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실종의 시대와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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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실종의 시대와 정치학
  • 박광기 대전대
  • 승인 2023.06.1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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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기 칼럼]

“정치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나 다양하다. 이것은 ‘정치의 개념’이 인간이 살고 있는 시대에 따라서 다르게 정의되고, 또한 정치학을 연구하는 학자에 따라서 정치의 범주에 무엇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다른 답을 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 정치는 시간과 공간, 환경, 대상과 내용 등에 따라서 각각의 의미와 정의가 다르게 나타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치의 개념이 다양하다고 하더라도 정치의 개념을 정의할 때 변화하지 않고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정치는 그 시대를 살고 있는 인간의 삶에 따라 나타나는 가치의 문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의견에 대한 대립과 갈등, 그리고 투쟁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조정해 가는 과정과 결과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의 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변화하지 않는 일종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정치에 관한 연구는 꾸준히 지속되어 왔다. 그리고 정치에 관한 연구는 특히 ‘이론’과 ‘실제’ 또는 ‘현실’의 관계에서 어떤 것이 중요한지 그리고 무엇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지에 대한 논의와 더불어 ‘이론’과 ‘실제’의 상관관계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이론’과 ‘실제’의 사이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들 논의와 연구가 ‘현실’에서 살고 있는 인간을 제외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정치에 관한 연구는 바로 현실에 살고 있는 인간의 삶을 가장 중요한 목표로 삼고, 삶을 풍요롭게 하고 안녕과 행복을 추구하는 연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 현실에서 나타나는 현실적인 문제는 ‘이론’과 ‘실제’가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현실에서는 ‘이론’과 ‘실제’가 너무나 다른 방향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가 추구하는 서로 다른 의견충돌이나 갈등, 그리고 대립과 투쟁을 조정하고 타협하여 문제를 해결하여 인간의 삶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 현실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바로 현실에서 우리가 느끼고 체감하는 것은 정치가 실종되었다는 것이다. 정치가 실종되었다는 것은, 갈등이나 대립을 조정하고 타협하는 원칙이나 방법도 없고 과정을 무시하고 오로지 자신의 의견과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며, 자신의 주장만을 강조하고 다른 의견에 대해 투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하는 원칙이나 방법, 그리고 과정을 모르거나 무시하는 것은 단순히 무지(無智)로만 이해할 수는 없다. ‘안다는 것’은 인간이 타고난 지혜가 뛰어나서 처음부터 아는 것이 아니다. 지혜는 배우고 습득하고 경험하고 체험하며 꾸준한 고민과 사고를 통해 성숙될 수 있다. 정치의 지혜는 더욱 그렇다. 문제는 정치 실종의 시대에 정치를 배우고 습득하여 실천할 수 있는 과정이나 방법이 마땅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연구’와 ‘정치에 관한 연구’를 포함하여 정치사상이나 정치이론, 정치과정 등을 포함하는 정치학의 연구가 오히려 역설적으로 정치 실종의 시대에 더 강조되고 강화되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학의 현실은 오히려 축소되고 외면 받고 있다.

정치학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정치학과, 외교학과, 정치외교학과, 국제관계학과 등과 같은 대학의 정치학 관련학과가 다른 학과와 통합되거나 폐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도 전국 거의 모든 대학교에는 정치학 관련학과가 존재했다. 그러나 현재 수도권 대학과 지방 거점 국립대학, 그리고 일부 지방사립대에만 정치학 관련학과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으며, 대부분 지방사립대에서는 이미 다른 학과와 통합되거나 폐지되어 그 존재를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학이 축소되고 폐지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대학이 직면하고 있는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신입생이 줄어드는 추세에서 정치학을 지원하는 학생이 줄어들고 있으니 정치학 관련학과의 폐지는 늘 우선순위에 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정치학을 지원하는 학생이 감소하는 이유는 졸업 후 취업이 잘 안 되는 학과라는 부정적인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로 학부모나 학생들이 느끼는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나 혐오 현상이 정치학을 위축시키는 원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정치학을 공부하고 연구한 학생이 졸업 후 모두 정치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정치인이 되려면 반드시 정치학을 전공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치학을 전공함으로써 철학적 사고나 인문적 소양을 함양하고, 특히 정치이론이나 정치과정을 공부함으로써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정치학 전공을 통해 협상의 원칙과 방법, 그리고 그 과정을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정치는 정치인들에 의해 정부나 국회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직면하는 모든 갈등과 대립을 해결하는 것도 정치의 한 부분이다. 또한 사회나 기업,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 발생하는 모든 것이 정치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이유에서 정치 실종의 시대에 오히려 정치학이 필요하고 강화되어야 하는 것이 정치를 다시 바르게 존재하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대안이 아닌가 싶다.


박광기 대전대·정치학

대전대학교 정치외교학 전공 교수. 독일 뮌헨대학교 정치학 박사. 대전대 대학원장 및 도서관장, 국무총리실 인문사회연구회 및 경제인문사회연구회 기획평가위원, 한국연구재단 사회과학단장, CBS 시사포거스 및 시사매거진 앵커, 한국정치정보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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