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의 영향은 나의 전 생애에 내린 축복이었다
상태바
말러의 영향은 나의 전 생애에 내린 축복이었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6.03 22: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구스타프 말러: 온 세상을 담은 음악 | Bruno Walter 지음 | 김병화 옮김 | 포노PHONO | 216쪽

 

지금으로부터 134년 전인 1889년 11월, 말러의 교향곡 1번 ‘거인’이 부다페스트에서 초연되었을 때 공연장은 경멸과 분노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혁신적이지만 낯선 그의 음악어법은 비평가들에게 “교향곡의 규칙과 질서를 파괴한, 통속적이고 끔찍하게 과장이 심한 작품”이라는 혹독한 비난을 받았다. 

말러를 지지하던 빌럼 멩엘베르흐, 브루노 발터, 오토 클렘퍼러,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존 바비롤리 등 선구자들이 그의 작품을 알리려 애썼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말러의 곡들은 연주회 레퍼토리에 포함되는 경우가 드물었다. 하지만 오늘날 말러는 서양 고전음악의 전당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다. 이름난 지휘자 가운데 말러의 작품을 녹음하지 않은 이가 드물고, 말러 교향곡의 영향력과 대중의 사랑은 커졌다. 말러가 “앞으로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말했듯, 그의 시대가 왔다.

1894년 바이마르에서 1번 교향곡을 처음 들은 열여덟 살의 브루노 발터는 말러에 대해 알고 싶어서 “애가 달았다.” 같은 해 함부르크에서 말러를 첫 대면한 발터는 말러에게 발탁되어 함부르크 시립가극장에 채용되었고, 빈 궁정 오페라에서도 6년간 함께 일하며 평생 제자이자 친구이자 동지로 우정을 쌓았다. 발터는 말러의 수많은 작품을 초연 및 지휘했으며, 말러 서거 후 〈대지의 노래〉와 9번 교향곡도 초연했다.

말러의 부지휘자로 함께 일했고 그의 전성기 때 6년을 거의 매일같이 만났던 동료, 브루노 발터가 전하는 말러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은 발터가 말러 서거 25주기(1936년)를 기념하여 그의 음악과 삶을 기록한 책으로 두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1부 ‘회상’에서 발터는 말러와의 첫 만남부터 함부르크, 슈타인바흐, 빈 궁정 오페라를 거쳐 뉴욕 그리고 다시 빈으로 돌아와 숨을 거둘 때까지 음악 여정을 따라간다. 발터가 말러와 가장 오래 함께 일한 도시는 빈이었다. 발터는 말러의 빈 시절은 “한 위대한 음악가가 동료 예술가와 청중들을 위해 펼친 10년간의 축제였다”라고 말한다. 이후 말러는 미국으로 떠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와 뉴욕 필에서 일한 3년여간 8, 9번 교향곡과 〈대지의 노래〉를 완성했다.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에는 교향곡 8번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부인 알마와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의의 불륜으로 고통스러워했다. 심장병이 악화되어 다시 유럽으로 돌아온 말러는 빈에서 수많은 군중의 애도 속에 1911년 5월 18일 눈을 감았다.

2부 ‘성찰’에서는 오페라 감독, 지휘자, 작곡가로서 말러의 음악적 성취와 인품에 대해 이야기한다. 말러는 연극을 깊이 이해하고 정통했다. 오페라와 연극에서 음악 정신을 불러일으키려 했다. 오케스트라 지휘자로서 그의 위대함은 연주의 엄밀성과 명료함, 존재의 의미를 찾기 위한 고통스러운 노력, 인간과 세계에 대한 따뜻하면서도 격정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온다고 발터는 말한다.

체코 칼리슈테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말러는 스스로 평생 경계인으로 살았다고 말했다. “나는 3중의 이방인이다. 오스트리아 사람 가운데서는 보헤미아 사람이요, 독일인 가운데에서는 오스트리아 사람이요, 세계인 사이에서는 유대인이다.” 말러만큼 음악과 삶이 밀접하게 연관된 작곡가가 있었을까? 말러의 교향곡은 자신의 인생이자 거대한 이 세계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교향곡은 세계와 같아야 한다. 모든 것을 포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불우한 성장기, 버거운 가장의 무게, 두 동생과 어린 딸의 죽음 그리고 불안과 혼돈의 세계 속에서 말러는 평생 죽음, 고통, 선과 악, 고귀함과 비천함, 고상하고 시시한 것 등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음악에 담고자 했다.

함부르크 시립 가극장 수석지휘자 시절의 말러_ 함부르크 1892년

작곡가이자 지휘자 말러는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열렬한 숭배의 대상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시끄럽고 지루한 음악을 만든 괴팍한 사람이다. 그의 강렬한 개성과 재능, 음악에 대한 절대적 헌신은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한편 많은 사람을 적으로 만들기도 했다. 가수와 오케스트라를 너무 가혹하게 몰아붙여 원성을 사기도 했지만, 음악적 완성도와 무관한 일상에서 말러는 매우 친절했다.

발터는 말러가 어린아이처럼 맛있는 음식을 좋아했으며, 숲속의 모든 생명체에 따뜻한 감정을 품었다고 전한다. 생활고로 허덕이는 발터에게 1년 치 생활비를 대주겠다고 제안할 정도로 따뜻한 품성을 지녔다. 열정과 재능, 진실함에 귀 기울였고, 타인에게 관대하고 동정적인가 하면, 경악스러울 만큼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것은 그가 예술에 온통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러는 충동적이고, 우울하며, 죽음에 대한 생각을 평생 안고 살았지만, 사실은 천성적인 낙관주의자였고 엉뚱하고 유머 감각이 뛰어났다고 한다. 단원들과 연습하던 중 혼자 생각에 몰두하다 느닷없이 “웨이터, 계산서”라고 외치는가 하면, 늘 실수하던 성악가가 극장에 화재가 나자 완벽하게 노래하는 것을 보고 “그 구절을 제대로 부르려면 불이 나야겠군”이라며 웃으며 말했다. 심각한 병에 걸린 단원을 위해 최선을 다해 도우려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