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체지향 존재론에서 인과적 차원은 미적 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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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체지향 존재론에서 인과적 차원은 미적 차원
  • 갈무리
  • 승인 2023.06.04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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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제의 책_ 『실재론적 마술: 객체, 존재론, 인과성』 (티머시 모턴 지음, 안호성 옮김, 갈무리, 464쪽, 2023.04)

 

『실재론적 마술』은 객체지향 존재론의 관점에서 인과성을 탐구한다. 저자 모턴은 인과성이 미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미적 사건은 인간들 사이의 상호작용이나 인간과 화폭 사이의 상호작용, 그리고 인간과 드라마 속 대사들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미적 사건은 톱이 새로운 합판 조각을 베어 물었을 때 일어난다. 미적 사건은 벌레가 축축한 흙에서 배어 나올 때 일어난다. 미적 사건은 거대한 객체가 중력파를 방출할 때 일어난다. 우리가 예술을 만들거나 연구할 때 우리는 인과관계를 만들거나 인과성을 연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모턴은 미적 차원은 인과적 차원이라고 말한다.

출판사의 소개 글을 아래 그대로 옮긴다.


철학자, 영문학자, 생태 이론가 티머시 모턴

                     Timothy Morton

티머시 모턴은 그레이엄 하먼, 이언 보고스트, 레비 브라이언트와 함께 “객체지향 존재론” 경향에 속하는 사상가이다. 객체지향 존재론은 철학에서의 인간중심주의에 도전하는 운동인 사변적 실재론의 한 갈래에 속한다. 그레이엄 하먼과 함께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으로 언급되는 모턴은 아이슬란드의 싱어송라이터 비요크, 미국의 뮤지션 퍼렐 윌리엄스 등과 협업하고 사운드 아트 조직〈소닉 액츠〉와 어두운 생태학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예술 방면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특히 시공간적으로 대량 분산되어 우리가 결코 완전히 포착할 수 없는 객체를 가리키는 모턴의 “초객체”(hyperobject) 개념은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철학자이자 생태 이론가로서 모턴은 객체지향 존재론의 생태학적 함의를 탐구하며 “어두운 생태학”이라는 독자적인 생태 이론을 전개해 왔다. “어두운 생태학”이라는 용어는 모턴의 가장 잘 알려진 저서 『대자연 없는 생태학』(Ecology Without Nature)에서 처음 제출되었다. 모턴이 “자연”(nature)이 아니라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는 “대자연”(Nature)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 개념이 생태학에서 라캉의 대타자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대자연 개념은 자연적인 것과 자연적이지 않은 것 사이의 구별에 의존한다. 모턴은 “대자연”이라는 것은 없다고 주장하면서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진다. “달팽이는 아마도 대자연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조리된 달팽이는 그렇지 않은가? 만화 속 달팽이는 어떤가? 방사능에 노출된 달팽이는 어떤가?”(64쪽) 모턴은 생태학에서 대자연 개념의 사용이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문제를 자초한다고 진단하고 새로운 생태 이론을 전개한다. 


실재론적 마술 Realist Magic

이 책의 제목 『실재론적 마술』은 마술적 리얼리즘(magic realism)이라는 문학 장르에 대한 언어유희다. 『백년의 고독』으로 잘 알려진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같은 작가들은 마술과 역설의 요소들을 연계하는 글쓰기를 했고 그 방법론은 마술적 리얼리즘이라고 불렸다. 모턴에 따르면 마술적 리얼리즘의 서사에서 인과성은 기계적 기능에서 벗어난다. 『실재론적 마술』에 따르면 이는 제국주의적 “실재”의 필연성처럼 보이는 것에 저항하기 위해서,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 혹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서는 말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것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채택된 전략이었다.

이와 유사하게 『실재론적 마술』은 실재 자체가 기계적이거나 선형적인 인과성으로 조직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인과관계가 어떤 자명하고 타당한 사실이라고 여기지만, 모턴에 따르면 “인과성은 하나의 비밀스러운 사태임에도 드러난 것, 공공연한 비밀”이며 “신비로운 것”이다. 인과성이 신비로운 이유는 사물의 실재성이 말할 수 없음, 밀폐됨, 물러남, 비밀스러움 등 다양한 의미에서의 어떤 신비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사물은 암호화되어 있다. 그래서 모턴은 헤라클레이토스의 격언 “자연은 숨기를 좋아한다”를 책에서 자주 인용한다.

 

인과성(causality)과 마술

한국어에서 ‘인과’는 ‘원인’(因)과 ‘결과’(果)를 아우르는 말이다. 보통 마술은 상식적이거나 과학적인 인과관계를 숨겨 신비한 일이 일어났다는 효과를 공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관객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마술의 이면에는 언제나 인과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가정된다. 인과관계 이론이 원인과 결과를 추적하여 마술의 비밀을 풀고, “신비”를 “이해”로 해명해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인과성과 관련된 결정적인 어떤 것이 마술의 속임수 그 자체의 수준에 있다고 말한다. 마술이 실재한다는 것이다.

모턴에 따르면 수 세기 동안 인과성은, 기업 경영진의 사무실에 있을 법한 장식품의 금속 공들이 서로 둔탁하게 부딪치는 방식으로 상상되어 왔다. 물질이 금속 공들처럼 서로 부딪치는 것,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인과적 사건이 그와 같이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턴에 따르면 인과적 사건은 금속 공들의 부딪침으로 환원될 수 없다. 인과관계는 은유적이다. 모턴은 이러한 주장이 “원인들이 중층결정되었다”는 의미라고 설명한다. 예를 들어서 사무실 장난감 속의 금속 공들은 와이어 프레임에 의해 고정되어 있다. 와이어 프레임은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그 책상은 대기업 사무실의 일부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이 모든 존재자는 사무실 장난감의 공이 내는 둔탁한 부딪침 소리의 원인들이다. 즉 금속 공들이 서로 부딪치기 위해서는 사무실 장난감, 책상, 방, 그리고 업무에서 지루함을 느껴 잠시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적어도 한 명의 사무원이 포함된 전체적 설정이 있어야 한다. 둔탁한 부딪침의 인과성은 이 모든 사실을 누락시킨다. 그래서 모턴은 둔탁한 부딪침으로 인과성을 상상하는 것은 미신적 물신화에 불과하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인과성에 관해 지금까지 제기된 여러 이론은 객체들이 가진 신비의 핵심적인 요소를 잘라낸다는 것이다.


인과성은 미적이다

장난감 공들이 둔탁하게 부딪치는 현상이 인과적 사건의 전부가 아니라면, 인과성은 무엇일까? 모턴은 ‘인과성이 미적’이라고 말한다. 그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든다. 회화는 언제나 인간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져 있다. 회화는 물감으로 만들어져 있고, 물감은 다시 계란 흰자위나 기름 같은 어떤 매개체로 형성된 가루 결정이다. 회화작품을 벽에 걸면 그림은 벽과도 관계를 맺게 된다. 파리 한 마리가 그 위에 앉고, 먼지가 그림 위에 쌓인다. 화가가 의도한 것이 무엇이든 색소가 천천히 변해간다. 모턴에 따르면 우리는 이 모든 비인간의 개입을 그 자체로 일종의 예술이나 설계로 생각할 수 있다. 비인간도 항상 예술을 하고 있고, 우리는 그것을 예술이 아닌 인과성이라고 부를 따름이라는 것이다. 칼슘 결정들이 구석기 동굴 벽화를 덮을 때 그 결정들도 설계하고 있으며,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모턴은 “아주 간단히 말해 미적 차원은 인과적 차원”이라고 정리한다.(29쪽)

객체지향 존재론의 창시자 그레이엄 하먼은 그의 유명한 사중체 모델에서, 실재 객체들은 물러나 있다고 말했다. 실재 객체들이 물러나 있기에 그들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매혹이라는 일종의 미적 과정을 통해서라고 하먼은 말한다. 모턴은 하먼의 이러한 통찰을 수용하면서 한 객체가 다른 객체에 영향을 미칠 때, 그것은 어떤 미적 차원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공룡은 진흙 속으로 들어가 발자국을 남긴다. 공룡은 진흙을 공룡어로 번역한다. 공룡은 적확히 나, 한 명의 인간이 진흙을 만지고 진흙에 관해 말할 때 불가피하게 진흙을 의인화하는 것처럼 그것을 공룡화한다. 6천 5백만 년 후, 한 고생물학자가 화석화된 공룡 발자국을 조사한다. 고생물학자는 비시간적인 구성 공간, 내가 상호사물성이라 부르는 곳 속에서 공룡 및 고대 진흙과 함께 공존한다. 이 공유된 감각적 공간 속에서, 고생물학자는 발자국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발자국은 고생물학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실재의 이러한 수준은 마치 교차하는 선들, 표시들, 상징들, 상형문자들, 수수께끼들, 노래들, 시들, 그리고 이야기들로 구성된 거대한 그물망인 것만 같다.”(144쪽) 모턴에게 미학, 지각, 인과성은 모두 사실상 동의어이다.


객체는 위선자이다

모턴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사물이나 객체에 대해서 ‘그것은 어떠어떠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물 또는 객체와 같지 않다. 모턴은 콘크리트 블록을 예로 든다. 콘크리트 블록은 파리에게는 딱딱하고 차가운 것이고, 인간의 손가락에는 까칠한 것이고, 숙련된 무술 유단자의 내려치는 손에는 잘 부서지는 약한 것이다. 또 중성미자에게는 비가시적인 것이다. 이처럼 객체의 성질은 그 객체가 아니다. 이로부터 모턴은 객체는 객체 자신인 동시에 객체 자신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데카르트를 비롯한 많은 전통 철학자들이 집착해온 ‘비모순율’(어느 사물에 대하여 같은 관점에서 동시에, 그것을 긍정하면서 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은 실재 세계에서 설명력을 잃는다고 본다. 모턴에 따르면 양자역학 같은 최신의 현대 과학 또한 이 점을 뒷받침한다. 객체는 객체인 동시에 비-객체라는 기묘한 사실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모턴은 전통 철학이 비모순율이라는 이 한 번도 검증되지 않은 원리를 고수하며 곤경에 빠졌다고 말한다. 문지방에 서 있는 사람은 방 안에 있는 것인가 방 밖에 있는 것인가? 어떤 시의 제목은 시의 시작인가 시의 외부인가? 벽에 걸린 그림의 액자는 그림의 끝인가, 그림의 일부인가? 어떤 사물이 죽어갈 때, 그 사물은 현존해 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현존하기를 멈추어 가고 있는 것인가? 그 사물이 죽어갈 때, 그 사물은 자기 자신과 얼마나 동일한 것인가? 모턴은 우리가 비모순율을 고수할 때 이러한 물음에 답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한다.

모턴에 따르면 우리는 객체의 본질과 나타남 사이에 균열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일 때만 이러한 의문에 답할 수 있다. 객체는 물러나면서 나타난다. 사물은 항상적 모순의 상태에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현존하기를 계속한다. 또는 어떠한 사물이 된다는 것은 모순으로 가득 차는 것이다. 그래서 모턴은 객체가 위선자, 객체 내부에 영구적인 갈라짐을 품고 사는 위선자라고 말한다. 모턴은 “냉소적인 우주에서 사느니 위선적인 우주에서 살겠다”(154쪽)고 말한다.


마술의 생애 주기

이 책은 서론과 네 개의 장, 결론,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에서 모턴은 P. M. 던의 노래〈기억의 축복 속에 표류하다〉와 유쿨찌 나팡가티의 〈무제〉 등 여러 예술 작품을 고려하며 객체지향 존재론에서 인과적 차원이 미적 차원인 이유를 보여준다. 1장 「환상과 같이」에서는 책 전체의 범위를 설명한다. 모턴은 콘크리트 블록이 블록을 구성하는 입자로 환원되지 않고 블록에 대한 지각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방식을 보여주며 콘크리트 블록의 신비를 고찰하고, 이를 통해 각각의 객체가 고유한 것임을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또한, 모턴은 실체의 역사를 논하며 논리학과 수사학이 분리된 이유를 보여주고, 수사학과 논리학을 같이 생각할 수 있었던 시간으로의 회귀를 제안한다. 2장 「마술의 탄생」은 객체가 시작되는 방식을 다룬다. 논의가 진행되며 객체의 시작은 숭고임이 밝혀진다.

새로운 객체는 객체들의 총회를 왜곡함으로써 탄생한다. 3장 「마술의 삶」에서는 객체가 존속하는 방식을 다룬다. 객체는 본질과 나타남 사이의 균열을 유보함으로써 존속한다는 것이 밝혀진다. 객체는 객체 자신과 모순될 때 살아간다. 4장 「마술의 죽음」에서는 객체가 끝나는 방식을 다룬다. 객체의 죽음은 객체가 자신의 나타남으로 환원될 때 일어난다는 것이 밝혀진다. 객체는 현존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죽음의 문턱에 있다. 객체의 시작이 숭고라면, 객체의 끝은 아름다움과 관련이 있다. 「결론」에서 모턴은 마술의 생애 주기를 되돌아보며 목적인과 비모순율에 집착하지 않는 기묘한 아리스토텔레스로의 회귀를 제안한다. 부록에는 객체지향 존재론에 관한 티머시 모턴의 논문 「모든 것이 온다」가 추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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