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과 서양의 교류가 빚어낸 강렬하고 흥미로운 예술, 자포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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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과 서양의 교류가 빚어낸 강렬하고 흥미로운 예술, 자포니슴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6.10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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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포니슴: 환상의 일본 | 마부치 아키코 지음 | 이연식 옮김 | 시공아트 | 260쪽

 

자포니슴은 무엇일까? ‘자포니슴’은 동양과 서양의 교류가 빚어낸 예술의 강렬하고 흥미로운 예이다. 19세기에 유럽은 일본 예술에 흠뻑 빠져든다. 19세기 중엽 일본이 개항과 근대화를 맞으며 일본의 다양한 미술품이 유럽으로 유입되었다. 특히 우키요에 판화, 병풍, 기모노, 도자기, 천 등의 각종 공예품 등이었다. 당시 일본의 이국적인 분위기와 새로운 필치는 유럽 예술가들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의 이국적인 관심에만 머물러 그림 속에 일본의 문물과 풍속만을 담은 것을 ‘자포네즈리(일본 취미)’라고 부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일본 예술의 형식과 내용, 기법 등을 연구하여 응용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연구자들에 의해 자포네즈리를 포함하는 더 넓은 개념을 정의하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자포니슴Japonisme’이다. 자포니슴은 19세기 후반 서구의 미술에 끼친 일본 미술의 영향을 말하며, 그 영향은 회화, 소묘, 공예 등 예술 전반에 걸쳐 폭넓게 나타난다. 특히 반 고흐와 클림트, 응용 예술 분야 등에서 그 영향을 뚜렷하게 확인해 볼 수 있다.

저자는 단순한 작품 분석을 넘어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자포니슴의 배경을 살피고, 일본 미술이 서양에 미친 영향, 그리고 호쿠사이 등의 화가가 세계적인 화가로 알려지게 되었던 이유에 이르기까지 일본 취미의 세계를 입체적으로 고찰한다.

일본 미술이 특이해 보였던 이유는 뭘까? 서구 미술이 마주한 한계의 돌파구를 일본 미술이 제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는 시각의 확장이다. 서구의 인문주의 사상으로 본 세계는 신-인간-자연이기에 자연물은 오랫동안 경시되어 왔다. 그러나 자연주의를 모티프로 삼은 일본의 균형과 시각의 전복은 옛 질서에 의문을 품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둘째는 예술의 위계질서를 전복하는 일이었다. 유럽은 응용예술이 순수예술에 비해 등한시되어 응용예술의 지위를 격상하기 위한 운동도 많이 벌어질 정도였다. 일본은 그 둘을 나누는 구분이 없었으며, 벼루나 찻주전자처럼 일상 속 물건에 예술적인 것을 적용해 왔다. 이런 상황은 예술 분야의 계급을 흔드는 일이었다. 

셋째는 정치적인 목적이다. 우키요에가 ‘민중의 그림’이라는 점이 당시 공화주의를 표방하던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정치적으로 중요한 키워드로 사용되었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도 있으나 예술가들에게 심미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였기에, 새로운 예술활동을 불러일으키는 데 이용된 것은 분명하다.

자포니슴이 유럽 미술에 끼친 영향을 역설적으로 오늘날엔 실감하기가 어렵다. 인상주의가 득세하며 그 이전 작품들을 잘 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상주의 이전 작품들과 인상주의 작품을 비교하면 그 대조를 실감할 수 있다. 자포니슴의 영향은 대체로 일본의 판화 우키요에에 집중되어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유럽과 미국에서 우키요에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를 할 때, 오히려 일본에서는 장르로서 생명력을 잃어 예술품 대접을 받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에선 수묵화나 불교미술이 고급 예술로 여겨졌고, 우키요에는 서민 계층에서 유행한 판화로 등한시되었기 때문이다. 자포니슴과 우키요에의 입지는 서구인들의 상찬으로 일본에 역수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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