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의 지속과 세계 안보 뒤흔들 기후위기에 대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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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문명의 지속과 세계 안보 뒤흔들 기후위기에 대처해야
  • 이동민 가톨릭관동대·지리교육학
  • 승인 2023.06.1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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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논단]

 

올해만 놓고 보더라도, 전 세계에서 이상기후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3월에 봄꽃이 때 이르게 피었다 서둘러지더니, 4월에는 냉해로 인해 농업에 적지 않은 타격을 입어 정부 차원에서 냉해 피해를 입은 농가를 특별하게 지원해야만 했다. 비록 기상청에서는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반박하지만, 올 여름에는 2~3일을 제외하면 비 오는 날만 이어진다는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마치 정설처럼 회자되고 있다. 올 여름 비 이야기는 과학적인 근거나 타당성과는 별개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상기후, 기후변화를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방증하는 게 아닌가도 싶다.

기후위기라 불릴 정도의 이 같은 이상기후, 기후변화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일도, 지난 1~2년 만에 갑자기 일어난 문제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기후가 아열대 기후로 바뀌고 장마철이 우기로 변하리라는 이야기가 들린 지는 벌써 10년이 훌쩍 지났다. 해외로 스케일을 키워 보면, 태국 등 동남아시아 지역과 인도는 여름이 오기도 전인 4월 무렵부터 체감온도가 40~50도를 웃도는 극심한 폭염으로 인해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할 정도로 심각한 어려움을 겪어오고 있다. 유럽 유수의 농업지대인 스페인 역시 기온의 과도한 상승으로 인해 농업에 중대한 타격을 입었고, 이로 인해 스페인으로부터 대량의 농산물을 수입하는 영국까지 물가 앙등이라는 어려움을 겪을 정도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인 2003년 여름에는 유럽에서 4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져, 사망자가 속출하기까지 할 정도였다. 

기후위기는 안보 문제와도 직결된다. 사실 인위적인 기후변화가 이루어지기 이전이었던 전근대에도, 기후변화는 국가안보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평균기온이 1도 정도 상승하는 온난기에 접어든 나라는 부국강병을 이루며 융성했고, 평균기온이 1도 정도 하강하는 한랭기, 소빙기에는 거대한 제국조차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으며 자멸해 갔다. 로마, 흉노 제국, 한나라, 당나라, 몽골 제국, 명나라 등 인류사에 큰 획을 그으며 수많은 문명과 문화권, 민족집단의 영역을 만들어 낸 거대한 제국의 흥망성쇠 역시, 전근대의 자연스러운 기후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예를 들면 로마와 한나라는 온난해진 기후 덕분에 세계제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고, 따뜻하던 기후가 한랭해지자 농업 생산성이 저하되고 국력이 약해진 끝에 몰락하고 말았다. 명청 교체 역시 명나라의 한랭기 도래로 인한 국력의 저하와 민란의 빈발, 그리고 이를 틈탄 랴오둥반도 일대의 건주여진의 발흥으로 인한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질서 변화와 관계 깊다. 사실 명나라는 청나라에 군사적으로 패망한 것이 아니라 한랭화로 인해 이어진 흉년 때문에 일어난 대규모 민란 때문에 자멸했고, 그 덕분에 청나라는 마치 어부지리처럼 중국의 통일 왕조로 거듭날 수 있었던 측면도 다분하다.

 

오늘날의 기후위기 역시, 전근대의 기후변화가 빚어낸 지정학적 질서의 격변 못지않은 안보상의 위기를 불러오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 가운데, 탈레반이나 ISIS, 나이지리아의 보코하람 같은 극단주의 테러단체의 극악무도한 테러와 범죄 행각을 이해하거나 그에 공감할 분은 아무도 없으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천인공노할 테러와 인권 탄압, 전쟁범죄 행각을 일삼는 이런 집단이 어째서 활개를 치면서 세계 안보에 위협을 주고 수많은 사람을 불안과 불행으로 몰고 가는 것일까? 이 역시 기후위기와 관계 깊다. 이들이 활동하는 지역은 건조기후에 해당하거나 또는 건조기후대와 인접하다. 이런 지역은 기온이 급격히 상승할 경우 수분의 증발량도 함께 증가하지만, 애초에 건조한 지역이라 증발한 수분이 충분한 양의 비구름을 만들지 못한다. 즉, 자연스러운 수준을 넘어선 지구온난화가 이어지면 건조지대나 내륙지대는 계속해서 건조해지면서 용수부족이나 사막화 등의 문제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탈레반과 ISIS, 보코하람 등은 이 같은 기후위기가 불러온 용수부족과 사막화의 확대 속에서 수자원을 장악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지탄 속에서 힘을 잃고 사라지기는커녕 악착같이 테러와 범죄 행각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안보위기로 이어지는 문제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나이지리아 같은 지역에만 국한될 일이 아니다. 기후위기로 인해 세계 곡물 생산량은 20세기 후반~21세기 초반 들어 되레 감소하는 추세에 있고, 사막화를 비롯한 자연재해의 빈도 역시 증가하고 있다. 이런 문제가 지속된다면 세계 안보는 더한층 큰 위협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5년 5월 20일 미국 해안경비대 사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기후변화를 세계 안보의 위협을 증폭하는 요인이라고 언급한 일은, 기후위기가 세계 안보에 어떤 위험을 가져올지를 선명하게 예견한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엔트로피 개념으로 유명한 미국의 경제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저서 『회복력 시대(The Age of Resilience)』에서, 앞으로의 세계는 화석연료 매장지의 지배를 둘러싼 군사력 중심의 지정학을 벗어나 친환경‧신재생 에너지의 공유를 핵심으로 삼는 생물권 정치의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야 함을 역설한 바 있다. 아쉽게도 리프킨의 예측 내지는 제언은 현실 속에서 순항하고 있지만은 않은 듯하다. 현실 정치와 사회를 보면, 파리 기후협약이 제시한 금세기 말까지 지구 평균기온 상승치를 1.5도 이하로 억제한다는 목표치를 달성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세계 각국 정부와 산업체, 그리고 개인의 이해관계 때문이다. 당장 우리나라만 보더라도, 신재생 에너지 정책의 문제를 성토하는 언론 보도를 어렵사리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기후위기에 대한 대처, 에너지나 경제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무슨 정치성향의 문제나 ‘배부른 소리’ 따위로 매도할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튼실한 산업과 경제, 그리고 우수한 무기체계를 갖고 있더라도, 화석연료의 패러다임, 환경보다 경제적 성장을 우선시하는 패러다임으로는 기후위기라는 무서운 적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미군으로부터 제공받은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이라크 신정부군이,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압도적으로 열세였지만 기후위기를 무기로 삼았던 ISIS의 민병대와 테러리스트 앞에 수도 없이 참패를 거듭했던 것처럼 말이다.

국가 안보를 위해 스텔스기, 이지스함, 탄도미사일 요격체계와 같은 첨단 무기를 도입하는 등의 국방력 강화를 시도하는 일이 중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는 상식이다. 하지만 어떤 첨단무기로도, 식량위기를 가중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땅마저 침식해 버릴 기후위기를 막을 수는 없다. 기후위기, 그리고 기후위기가 불러올 안보상의 위기에 대처할 생물권 정치로의 전환은 결단코 급진적인 주장도 배부른 소리도 아니다. 기후위기라는 미증유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코페르니쿠스적인 패러다임 전환과 이를 실천할 대대적인 노력은, 인류의 생존과 공영, 문명의 지속을 지키기 위한 가장 시급한 안보상의 과제이다.


이동민 가톨릭관동대·지리교육학

가톨릭관동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 서울대학교 지리교육과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 『기후로 다시 읽는 세계사』, 『초한전쟁: 역사적 대전환으로의 지리적 접근』, 수필집 『서해에서』, Geography Teacher Education and Professionalization(공저), 역서 『세계화와 로컬리티의 경제와 사회』, 『사카모토 료마와 메이지 유신』(공역), 『지리의 모든 것』을 발간했으며, 역사, 특히 전쟁사를 지리학 및 지리교육의 견지에서 재해석하는 작업에 천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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