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질서 전환기에 필요한 리더의 자질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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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질서 전환기에 필요한 리더의 자질은 무엇인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6.03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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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키신저 리더십: 현대사를 만든 6인의 세계 전략 연구 | 헨리 키신저 지음 | 서종민 옮김 | 민음사 | 604쪽

 

현존하는 외교의 전설 헨리 키신저가 미 대통령 안보보좌관 겸 국무 장관을 지내며 얻은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역사에 비추어 전후 격동의 시기에 각 사회와 국제 질서를 건설한 세기의 리더 6인 - 아데나워, 드골, 닉슨, 사다트, 리콴유, 대처 - 의 리더십을 살핀 책이다.

키신저는 책에 등장하는 이 6인이 각국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시기에 그들과 교류하였고, 이들의 리더십 속에서 공통적인 자질을 보았다. 자기 사회를 둘러싼 상황을 이해하는 능력, 현재를 관리하고 미래를 만들 전략을 고완하는 수완, 숭고한 목표를 두고 사회를 움직이는 솜씨, 결점을 신속히 보완하는 태도 등이다.

저자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축 그리고 불변의 가치와 리더를 따르는 사람들의 열망을 잇는 축이 만나는 지점에 리더가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 만나는 여섯 리더는 모두 역사적 격동의 시기에 건설자가 되어 전후 각 사회와 국제 질서를 발전시켰다. 여섯 리더가 성장한 시기는 문화적 격변기였다. 서방의 정치적, 사회적 구조 면에서 리더십 모델의 바탕이 세습과 귀족주의에서 중산층과 능력주의로 돌이킬 수 없게 바뀌고 있었다. 이들 중 누구도 상류층 출신이 아니었다. 아데나워의 아버지는 프로이센군의 비임관 부사관이었다가 나중에 사무원으로 일했고, 그의 아들은 독일제국의 표준 교육과정을 따랐다. 드골의 조부모는 모두 학식과 재산이 있었으나 그의 아버지는 교사였고 가족 중 정부 고위직에 오른 사람은 아들인 그가 처음이었다.

닉슨은 서던 캘리포니아 중하층 가정에서 자랐다. 사다트는 사무원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이집트 사관학교에 입학 신청서를 낼 때 신원보증인을 찾느라 고생했다. 가세가 기울어 가는 중국계 싱가포르인 부모를 둔 리콴유는 싱가포르와 영국에서 장학금에 의존해 학업을 이어 나갔다. 대처는 식료품상의 딸이었고 영국 보수당 당수로서는 두 번째로 중산층 출신이고 최초의 여성이었다. 출발선에서부터 훗날 걸출한 인물이 되리라는 걸 예견할 수 있었던 사람은 없다. 이들은 권력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출신 배경과 경험 덕분에 무엇이 국가의 이익인지 뚜렷하게 알아보고 당대의 통념을 초월하는 관점을 가질 수 있었다.

19세기 귀족들이 자신에게 많은 기대가 걸린 것을 잘 알았고 20세기 능력자들이 봉사의 가치를 추구한 반면, 오늘날의 엘리트들은 의무를 논하기보다는 자기표현이나 자신의 발전을 이야기하느라 바쁘다. 현대 세계는 알아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조용히 인간의 의식을 바꾸고 있다. 세계에 관한 우리의 경험과 정보 습득을 매개하는 신기술의 주도로 이런 변화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그 변화가 리더십에 미치는 영향을 비롯해 장기적으로 어떤 효과를 내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지가 지배하는 시대에는 무엇을 잃을 위험이 있는가? 학식, 조예, 진지하고 독립적인 사고 등 여러 이름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가장 알맞은 단어는 ‘심층 문해력’이다. 

이 책에서 다룬 여섯 리더가 살던 시대에는 심층 문해력이 ‘배경복사’처럼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든 꿰뚫었다. 정치와 관련된 이들에게 심층 문해력은 막스 베버가 말한 “목측능력”, 즉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내면의 침착함과 평정을 유지하는 능력”을 주었다. 그러나 인쇄물은 20세기가 끝나기 전부터 예전의 권위를 상실했다.

세계와 역사에 영향을 미치는 리더들은 엄격한 인본주의 교육의 덕을 보았다. 이런 교육은 정식 환경에서 시작된 뒤 독서와 토론을 통해 평생 이어진다. 오늘날에는 이 첫 단계를 밟는 이들이 드물고, 명시적으로든 암묵적으로든 국정을 가르치는 대학이 거의 없다. 게다가 기술 변화가 심층 문해력을 떨어뜨리면서 평생에 걸쳐 노력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그러므로 능력주의를 되살리려면 인본주의 교육을 다시 중시하고 철학, 정치학, 인문지리학, 현대 언어, 역사, 경제사상, 문학, 그리고 어쩌면 오랫동안 정치인을 길러 낸 고전 문화까지 여러 과목을 아우를 필요가 있다.

현재 인류가 처한 상황에 대해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2차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위기라고 평가하는 데 동의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인류 문명을 드높이거나 해체할 수 있는 기술이 점차 가공할 정도로 발달하는 이 세계에서 완전한 해결책은 군사적 차원은 물론이고 강대국 간 경쟁에서도 없다. 모두가 상대방이 악의를 품고 있다고 확신하고 대외 정책을 이념화하며 이를 근거로 제약 없는 기술 경쟁을 펼친다면 1차세계대전을 촉발한 상호 의심의 비극적인 악순환이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거대한 결과와 함께 일어날 위험이 있다.

그러므로 모든 당사자가 이제는 국제 행동에 관한 자국의 제1원칙을 재검토하고 이를 공존 가능성과 연계해야만 한다. 특히 첨단 기술 사회를 이끄는 리더들은 기술의 영향력과 군사적 응용을 제한할 방법에 관해 자국 내에서는 물론이고 잠재적 적국과도 영원히 토의를 이어 나가야 할 도덕적, 전략적 책무가 있다. 위기가 닥칠 때까지 모르는 척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주제들이다. 군사력 통제 담화가 핵 시대를 억제하는 데 공헌했듯, 신흥 기술의 영향력을 고위층에서 탐구한다면 반성과 상호적, 전략적 자기통제의 습관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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