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면역의 패러다임, ‘사회 면역’…임무니타스와 코무니타스의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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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면역의 패러다임, ‘사회 면역’…임무니타스와 코무니타스의 조합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6.1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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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 면역: 팬데믹 시대의 생명정치 팬데믹을 돌아보며 팬데믹을 대비하며 | 로베르토 에스포지토 지음 | 윤병언 옮김 | 크리티카 | 320쪽

 

이 책은 저자 로베르토 에스포지토가 일찍이 『임무니타스』에서 이론화한 면역의 패러다임을 토대로, 최근 3년간 인류가 경험한 팬데믹의 위기를 다각도에서 조명하고 분석하는 동시에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의 조건들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는 생물학적 전염이 발생하는 경로와 결과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비롯해 면역화가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에 대처해야 할 민주주의 체제 자체의 자가면역적인 성향, 푸코와 생명정치의 비판자들이 범하는 초보적인 오류와 지독한 오해를 비롯해 푸코가 어떤 식으로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근거들, 철학의 대가들이 면역의 철학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았을 뿐 그 개념을 기본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정황들, 최근 3년간 지속된 팬데믹 시대의 정치가 취한 방향과 초래한 문제점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저자에 따르면 현대사회가 팬데믹 사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거벗은 생명의 보호와 고귀한 삶의 영위 사이에서 갈등하며 겪은 이른바 면역 신드롬의 정체는 제재와 자유, 규칙과 예외, 정책과 실존의 대립 관계가 공통성과 면역성, 코무니타스와 임무니타스의 복합적인 변증관계로 환원되는 곳에서 발견된다. 현대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명-정치적 문제의 해결책은 지구촌의 사회적, 정치적, 인류학적 역동성을 지배하는 면역화 패러다임의 기능에 주목할 때 발견된다.

에스포지토의 생명정치 삼부작을 구성하는 『코무니타스』, 『임무니타스』, 『비오스』에서 면역의 패러다임은 사회공동체적 몸을 내부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외부세력에 대한 위험의 경계를 설정하는 근대법의 내재적이고 부정적인 기능과 성향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이었다. 반면에 에스포지토는 이 책에서 면역의 패러다임이 팬데믹 같은 극단적인 위기 상황에서 오히려 긍정적인 기능을 회복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여기서 두 용어로 조합되는 ‘사회 면역’이라는 표현은 ‘임무니타스’와 ‘코무니타스’처럼, 혹은 생명정치의 ‘생명’과 ‘정치’처럼 상호배타적인 형태로 공존하는 두 차원의 극적인 조합을 의미한다.

‘사회’를 공통성의 차원으로, ‘면역’을 개별성과 고유화의 차원으로 이해하면 ‘사회’는 ‘면역’과 이율배반적이고 불가피한 형태로만 공존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팬데믹의 위기가 다름 아닌 면역의 공통적인 실천이 필연적인 과제로 부각되는 상황을 초래했다는 점에 주목하면, 우리가 팬데믹과 유사한 위기 상황에서 추구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사회 면역’, 즉 임무니타스와 코무니타스의 조합이라는 것 역시 분명해진다. 

에스포지토가 생명정치의 긍정적인 전환으로도 이해하는 이 ‘사회 면역’은 인류를 연대의식과 상호보호가 요구되는 글로벌 정치공동체로 사유하기 위한 일종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가깝다. 첫 번째 장에서 저자는 면역의 패러다임이 법적 영역에서 생물학적 영역으로 전이되는 과정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이 과정이 결국 의학과 정치의 중첩을 통해 생명정치와 현대의학에 접목되는 경로를 계보학적인 차원에서 추적한다. 두 번째 장에서 저자가 다루는 것은 면역화의 절대적인 요구에 부응해야 하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의 그 자체로 자가면역적인 특징이다. 에스포지토에 따르면, 대리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 대립에서 드러나는 모순과 문제점들은 본질적으로 자가면역적이며, 이러한 특성은 사회를 ‘치료해야 할’ 단일한 정치적 몸으로 간주해야 하는 상황에서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세 번째 장에서는 푸코와 생명정치에 대한 현대 철학자들의 극심한 오해와 평가의 오류를 지적하면서 이들의 비판적 관점이 지닌 문제점들을 파헤친다. 저자는 푸코에 대한 오해가 전적으로 그의 강의록을 해석하는 학자들의 선입견과 편협한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고, 푸코의 기획은 완성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을 뿐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점을 일목요연하게 증명해 보인다. 

네 번째 장에서는 저자가 면역의 철학자로 간주하는 하이데거, 니체, 루만, 지라르, 프로이트, 데리다, 슬로터다이크의 면역학적 관점을 소개하며 면역학 고유의 의미론이 생철학을 비롯해 존재론, 인류학, 종교, 사회학, 심리학의 영역에서도 핵심 요소로 기능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다양한 관점들로 구축되는 철학의 여정은 데리다가 제시하는 공동-면역의 개념을 통해 절정에 달한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우리 모두가 3년간 경험한 팬데믹 상황을 돌아보며 이 시기에 부각된 다양한 입장과 정책 간의 연관성과 대립 구도 및 세계정세의 변화를 분석하며, ‘사회 면역’이라는 역설적인 패러다임을 극단적인 위기상황의 분석 도구이자 해결책으로 제시한다. 

에스포지토는 비상상태와 예외상태의 차이를 무시하거나 팬데믹의 위기를 상대주의적인 관점에서만 평가하는 입장이 틀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그는 개개인의 생명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를 위협하는 바이러스의 위협만큼은 객관적으로 관찰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반면, 의학의 정치화는 의학의 독재로 이어질 수 있고 정치의 의료화 또는 기술화도 정작 중재와 대화가 필요한 곳에서 정치의 본질적인 힘을 무력화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한다.

오늘날처럼 면역과 권리, 생물학과 법적관행이 강렬하게 조합된 적은 없었다. 에스포지토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적인 차원의 공동체 정신에 호소하며 어떤 긍정적인 생명정치 개념을 도출해낸다. 현대 생물학이 어떤 폐쇄된 신체 개념, 즉 외부 환경과의 모든 교류를 배제하며 정체성을 유지하는 신체 개념을 이미 오래전에 포기하고 환경과의 조화로운 교류를 추구하는 신체의 변증적 이미지를 수용한 것처럼, 사회와 정치도 이와 유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에스포지토의 생각이다. 에스포지토에 따르면 좋든 싫든 하나가 되어버린 지구촌의 모든 사회가 국수주의나 고유의 지정학적 한계를 극복해야만 언젠 다가올지 모를 또 다른 팬데믹의 위기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오늘날의 팬데믹은 사실 건강하지 못한 글로벌화의 결과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공동체를 더 이상 어떤 닫힌 세계 또는 보호받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구분 원리가 지배하는 세계로 간주할 것이 아니라 배타적인 관계성을 허물고 ‘타자의 위험’을 수용함으로써 상호 면역화를 추진할 수 있는 세계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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