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의 논리 혹은 동거의 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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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의 논리 혹은 동거의 논리
  • 박찬영 진주교대
  • 승인 2023.06.1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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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최근 부산교육대학교와 부산대학교는 글로컬대학 사업 참여의 일환으로 통합 수순에 들어갔다. 부산교대 학생과 총동창회는 이를 ‘경제논리’에 기댄 통합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하며 철회를 요청하고 있다. 두 대학 간의 통합을 학령인구의 급감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응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해법이 필연적인 것은 아니다. 기존 틀을 유지하면서도학급당 학생 수를 적극적으로 줄여가면서 보다 나은 선진적인 교육실천의 대안을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 간, 특히 교대와 거점 국립대 간의 통합 논의가 복잡할 수밖에 없는 것은 초등교사 양성 기관이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선결과제가 놓여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과제에 답하기란 쉽지 않다. 사범학교에서 시작하여 1980년대 초에 완성시킨 ‘교육대학교’ 모델이 독립된 목적형 양성 체제의 한 가지 길임을 암묵적으로 시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대체로 교대와 지역 거점 국립대의 통합을 거부하는 이들은 이 입장에 서 있을 것이다. 

1980년대의 ‘교육대학교’ 모델은 독립적인 목적형 대학교에 대한 주체적인 선택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폐쇄적인 목적형 사범학교의 전통을 교사 교육의 이상으로 간주한, 성찰되지 않은 선택의 결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 구축된 교사의 역할과 주어진 현장을 자명한 것으로 간주하며, 이와 연계된 교사교육을 요구하고 준비하는 우리의 현실을 떠올리면 이러한 의심은 지울 수 없다. 

우선 우리의 교육대학교 모델이 세계적으로 볼 때 예외적이라는 것부터 확인해 두자. 이는 국외의 사례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사범학교의 어원인 ‘l’École Normale’이 처음 등장했던 프랑스는 1989년까지 ‘사범학교’에서 초등교사를 양성하다가 1990년을 기점으로 ‘IUFM(Institut universitaire de formation des maîtres)’에서 초·중등 교사를 같이 양성하게 된다. 독일의 경우 주마다 다르지만, 이를테면 바덴-뷔르트베라크 주의 여러 대학교는 초·중등교사 양성을 종합대학 내에 단과대학 형식으로 설치해 두고 운영한다. 미국 또한 유사한 변화를 일찍이 보여주었다. 미국의 사범학교는 19세기 말에 교육대학으로 바뀌고, 1960년대 이후에는 종합대학교에 통합되어 단과대학 위상을 갖게 되었다. 일본의 경우 전전까지의 사범학교는 전후 목적형 대학화와 개방제, 다시 말해 지역 거점 교원대와 종합대학교 교육학과를 통한 양성 체제로 재구축되었다.  

이와 같이 초등교사 양성 기관의 대학화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물어야 할 것은 사범학교(혹은 교대)의 대학화 혹은 (유럽 경우의) 대학원화가 보다 나은 초등교사 양성에 성공적이었는가라는 점이다. 문제는 이 길을 이미 걸었던 곳에서의 답변이 꼭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정바울의 전언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사범학교가 종합대학교의 단과대학이 되었지만 교육대학교는 단과대학으로 타 단과대학과 경쟁하면서 초등교사 양성 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이 약화되었다. 유럽의 일각에서도 비슷한 견해를 전한다. 즈가가는 영국 대학이 기업화가 가속화됨으로써 종합대학의 단과대학이 된 교사 교육의 제약을 지적하고 있다. 프랑스의 들라이예는 IUFM이 이후 교사전문대학원인 ‘Inspé’로 변화되는 동안 초등교사양성의 관리가 약화되었다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목적형 기관으로서 우리의 교육대학교(혹은 교대들의 지역 집합의 가능태 또한) 그 자체를 대안으로 간주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지난 40여 년 동안 페다고지 차원의 한계를 어느 정도 노정해 온 것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초등교사 양성 기관의 교육과 현장 교사에게 요구되는 탁월성 간의 간극은 예나 지금이나 작지 않다. 심지어 교육대학교 일부 재학생과 졸업생은 자신의 전공을 초등교육으로 분명히 인식하지 못하거나 ‘심화과정’을 전공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이는 어떤 의미에서 ‘초등교사 정체성’ 구현에 1980년대의 교육대학교 모델이 실패한 한 가지 방증으로도 읽힐 수 있다. 

그러니까 교대의 지역 거점대학과의 통합은 그 자체로 선도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1980년대 모델 ‘교육대학교’ 또한 그 자체로 충분한 것도 아니다. 우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무엇이 좋은 교사 양성을, 그리고 성장하는 현장 교사의 삶을 가능케 하는가에 있다. 최근까지 논의되다 유보된 교사전문대학원의 도입 소식을 듣고 “석사를 배출하더라도 현장에 오면 지금까지 하던 일과 똑같은 (필자 - ‘수업’과 직결되지 않은 비본래적인) 일을 할 텐데. . .” 라며 왜곡된 초등교육 현장의 문제를 지적하던 어느 교사의 목소리를 잊을 수 없다. 여기에 부산교육대학교와 부산대학교의 통합에 찬성하는 측이든 반대하는 측이든, 현장 교사의 이 같은 문제의식에 답할 책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핀란드의 1990년대 초 교사양성 개혁은 ‘교육대학교’ 모델을 수선하려는 입장에서도, 통합의 수순을 밟고 있는 대학 측에도 한 가지 참고사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핀란드는 1991년 이후 학교장학이, 1992년에는 교과서 검인정제가 사라지며, 1994년부터는 현장교사에게 교육과정 운영과 수업에 대한 재량권을 충분히 제공하여 성장하는 전문가 교사의 토대를 확보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양성 기관에서는 실제 현장과 보다 밀착된 프로젝트 교육을 함으로써 교사양성 개혁에 성공한 한 가지의 길을 제시하였다. 결국 통합론 측이든 독립론 측이든 교사 교육의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기 위해서는 더 많은 상상력과 성찰이 불가결하다. 그것이 무엇이든 대안 논의의 한 가운데에는 ‘좋은 교사 양성과 전문가로서 성장하는 교사의 삶’이 있어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박찬영 진주교대·교육철학

진주교육대학교 도덕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듀이 철학과 어린이 철학 연구로 박사를 했다. 파리10대학 대학원에서 교육철학과 페다고지를, 나고야대학과 연세대 대학원에서 중국철학과 한국학을 연구했다. 저서로 ≪어린이철학, 도덕 교육에 대한 또 다른 목소리≫와 ≪페다고지를 위하여-프레네의 <페다고지 불변요소> 읽기≫가 있고, 역서로 ≪교육과 사회학≫, ≪교실 속 어린이철학≫,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넬 나딩스의 교육철학≫이 있으며, 공역으로 ≪영국 교육의 실패와 핀란드의 교육≫, ≪핀란드에서 배우는 행복한 아이 키우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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