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은 어떻게 오페라의 뮤즈가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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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은 어떻게 오페라의 뮤즈가 되었나!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6.10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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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페라의 여인들 | 지나 오 지음 | 모요사 | 288쪽

 

성악가 지나 오가 그동안 오페라를 노래하며 직접 겪은 오페라의 뒷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준다. 특히 자신이 노래하는 아리아의 여주인공들이 작곡가별로, 나라별로, 시대별로 달리 해석되는 것에 흥미를 느껴 작곡가들의 뮤즈가 된 열 명의 여인들을 선정해, 그들을 주인공으로 한 오페라와 가곡 등 음악 이야기를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과 함께 버무려 세심하게 그려냈다.

ㅇ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왜 이탈리아 베로나가 무대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이 두 어린 여인의 이야기가 이탈리아에서 처음 기원했기 때문이다. 원작은 루이지 다 포르토가 쓴 『새로이 발견된 두 고귀한 연인 이야기』다. 이를 원작으로 한 최초의 오페라는 니콜로 징가렐리의 〈줄리에타와 로메오〉이고, 그 뒤로 니콜라 바카이의 〈줄리에타와 로메오〉 그리고 빈첸초 벨리니의 〈카풀레티 카와 몬테키 가〉가 이어졌다. 특히 벨리니가 그리는 줄리엣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바탕을 둔 샤를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과는 사뭇 다르다. 구노의 줄리엣이 올리비아 핫세처럼 상큼하고 청순하다면, 벨리니의 줄리엣은 이성적이고 침착하다. 그녀는 로미오를 사랑하지만 가족과 조국을 져버릴 수 없다며 함께 야반도주할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ㅇ 영국 튜더 왕가의 두 라이벌 여왕 스코틀랜드의 메리와 잉글랜드의 엘리자베스는 엇갈린 운명으로 수많은 소설가와 작곡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그중 독일의 극작가 실러는 참수형으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메리 스튜어트의 편에서 쓴 희곡 『마리아 스튜아르트』를 남겼다. 작곡가 도니체티는 실러의 희곡을 바탕으로 〈마리아 스투아르다〉라는 오페라를 작곡했고, 실러가 상상력으로 창조해낸 ‘두 여왕의 설전 장면’이 명 장면으로 남았다. 리하르트 바그너도 유명 소프라노 쥘리 도뤼그라를 위해 ‘마리아 슈투아르트의 작별 인사’라는 곡을 작곡했고, 로베르트 슈만도 ‘마리아 슈트아르트 여왕의 시’라는 연가곡을 남겼다. 불행한 운명을 거스르지 못하고 사그라져 간 여인은 이처럼 많은 예술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이다.

ㅇ 지금은 〈세비야의 이발사〉 하면 로시니를 먼저 떠올리지만 당대에는 앞서 조반니 파이지엘로가 작곡한 〈세비야의 이발사〉가 훨씬 인기를 끌었다. 그래서 로시니가 초연을 올릴 때는 파이지엘로의 열성 팬들이 몰려와 훼방을 놓는 바람에 결국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 첫 공연은 실패로 막을 내려야 했다. 지금은 파이지엘로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는 이들이 많지만, 당대에는 가장 성공한 작곡가로 모차르트에게도 영향을 준 거장이었다. 

ㅇ 전 세계적으로 신데렐라 스토리는 무려 345개에 달한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샤를 페로와 그림 형제 버전이다. 동화로는 그림 형제 버전이 유명할지라도 해피 엔딩으로 기억하는 이야기는 거의 샤를 페로 버전이다. 가장 유명한 오페라는 단연 로시니의 〈라 체네렌톨라〉(신데렐라의 이탈리아 이름)이다. 그런데 로시니의 오페라에서 신데렐라는 왕자가 선택해줄지 말지 모르는 운명에 기대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사랑하는 상대를 직접 선택하는 자기 주도형 여인으로 그려진다. 또 최근에야 서서히 부활하고 있는 프랑스의 쥘 마스네가 작곡한 〈상드리용〉은 신데렐라의 상대 역인 왕자 역으로 팔콘 스타일의 여성 가수를 설정하고 있다는 게 재미있다. 과연 그의 의중은 무엇이었을까.

ㅇ 클라라와 리스트, 당대를 대표하는 두 피아니스트가 하이네의 시 〈로렐라이〉에 곡을 붙여 각각 다른 가곡을 남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클라라의 가곡은 비록 그녀 생전에 출판되지는 않았지만 화려한 반주부가 돋보이며 극적인 구성도 훌륭하다. 리스트의 가곡은 짧은 오페라를 보듯 드라마틱한 면모가 두드러진다. 두 사람은 왜 로렐라이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됐을까. 저자는 두 사람의 〈로렐라이〉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비교해 음미해보길 권한다. 

ㅇ 프랑스 작가 아베 프레보의 소설 『마농 레스코와 슈발리에 데 그리외 이야기』는 당시의 사회적 가치를 전복시키는 여성상으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킨다. 청순하고 아름답지만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고, 욕망 앞에 솔직한 여인! 바로 마농이다. 마농의 이야기는 쥘 마스네를 비롯해 여러 작곡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여러 버전의 〈마농 레스코〉가 탄생했다. 그중에서도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가 가장 유명하다. 그런데 이 오페라의 대본은 처음에 루제로 레온카발로가 맡았다는 것을 아는가. 물론 푸치니의 집요한 요구에 지쳐 일찍이 대본 작업에서 빠지지만 이후 두 사람의 악연은 〈라 보엠〉으로 이어지며 희대의 스캔들을 불러온다. 결국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는 루이지 일리카와 주세페 자코자에 의해 완성된다. 이 두 명은 〈라 보엠〉, 〈토스카〉, 〈나비 부인〉의 대본을 함께 써서 푸치니가 불멸의 작곡가로 등극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된다. 물론 이들의 작업 과정이 순탄할 리는 없었다. 

ㅇ 지금까지 〈라 보엠〉은 푸치니의 곡으로 익히 잘 알려져 있지만, 당시 루제로 레온카발로의 〈라 보엠〉도 이에 못지않게 유명했다. 오히려 초연에서는 푸치니가 혹평을 받았고, 레온카발로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역사는 푸치니에게 완벽한 승리를 안겨주었다. 그런데 두 개의 〈라 보엠〉이 무대에 올려지기까지 사회적인 이슈가 될 정도로 엄청난 스캔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바로 두 사람 간의 표절 논란이다. 과연 푸치니는 어떻게 〈라 보엠〉의 원작 소설을 알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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