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혁 시도·선거제 개편 논의, 왜 지지부진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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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 시도·선거제 개편 논의, 왜 지지부진한가?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6.10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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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RS 현안분석]

- 선거제 개편은 국민에게 ‘인기 없는’ 개혁
- 거대정당들의 거부권 전략 통제해야 선거제 개혁 성공
- 거대정당들을 개혁당사자로 세우는 개혁전략 설계해야
- 권역별 비례대표제-개방형명부제 확대가 열쇠 될 수 있어
▲ 지난 해 12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2023년 정치개혁의 해 선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사진=이탄희 의원실

정치개혁은 한국 사회의 생존과 발전에서 사활을 건 관건이 되었다. 민주주의 공고화 이후 정치개혁은 첨예한 정치갈등을 야기하는 승자독식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 선거제에서 ‘비례성’을 강화하고자 해왔다.

정치권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선거에서 비례성을 높이기 위한 준연동형비례대표제(이하 준연동형제)를 도입하여 시행한 바 있고 올 초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를 정치개혁의 화두로 던짐으로써 정치개혁의 공론화에 시동이 걸리게 되었다. 그 후 ‘국회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가 여야합의로 가동되었고, 2023년 4월에는 선거제 개편 방안을 놓고 전원위원회가 개최되어 4일간 열띤 토론을 전개하기도 했다. 또 최근 5월에는 정개특위 주최로 일반시민 약 500인이 참여하는 선거제도에 대한 공론조사가 개최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선거제 개편 시도는 성공보다는 실패에 가까운 경험으로 점철되어 왔고, 지금도 진전이 매우 더딘 상황이다.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정치개혁 시도들은 왜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가? 단순히 절차적 문제를 둘러싼 정치싸움 때문인가? 아니면 본질적으로 해소하기 어려운 정치적 이해구조의 편차 때문인가? 이에 국회입법조사처는 5월 31일(수), 「선거제 개편 논의, 왜 침체에 부딪혔나?: 새로운 대안 및 전략에 대한 모색」이라는 제목의 『NARS 현안분석』 보고서(작성자: 고원 정치행정조사심의관)를 발간했다.

이번 보고서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선거제 개편 논의가 좀처럼 진전되지 못하는 원인을 민주주의 공고화 이후의 장기적 맥락에서 좀 더 근본적 시각으로 분석하면서 현 침체를 극복할 방향과 대안을 제안하고 있다.

 

■ 지금까지 정치개혁 시도는 왜 성공하지 못했는가?

▶ ‘거부권’(veto power) 회피전략의 부재

지금까지 정치개혁 시도가 성공을 거두지 못한 데는 일련의 ‘거부권’ 행사를 통제 및 회피하는 전략이 부재했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중심 요지다. 거부란 어떤 정책의 실행에서 나타나는 제약과 장벽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정치제도, 대중여론, 정당 간 세력구조 등 다양한 차원이 있다. 거부행위가 주로 문제되는 경우는 대체로 ‘인기 없는’ 개혁일 때가 많다. 

거부행위에 직면할 가능성이 큰 개혁은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 혹은 회피할 수 있는 특별한 전략이 요구된다. 이는 정치개혁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특히 비례성을 강화하는 정치개혁은 의원정수 확대·비례대표 증원과 같이 비용 증대를 수반할 가능성이 커서 국민에게 ‘인기 있는’ 개혁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런데 지금까지 비례성을 높이기 위한 선거제 개편의 시도들은 거부행위를 효과적으로 통제 혹은 회피하기 위한 전략이 부족했다.

▶ 민주주의 공고화 이후 정치개혁의 어려움

민주주의 공고화 이후 첨예한 정치갈등을 야기하는 승자독식 구조를 완화하기 위해 선거제에서 ‘비례성’을 강화하고자 여러 차례 시도해왔다. 노무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안철수의 ‘새정치’ 실험, 21대 총선 직전 준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 그리고 최근 선거제 개편 논의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선거제 개편의 진전이 더딘 이유는 일차적으로 비례성 강화에 초점을 맞춘 정치개혁이 의원정수확대·비례대표증원 등 국민에게 ‘인기 있는’ 개혁이 아니기 때문이며, 또한 정치집단들은 국민의 정서적 반감을 활용하여 거부권(veto power) 전략을 구사하고자 하는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었다.

지난 총선 당시 준연동형제가 도입되었으나 성공적으로 정착되지 못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준연동형제 추진집단은 주로 정당연합의 성사에 주력하면서, 대국민 설득과 여론압력의 조직에는 강한 의지와 제대로 된 전략이 부족했다. 

둘째, 더불어민주당이 막판에 거부행위자로 돌아선 데서 보듯이, 준연동형제 추진연합은 결속력에서 내생적 약점을 갖고 있었다. 가령 다당제를 지향하는 준연동형제는 거대양당의 수혜자인 민주당에게 자신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면도 있었기 때문에 추진연합의 결속을 일관되게 유지하기 어려웠다. 

셋째, 그와 같은 취약성 속에서 미래통합당의 강력한 거부권 발동과 비례위성정당 창당은 준연동형제에 상당히 강한 균열을 낼 수 있었다. 

 

■ 정치개혁의 성공을 위한 대안과 전략 모색

▶ 한국정치의 거부권(veto power) 구조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

선거제 개편 논의의 진전을 위해서는 한국정치의 거부권(veto power) 구조에 대한 현실적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 첫째, 의원정수 증원과 현행 방식의 비례대표 확대에 대한 국민여론의 거부 정서는 당분간 구조적 상수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이를 역행하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정치개혁은 거부권 행사에 쉽게 직면하게 되고, 좌초당할 가능성이 크다.

둘째, 거대양당제에서 다당제로의 ‘전면적’ 전환은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정당체제의 문제는 선악 구도의 문제라기보다는 그 사회의 역사적 특수성의 맥락과 깊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당제로의 전면적 전환을 상위전략으로 하는 정치개혁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셋째, 비례성 강화를 위한 선거제 개편은 국민에게 ‘인기 있는’ 개혁이 아니기 때문에 대의제 정치집단들 사이의 협상과 타협에 많은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거대정당들을 개혁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이해당사자로 세우는 제도의 설계와 추진전략이 필요하다. 

▶ 비례성의 세 가지 차원과 개혁전략 설계

한국정치에서 불비례성을 해소하는 일은 현 단계에서 정치개혁의 핵심 방향이다. 그것은 정치에서    승자독식을 개선하고 갈등과 대립을 완화하여 국민통합을 달성하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주요 국가정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도 사활적 중요성을 갖는다.

비례성에도 다양한 차원이 있다. 한국정치에서 나타나는 불비례성 현상에는 크게 세 가지 차원이 있다. 첫째는 우리가 흔히 지역주의라고 부르는, 일당 독점의 지역적 할거체제로 인한 불비례성이다. 둘째로는 거대양당제로 인해 대정당과 소수정당 간에 발생하는 불비례성이다. 셋째는 최근 수도권 집중과 함께 급속히 부상하는 현상인데, 대도시권에서 단순다수소선거구제로 인해 발생하는 불비례성이다.

위 세 가지는 각각 다른 차원의 문제들로서 정치구조의 비례성 강화를 위해 모두 필요한 과제들이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어떤 가치와 목표를 중심으로 제도적 조합과 우선순위를 설정할 것인가는 개혁의 방향과 의미를 크게 달라지게 만든다. 선거제 개편이 지속적 동력을 갖고 성공에 이르기 위해서는 국민적 공감대와 지지를 최대한 확보하고, 아울러 거대정당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정치집단들의 참여를 유인할 수 있는 제도개혁의 새로운 설계가 필요하다.

▶ 선거제 개편의 목적 및 방향의 명확한 설정

최근에 국회 주최로 열린 선거제 개편을 위한 시민공론조사는 선거제 개편의 목적과 취지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방향성의 부족으로 공론조사의 진행이 선거제의 가치들(예를 들어 대표성·비례성·책임성)을 단순 나열하여 논의하는 데 그친 감이 없지 않다. 그 결과 공론조사의 결과가 상호 모순적으로 보이는 현상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가령 선거제개혁의 필요성에 압도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사실상 현상유지에 가까운 ‘현행 소선거구제와 전국단위 비례제의 존속’을 선호하는 비율이 공론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늘어났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또 비례대표 확대가 사전-사후 설문조사에서 늘긴 했지만, 현행 소선거구제에 대한 높은 선호와 어떻게 양립시킬지 고민을 던져준다. 이는 선거제 개편 논의에서 표적을 명확하게 설정하여 집중하고, 그 목적과 방법들 사이에 모순과 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개혁전략을 설계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 권역별 비례대표제 개방형-명부제 조합의 전략적 중요성

구체적 대안으로서 권역별 비례대표제-개방형 명부제 조합은 현 단계에서 의원정수 확대 없이 선거제의 비례성을 강화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첫째, 이 제도는 지역대표의 성격을 상당히 갖고 있고, 유권자가 대표자를 직접 선출할 수 있어서 국민의 반감을 완화할 수 있다.
 
둘째, 지역구 감소에 따른 기성 정치인들의 반발을 권역단위 선거 출마 기회로 보상함으로써 상당 부분 상쇄할 수 있다. 가령 더불어민주당은 영남에서 의석 진출의 기회를 넓힐 수 있고, 국민의힘은 수도권 대도시에서 의석 진출의 기회를 안정시킬 수 있으므로, 총량에서는 이익 균형이 달성될 수 있다.

셋째, 지역구와 권역별 비례대표의 비율을 큰 폭으로 조정할 수 있어서 비례성을 상당히 제고할 수 있다.

넷째, 미래지향적 시대요구에 부응하고 소지역주의에 매몰되지 않는 큰 정치인의 양성 통로가 될 수 있다.

다섯째, 권역별 비례대표 의석이 충분히 늘어날 수 있다면, 소수정당도 지금보다 더 많은 의석을 획득할 가능성이 열려있다.

 

■ 선거제 개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합목적성 및 정합성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거부행위로 작용할 수 있는 다양한 지점들을 잘 관리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즉, 국민의 정서적 반감을 완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적합한 제도를 선택하고, 협상의 주체들이 거부권을 활용하지 못하도록 이익 균형을 유지하는 제도의 설계가 중요하다.

보고서는 그와 같은 조건들을 충족하면서도 비례성을 증대시킬 방안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또한 선거제개편의 목적과 방향을 명확히 하여 목표와 전략 간에 내적 모순과 충돌에 빠지지 않도록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특히 현 단계에서 거부권 행사를 방지하면서 선거제 개편의 핵심인 비례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권역별 대표제 개방형-명부제의 조합이 중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 하에서 그 제도의 개요와 효과를 개관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정교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추가적 검증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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