폄하되면서 오히려 송대는 내우외환으로 내내 시달렸고 몽고에 멸망하였다. 명-청대는 개혁이 필요한 시기에 주자학적 관념주의 정치가 우세를 점하여 쇠퇴와 멸망으로 나아갔다. 

셋째, 상기를 고려하면, 역사상 중국정치는 유교 이상을 관념화한 ‘인격수양주의’와 주례와 순자유교의 현실주의를 추구한 ‘변법개혁주의’ 양대 사조의 갈등으로 전개되었다. 변법개혁주의는 제도개혁을 인격수양주의는 춘추대의와 명분론을 기치로 상대를 비판하고 숙청하였다. 송대와 명-청대 그리고 조선에서 분명한 사례가 드러나고 있다. 

넷째, 보통 중국인들은 명대에 전개된 정치혼란(황제의 무능, 환관의 발호)과 외환(토목의 변, 임진왜란), 만주족에게 멸망한 것을 수치로 여기고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명대의 정치적 혼란은 역동적인 양명학을 낳았고, 민간사회는 정치체계와는 달리 상당한 탈중앙정치적 변화와 발전상을 보여주었다. 나는 이러한 명중기-청초의 시대적 변화상을 “주자학적 체계와 양명학적 민간사회”라고 정의한다. 

특히 명조를 수치로 여기는 태도는 중국의 국가중심사관으로서 조금만 민중사관으로 쳐다보면 명조야말로 ‘사회경제 대변혁’의 시대였다. 동림당과 복사운동에서는 탈신분적 사회참여 추세를 읽을 수 있고, 민간 문예의 발전(전칠자와 후칠자, 모란정환혼기, 금병매, 삼국지연의, 수호지 등)은 중국 고전문화의 개화이자 완성이었다. 또한 천주교의 도래와 서양의 남중국해 도래, 연안지역의 해외교역증대(밀무역 포함), 화교의 동남아 진출 등도 명-청대에 전개된 중앙정치체계와 분리되어 일어난 민간사회의 변화상이다. 

이러한 명-청대 민간의 변화상을 주자학적 정치체계는 개혁으로 수용하지 못하였다. 결국, ‘매카트니 사절의 교역 요구를 거부,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으로 가는 길은 이미 정해진 수순이었다. 예를 들어, 청대 중기에서 말기로 가는 길목에서 홍량길의 ‘인구론’(1793년, 맬서스의 인구론은 1798년)과 허내제의 ‘이금론弛禁論’(1836년, 양귀비 재배의 부분적 허용)이 제기한 변법개혁론은 주자학적 사고에 젖은 황제와 조정의 거부로 무산되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 시대 - 포메란츠(Kenneth Pomerantz)의 ‘대분기’ 시대 - 에 발생한 서양의 폭력주의에 대한 논쟁은 잠시 덮어 둔다. 

 

동아시아 시각의 사상사가 필요한 이유

21세기 들어 동아 3국의 사상사를 국가주의적으로 또한 독립적으로 서술한 저작을 보면서 답답함이 심해지는 것을 느낀다. 부정할 수 없는 게 역사상 3국의 사상사(사회경제사 포함)는 상호연동하면서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거의 모든 3국의 사상사는 저자의 국적과 국가의식 틀 안에서 저술되어 국경을 넘어 어떠한 상호자극과 영향을 교환하여 동아시아 정신세계를 구성해 왔는지를 알기 힘들다. 

최근에 필자는 〈한국의 불치병: 중국혐오증과 미국숭배증〉이라는 논문에서 ‘동아시아 시각’을 활용하여 탈국적의 객관적인 위치에서 한국을 바라보았다. 한국의 정신세계에 내면화한 “소국의식, 지정학적 운명론, 타율이성(자율이성이 아닌)”을 지적하고 성찰을 촉구하였다. 

최근 일독한 《조선사상사》(오구라 기조)는 일본 지식인의 중도적 객관성, 이른바 한국 사상사의 특수성을 일정 정도 인정하면서 또한 식민지 근대화론을 긍정하려는 인식을 내재한 한국사상사론으로 판단한다. 그런데 중국의 ‘한국사상사론’을 아직 본 적이 없다는 것은 중국의 한국인식이 ‘중화주의 동화론’에 머무르고 있어서 중국과는 다른 독립적인 한국사상사의 특성을 연구할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추론한다. 

대만의 철학자인 황준걸(黃俊傑)은 동아시아 시각에서 3국의 유교사상을 비교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동아시아학 연구방법론》, 《동아시아 유교경전 해석학》). 그런데 조선을 보더라도 유교를 체제교학으로 삼은 후에 여러 학파가 부침하였는데, 이를 경시하여 서술하고 있어서 한국 유교사상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고 평가하고 싶다. 반면에 유교를 부분적이고 기능적으로만 수용한 일본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자세히 서술하는 게 편견(일본의 근대화 우등생론)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의 한국 유교에 대한 이해는 과소하고 일본 유교에 대한 이해는 과대하다. 

일본사상사에서는 유교가 결코 주류가 되지 못했던 반면, 조선에서 유교는 다양하고 논쟁적인 학파를 형성하고 서로 경쟁하였다(최영성, 《되짚어 본 한국사상사》). 대만학자인 황준걸은 이러한 측면을 놓치고 있다. 고전시대를 다룬 동아시아학에서 특히 한-일 관계성에 대해 필자는 동아 3국 간의 ‘문명우열론적 사고’가 비논리적이라고 논한 바 있다(〈동아시아 시각에서 일본의 정신세계 파헤치기〉). 

결론적으로 동아시아 시각을 제시하는 이유는 21세기 문화와 지식이 탈국가-탈지역-탈맥락화하는 세계에서 국가의식의 틀을 범주로 삼은 사상사를 논하는 게 편협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록, 내가 한국의 사상사를 바라보더라도 국적을 떠나 동아인의 시각에서 관찰해보아야 하는 사고전환이 필요하다. 

이른바, 동아시아 시각에서 사상사를 바라보는 게 중요한 이유는 3국의 사상-사물(事와 物)의 교환관계가 생성하는 문제와 담론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국사적인 시각이 아닌 탈국가-동아시아의 장기역사적 망원경으로 바라보면서 상호관계성의 기승전결을 관찰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저자가 자신의 국적의식을 출발선으로 하여 서술하는 3국의 사상사는 문명우열론, 동서이원론, 중화주의, 일본 근대화 우등생론, 한국 사상사의 중화주의 동화론을 내면화하기 쉽다.

구체적인 예를 들면, 중국은 “중화민족 다원일체구조론”(페이샤오퉁)과 중국중심의 역사공정, 일본은 동아시아에서의 일본 특수주의(쓰다 소키치, 나이토 고난)와 일제 식민사관(다카하시 도루, 이병도, 조선사편수회), 일본 보수우익 사조(사사카와 재단의 역사론)에서 동아시아사상사에 접근한다. 한국은 ‘중화주의 동화론’으로 다양했던 사조(최영성)를 극도로 단순화시켜 바라보는 경향을 내면화하고 있다. 단순함의 연장선상에서 도덕주의 역사론(춘추대의론)과 소중화주의(송시열), 위정척사론에 사로잡혀 외부세력에 의한 피해자 의식(북벌론)으로 사상사를 구성하면서 그것을 초래한 내부적 문제점을 경시하는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특히 한국의 정신세계는 아직도 “소국의식, 지정학적 운명론과 타율이성”(필자), 일본이 조성한 식민지 근대화론(이영훈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이덕일의 한국통사》). 

근래 동아 3국의 학계가 협력하여 동아시아 역사를 공동으로 편찬한 게 있으나 아직은 그러한 경향이 보편화할 정도는 아니다. 상기 경향을 극복하지 못하면, 한중일 학계는 각자의 시각을 위주로 상호 비평을 주고받는 삿대질 토론을 지속할 것이다. 

그러므로 동아시아 시각에서 자국의 사상사론에 접근하고 또한 3국 통합의 사상사론을 추구하려는 것은 20세기 근대가 전형화했던 국가주의와 일국주의적 사유의 방법론을 상대화하는 동아시아 관점(East Asian perspective)을 설정하여 자기비판과 성찰의 태도로써 동아시아사상사를 관조하고 비평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보적 자기 개혁이야말로 동아시아 시각을 매개로 삼아 ‘세계시민주의’로 한층 더 발전하는 지름길이라고 믿는다.


고성빈 논설위원/제주대학교·정치학

런던대학(SOAS)에서 정치학 박사를 취득했으며, 제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동아시아 사상과 역사논쟁에 흥미를 가지고 현재 동아시아의 사상사적 문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근현대사 역사의 현장』(공저), 『동아시아 담론의 논리와 지향: 비판이론의 탐색』이 있으며, 그 외 동아시아담론, 중국, 일본, 티베트에 관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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