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과 승리 서사에 가려졌던 진짜 민주주의 역사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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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과 승리 서사에 가려졌던 진짜 민주주의 역사를 만난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6.18 1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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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 민주주의를 두려워하는가: 지성사로 보는 민주주의 혐오의 역사 | 김민철 지음 | 창비 | 256쪽

 

이 책은 민주주의, 공화주의, 자연법, 인민주권, 자유국가, 대의제 등 민주주의와 관련이 있는 여러 생각들의 역사적 경로를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역사를 단순히 야만적인 과거에서 영광스러운 현재로 발전해온 과정으로 설명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또한 과거인들의 생각을 오늘날의 잣대로 바라보는 방식을 버리고 역사 속에 맥락화해야 민주주의의 핵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야, 긴 시간 서구 지성사에서 민주주의가 거의 전적으로 배척되어왔음을 발견하게 된다고 논증한다. 여기에는 그리스 민주정기의 철학자들뿐 아니라 근대 국민주권을 발명했다고 평가받는 계몽주의 사상가들까지 포함된다. 요컨대 우리가 지금까지 배워온 민주주의 사상사를 이런 관점에서 다시 써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목표를 두고 저자는 먼저 민주, 민주정, 민주주의, 국민, 인민, 주권, 통치 등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서 논의를 시작한다.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뭉뚱그려 사용하는 말 속의 다양한 함의를 생각해보고, ‘democracy’라는 서양의 개념은 ‘인민이 통치하는 제도’임을 인식할 것을 제안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민주주의는 한자어의 의미대로 ‘국민이 주인인’ 제도에서 ‘모든 사회구성원이 통치에 참여하는’ 체제를 뜻하는 말로 바뀐다. 이때 주권과 통치가 구별되고, 한층 더 실천적인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제1부에서는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계몽주의 시대까지 민주주의가 얼마나 철저하게 배제되어왔는지를 보여준다. 이 시기 유럽 정치철학의 주요 흐름인 공화주의와 자연법 전통, 그리고 그 흐름의 근대적인 연장선에서 등장한 사회계약론과 계몽주의는 각각 다른 맥락에서 민주정을 경계했다. 진지하게 사고하는 사상가일수록 ‘민주정은 빼놓고’ 군주정과 귀족정의 조합에서 대안을 찾으려 했다.

공화주의는 모든 국가가 흥망성쇠를 거칠 수밖에 없다는 역사적 순환을 전제로, 공화국의 멸망을 늦추는 가장 적합한 정치제도가 무엇인지 탐구해온 흐름이다. 이때 공화국은 시민들이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국가공동체를 뜻하는 말로,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라는 말에서 그 영향을 발견할 수 있다. 공화국의 쇠락 원인에 몰두하는 공화주의자의 관점을 ‘개복치 게임’에 빗대어 설명하는 내용은 이 책에서 흥미롭고 참신한 대목 중 하나다. 그러나 공화주의자가 볼 때 민주정은 결코 공화국이 선택할 정치체제가 될 수 없다. 민주정은 다수의 자유가 방종이 되는 것을 막을 수 없고, 그 결과는 자연스럽게 군사독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연법 전통의 핵심은 기독교 세계관의 의무와 권리 관념에 있다. 신은 인간에게 먼저 자기 자신을 지키라는 의무를 부여했으나, 다른 동물과는 달리 다른 존재들과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는 도덕적인 의무 또한 부여했다. 여기서 인간이 사회성을 가진다는 생각이 뻗어 나왔다. 대표적인 자연법 철학자 토마스 홉스는 인간의 사회성을 규정하는 원칙이 무엇인지를 탐색하려 했다. 그러나 이 전통에서도 민주정은 환영받지 못했다. 통치는 신성한 책무인 사회성의 발현 과정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세심히 구별할 수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루소가 왜 민주주의자가 아닌지를 밝히는 제5장은 이 책의 백미다. 흔히 인민주권을 확고히 한 철학자로 언급되는 루소의 사상에서 저자가 읽어내는 것은 모두가 자유롭고 통치에 참여하는 이상적인 정치공동체를 구상하는 동시에 그것이 왜 실현 불가능한지를 기어코 증명해내는 비관적인 사유다.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당대에 파급력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의 사상이 몽상에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제2부에서는 프랑스혁명 이후 민주정이 하나의 대안으로 여겨지는 과정을 서술한다. 여기서 콩도르세(marquis de Condorcet)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작은 소국들에서만 적용 가능할 것이라고 여겨져온 민주정도 인민이 대표를 선출하는 대의적 방식을 통한다면 프랑스 같은 대국에서 적용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제도를 촘촘하게 설계한다면 인민의 주권을 보호하는 동시에 시민 모두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법치국가를 수립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근대 민주주의의 싹이 튼 것이다.”

이후 혁명기의 민주파가 민주주의 논의를 이어받았다. 먼저 민주파는 유럽이 점차 상업사회로 나아가는 것에 따르는 폐해를 짚었다. 상업사회는 사치가 만연한 풍속을 만들고 사회의 덕성을 후퇴시킬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고 장기적인 번영과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계몽을 통해 모든 인민이 자신의 의무와 권리를 깨닫고 덕성을 갖게 해야 한다. 그러나 평등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권리와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오히려 반란과 봉기의 씨앗을 키우는 셈이다. 장기적인 번영과 평화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평등이라는 단단한 토대 위에 실질적인 자유를 세워야 한다. 평등을 추구하는 민주정과 대의제를 계몽과 결합했을 때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민주파는 생각했다. 이것을 그들은 ‘대의민주주의’라고 불렀다. 

민주파는 한편 경제적 토대 없이는 민주정도 존속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즉 대국에 걸맞은 부국강병의 방안이 민주정과 결합되지 않으면 설사 민주정이 수립되더라고 허망하게 무너져내리리라 생각했다. 여기서 민주파가 내세우는 것 역시 평등이었다. 그들은 단단한 평등과 부국강병은 선순환을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구체적으로는 누진세와 소농 및 소규모 제조업 진흥, 상업의 완전한 자유를 주장했다.

콩도르세와 민주파의 주장은 당대에 적용되지 못했지만, 대의민주주의 혹은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주의의 가장 유력한 작동방식으로 여겨지는 오늘날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혁명이 부침을 겪은 19세기 내내 민주파의 후예들은 소수였지만 민주적 전망을 계승, 방지, 교정하며 미래를 준비했다.

다시, 민주주의는 무엇일까? 저자는 “투표, 권력분립, 표현의 자유, 법치, 무죄추정과 적법절차 준수, 신체 및 재산 불가침과 같은 원칙들, 나아가 다양성이나 소수자·약자 보호와 같은 가치들”이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이런 것들을 ”민주주의의 본질로 치부하는 사고방식은 시대 불변의 관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직접민주주의는 좋은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 대의민주주의를 시행하는 것인지, 인구가 많아서 국민이 전부 관료가 될 수는 없으니까 투표나 시험으로 대리인을 뽑아서 행정부와 입법부를 구성하는 것이 민주주의인지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인민 혹은 시민이 통치한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에 빗대어서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수시로 언급되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의 답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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