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문학교육 방향에 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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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문학교육 방향에 관한 소고
  • 김익진 강원대·프랑스문학
  • 승인 2023.06.0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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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우리나라 대학에서 현대적 문학교육이 시작된 것은 어림잡아 1920년대 전후로 볼 수 있다.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에 문학과가 생긴 것이 1917년이었기 때문이다. 1905년 설립된 고려대학교 전신 보성전문학교에는 법과와 상과만 존재했었고 1926년 일본인들에 의해 설립된 경성제국대학에는 법학부와 의학부만 설치되었다. 조선사람들의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는 데 일조를 할 수 있을 인문 사회 학부는 경성제국대학의 관심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따라서 조선 땅에 문학을 비롯한 인문학 관련 학과가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라고 보아야 한다. 

이때 개설된 문학 관련 학과들은 언어별 분류체계를 기준으로 개설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국어국문학과, 영어영문학과 등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학과의 명칭들은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간혹 학과 명칭을 ‘문화’니 ‘지역’이니 하는 말을 덧붙여 혁신을 꾀하려는 듯 보이는 다양한 움직임들도 따지고 보면 외형적 차원의 변화일 뿐 근본적 개혁과는 거리가 멀었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변화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급격하게 진행되었지만 70년 이상을 이어오고 있는 대학의 문학교육의 방향과 과정은 변화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반세기만에 서구열강들이 200년 이상 밟아온 산업화의 여정을 숨 가쁘게 따라 잡았다. 그리고 주지의 사실이듯 그 급격한 발전과정에서 많은 부작용을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경제 분야에 집중되었던 우리의 급성장은 많은 사회적 불균형을 초래했다. 그런데 이 불균형이 제대로 해소되기도 전에 우리는 차세대 산업혁명을 이야기하고 있다. 

차세대 산업혁명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지난 세기의 시행착오를 교훈 삼겠다는 의지와 기획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실천의 첫걸음은 교육을 통해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문학과 철학 그리고 예술을 포함한 넓은 의미의 인문학은 이 실천적 교육에서 핵심역할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인공지능이 큰 역할을 하게 될 미래에 인간의 정체성과 가치를 확보해 줄 수 있는 것은 모던 사회를 지배해온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이 엘리트만의 소유물이었던 구한말 이전에 우리의 인문학은 지배자들의 학문이었다. 소수의 아는 사람들이 다수의 모르는 사람들을 통치하는 세상, 앎은 어려운 것이니 어리석은 백성들은 알려고 하지 말고 선택받은 소수의 아는 사람들을 믿고 따르는 것이 옳다는 믿음, 구한말 이전의 이 계급적 통치이념의 근간이 된 엘리트 인문학은 분명 전근대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전근대적 의식은 20세기 전후 우리를 비극적 상황으로 몰고 갔다. 근대적 부르주아들이 앎의 힘을 키워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자리 잡았던 서구사회, 즉 이전 세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에게 앎이 허락된 사회를 만들었던 서구와, 아시아에서 이를 가장 먼저 흉내 내었던 일본에 의해 우리는 철저하게 유린되었던 것이다.

구한말 우리의 선현들은 국가의 힘을 키우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국민이 현실을 직시하고 앞날을 위해 해야 할 일을 깨닫는 것이 우선 과제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선현들이 백년지대계의 교육을 강조하며 온 국민이 몽매함에서 깨어나기 위해 앎을 찾아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것을 계몽이라 했다. 계몽의 인문학은 엘리트 인문학으로 망했던 우리에게 자유를 안겼고 우리를 강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시대는 또 변했다. 해방 이후 우리 국민의 의식과 교육수준은 높아졌다. 그러는 동안 외적으로는 군사독재로, 그리고 내적으로는 자체적 역량의 한계로 인해 답보하고 있던 대학의 인문학은 대학 밖의 앎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로 인해 계몽의 역할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모르는 자가 아는 자를 계몽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의식과 교육수준이 높아진 시민들에게는 이제 인문학자들의 계몽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몽의 역할을 상실한 인문학은 다시 새로운 역할을 모색했고 찾아냈다. 비판의 역할이었다. 사회비판, 정치비판, 문예비판 등 그 많은 비판들이 때로는 비평이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평론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그 비판은 생산성을 잃어버린 채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비판의 인문학은 다수가 앎을 공유할 수 있는 온라인 세상이 활성화되면서 그나마 유지하던 힘마저 상실하게 되었다. 지식 및 문화 소비자들은 더 이상 영화평론가 등의 비평인문학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네티즌들의 별점이 이를 대치했다. 인문학의 위기로 이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인문학의 한 분야인 문학도 이 흐름을 고스란히 따라왔다. 계몽의 인문학과 비판의 인문학은 깨달음과 이해를 최종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다. 하지만 문학은 학문과 예술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독특한 분야다. 현재 우리나라의 모든 대학에서는 문학 관련 학과는 인문대학에 속해 있지만 유럽에서는 예술대학에 속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학이 인문대학에 속해 있는 경우는 19세기 중엽 그 개념이 확립된 ‘문학사학’의 경우이거나 20세기 중엽에 생겨난 ‘문학사회학’의 경우다. 

서구의 교육체계를 단숨에 받아들인 우리나라 대학의 경우 이 문학사학과 문학사회학 중심의 교육이 문학교육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문학사학 전문가와 문학사회학 전문가가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은 매우 좁다. 이는 문학과 졸업생이 전공을 살리려고 할 때 직업적으로 뿐만 아니라 일반적 가치 차원에서 자리를 찾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대학에서의 배움을 ‘써먹을 곳’이 없는 것이다.   

대학에서 ‘써먹을 곳’이 없는 내용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문학 관련 학과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했을 때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 의식을 가르칠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그 답을 그동안 우리는 주로 문학 이외의 다른 곳에서 찾았다. 그러나 그 결과는 부정적이다. 문화니 지역학이니 하는 말을 들먹이며 융합이라는, 이제는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린 이 시대적 유행에 휩쓸려 문학교육은 오히려 본질적 가치마저 상실하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논리적 이성이 인간의 정체성의 핵심을 이루던 르네상스 이후의 모던 사회는 이제 변화하고 있다. 21세기 인공지능의 세계에서 인간의 정체성은 이성보다는 감성에서 찾아질 것이다. 그 감성의 세계에서 문학의 역할은 학문으로서의 모습보다는 예술로서의 효능이 강조된 형태여야 한다. 물론 문학의 미학적 가치만을 강조하자는 말은 아니다. 다가오는 감성의 세계에서 문학이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려면 그 미학적 가치가 실천적 기능에 접목되어야 한다. 그 하나의 예로 들 수 있는 것이 문학의 치유적 활용이다. 이미 국내외 대학의 곳곳에서는 십수 년 전부터 이러한 변화의 구체적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치유적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문학은 수요가 늘게 될 것이다. 문학교육도 사회적 부침에 반응해야 한다. 이제 대학에서의 문학교육은 이러한 변화에 부응하는 교육 내용을 갖출 때가 되었다. 비평을 위해 구성되었던 대학의 문학교육 커리큘럼은 문학의 다양한 활용 가능성을 타진하고 또 개발할 수 있는 방향으로 구성되어야 한다. 지난 70년 동안 현실적 변화를 외면해왔던 문학 관련 학과의 구성원들은 이제 현실 생활과 동떨어진 지적 유희를 고상한 것으로 여기며 안일함을 즐기는 고답적 무책임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차세대 산업혁명이 진행되며 세계의 모든 분야에서 인식론적 차원의 변화가 예견되는 현시점에서 문학교육도 새로운 사회 가치와 시대적 흐름에 부응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김익진 강원대·프랑스문학

강원대학교 인문대학 불어불문학과 교수. 고려대학교 불어불문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10대학에서 몰리에르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융합예술치료교육학회 회장과 문화체육관광부 시행 <길위의 인문학> 기획위원과 <인생나눔교실> 명예멘토로 활동한 바 있다. 저서로는 『몰리에르의 삶과 연극』, 『적정인문학으로서의 인문치료』, 등과 역서로는 『몰리에르 3부작』, 『17세기 프랑스의 비판정신, 아내들의 학교』, 『예술치료의 모든 것』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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