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좇지 말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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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좇지 말라는데...
  •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 승인 2023.06.24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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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 김영명 교수의 〈생활에세이〉

 

                                                  사진: world happiness report 2023

안 팔리는 또 하나의 책 <정치란 무엇인가>에서 나는 정치의 궁극적인 목표가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썼다. 정치를 행복이란 관점에서 접근한 학자가 없는 와중에 참신한 주장을 하였다고 흐뭇해 하고 있던 와중에 한 후배 교수가 자기는 거기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진지한 대화를 하는 와중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가고 말았는데, 좌우간 내 책을 보기라도 했으니 다행이었다. 

아니 개개인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자유니 민주주의니 평등이니 풍요니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 아닌가? 그런 것들은 모두 행복을 위한 필요조건에 불과한 것 아닌가? 아직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엄청 민주적인데 구성원이 가난하거나, 자유를 만끽하는데 양극화가 극심하거나, 모두 평등하게 못 살거나 하면 구성원이 불행할 것은 당연지사다. 행복은 개인과 사회 모두의 가장 큰, 높은 가치이다. 난 여전히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그 후배의 말을 곱씹어 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 느껴졌다. 아니 곱씹어 본 적은 전혀 없고 어쩌다 생각이 났을 뿐이다. 뭔고 하니, 행복이란 객관적인 것 이상으로 주관적이어서 가난하고 불평등하고 억압적인 사회에서도 개인들의 행복 체감도는 높을 수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종교, 사회 관습, 문화, 사회 발전 정도 등등 여러 심리적, 개인적 요인들이 작용할 것이다. 

북한처럼 억압적이고 못 사는 나라 사람들은 무지하게 불행해야 할 것 같은데, 보면 그렇지 않다.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사회를 당연시하고 어버이 수령님과 총서기님의 품에 안겨 산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오지의 원주민들은 어디서 생겼는지 영문자 새겨진 낡은 티셔츠를 입거나 풀잎으로 주요 부위를 가리고 살지만 그들이 느끼는 행복도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의 일반적인 행복도보다 높을 것이다. 아마 그럴 것이다. 그들의 행복지수는 조사한 것이 없지만 말이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유튜브에 ‘행복을 목표로 삼지 말라’는 영상이 있던데, 내 말을 거역하나 싶어서 한동안 보지 않다가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별 내용은 없었다. 짐작컨대 사람이 살면서 행복을 목표로 삼으면 이를 달성하지도 못하고 실망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 아니었나 싶다. 이와 비슷한 경구로 ‘행복은 나비와 같아서 잡으려고 하면 날아가고 가만히 있으면 내려와 앉는다’라는 말이 있다. 참 명언이다. 행복을 좇지 말라는 것은 행복의 바로 이런 속성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데 내 책은 이런 개인 심리적 측면이 아니라 사회정치적 측면에 관한 것이었다. 행복의 개인적 조건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개개인에게 행복의 사회적 조건을 많이 제공해 줄 것인가가 정치의 으뜸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개인적 조건과 사회적 조건이 서로 영향을 줄 뿐 아니라, 무엇이 행복이냐, 행복의 사회 총량이 중요하냐 구성원들 사이의 분배가 중요하냐 등등 파고들면 수없이 많은 쟁점들이 나타날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정치철학의 주요 논제가 될 것이다. 나는 이런 문제들을 파고들 생각이 전혀 없다. 쉬고 놀기 바쁘므로. 파고들어 보았자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겠지. 미국 학자들 소개나 하면 몰라도.    

내 책에서 그 점을 좀 더 명확히 했더라면 하는 생각이 늦게나마 들긴 한다. ‘정치는 행복의 ‘사회적’ 조건 충족이 궁극 목표이다’라고 말이다. 관련 연구들을 보면 주민 행복도가 높은 사회는 일정한 소득수준, 어느 정도의 평등, 이웃과의 연대나 소통, 상당한 정치 참여가 보장되는 사회라고 한다. 이 기준에서 보면 한국 국민들은 상당한 행복감을 느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행복의 객관적인 조건보다 주관적인 행복도가 훨씬 낮다. 왜 그럴까? ‘헬 조선’이라서? 그건 절대 아닐 것이다. 


김영명 한림대학교 명예교수·정치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림대학교 정치행정학과 명예교수로 한국정치외교사학회 회장, 도쿄대학교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한글문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으며, 한국정치학회 학술상, 외솔상 등을 받았다. 저서로 『담론에서 실천으로: 한국적 정치학의 모색』, 『단일 사회 한국: 그 빛과 그림자』,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대한민국 정치사』, 『한국 정치의 성격』, 『정치란 무엇인가: 김영명 교수가 들려주는 정치 이야기』 등 다수가 있다. 수필집 『봄날은 간다』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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