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라는 시야에서 철학을 묻고, 철학으로 다시 세계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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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라는 시야에서 철학을 묻고, 철학으로 다시 세계를 묻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6.03 22: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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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철학사 세트 [전9권] | 이토 구니타케·야마우치 시로·나카지마 다카히로·노토미 노부루 엮음 | 이신철 옮김 | b(도서출판비) | 2,953쪽

 

이 『세계철학사』는 일본의 치쿠마쇼보(筑摩書房)에서 2020년에 출간한 창사 80주년 기념작으로 이토 구니타케·야마우치 시로·나카지마 다카히로·노토미 노부루가 책임 편집을 맡고, 일본의 철학자 115명이 참여했다. 

고대에서 현대까지의 ‘세계철학’을 각각의 시대를 특징짓는 주제로부터 서로 다른 전통을 각각의 시대마다 살펴나간다. 각각의 전통들 사이에는 중간지대와 상호 영향, 수용과 새로운 전통의 형성이 존재하며, 거기서 철학은 경제, 과학, 종교와 제휴한다. 기획·편집자들에 따르면 ‘세계철학’이란 서양 중심으로 전개되어온 철학을 넘어 보편적이고 다원적인 철학, 인류의 생활 세계를 아우르는 철학, 다양한 문화와 전통과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철학, 자연환경과 생명과 우주로부터 인류의 존재 방식을 반성하는 철학을 창출하고자 하는 운동으로서의 ‘세계철학’을 가리킨다. 이러한 ‘세계철학’의 관점에서 철학사를 바라봄으로써 철학적 앎의 역동적 움직임을 재현하고, 현재 철학이 서 있는 자리와 과제를 확인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왜 ‘세계철학’이고 ‘세계철학사’인가? 지금까지 ‘철학(필로소피아)’이란 기본적으로 서양철학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왔다. 하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의 세계는 서양 문명의 틀을 넘어서서 다양한 가치관과 전통이 교차하는 가운데 서로 다른 것들이 하나를 이루며 복잡한 양상을 드러내는 새로운 시대이다. 나아가 오늘날 기후 위기와 팬데믹, AI를 비롯하여 인간이 부딪친 많은 문제는 지구마저 넘어서고 이전에 알지 못했던 차원의 발상을 요구하고 있으며, 따라서 철학은 새로운 시야에서 새롭게 인류의 역사를 바라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 『세계철학사』는 유럽과 북아메리카만이 아니라 종래에는 고려되지 않았던 중근동, 러시아,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나아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와 오세아니아와 라틴아메리카와 원주민 아메리카 등까지 두루 눈을 돌리고 있다. 이렇게 인류학적으로 파악되는 다양한 지역과 같은 이른바 주변 문화까지 다루게 되는 까닭은, 그것들이 우리에게 지금까지 우리를 일방적으로 규정해온 서양철학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다른 관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미 역사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다른 사유를 형성해 온 세계철학의 중요한 기축을 이루어왔다고 파악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는 지구화 시대이다. 이와 같은 시대가 도래한 것은 기본적으로는 교통수단과 유통 기구, 통신 기술의 고도한 발전과 그것들의 세계적 규모에서의 전파, 침투에 따라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자유로운 행동이나 교류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라 이러한 과학 기술들의 확산을 솔선하여 촉진한다든지 그 침투를 강력하게 유도한다든지 하는 고도로 금융화한 현대 자본주의의 전개라는,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 경제적인 요인도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오늘날 하루하루 생활은 지구화 시대의 이러한 구조에 어쩔 수 없이 휘말려 든 형태로 영위되고 있으며, 그 점은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문화적, 예술적 활동이나 학술적 교류에서도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구화가 초래하는 영향이 언제나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좀 더 심각하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측면으로서 재해나 역병의 지구적 규모에서의 대유행 등, 인간의 생명 유지 가능성과도 직결된 중대한 위험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지금 대단히 엄혹한 형태로 통감하고 있는 대로이다. 우리는 확실히 지구화 시대를 살아가고 있고 그 은혜도 입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이 세계적 규모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오늘날의 삶의 방식의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양 측면의 의미를 우리는 점점 더 진지하게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지구화 시대 현대에 학술의 한 부문임과 동시에 모든 학술 문화 활동의 근원적인 정신적 원천이기도 한 철학은 그 자체로서 전 지구적인 것일 수 있을까? 그리고 만약 현대의 철학적 사유가 참다운 의미에서 전 지구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그 ‘세계철학’이란 어떠한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것일까?

이신철 교수는 ‘옮긴이 후기’에서 이 『세계철학사』의 ‘세계철학’, ‘세계철학사’가 그저 상투적인 의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철학’ 그리고 ‘역사’의 복합적인 얽힘 속에서 철학사를 전개하고자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서 이 『세계철학사』를 우리말로 옮기고자 구상하기 시작했다고 밝히고 있다. 옮긴이로서는 어쩌면 이 새로운 『세계철학사』가 코로나 팬데믹, 기후 위기, 인류세 등과 같은 바로 이 시대에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현대의 다양한 문제들과 그에 대응한 사변적 실재론, 신유물론 등과 같은 새로운 철학 사조를 사유하고자 하는 우리에게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신철 교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해온 경직되고 천편일률적인 철학자와 학설들로 채워진 기존의 ‘서양 철학사’가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과 사유의 현실성을 옥죄고 있다는 느낌을 저버릴 수 없는 상황에서 다차원적이고 다측면적인 ‘세계’의 관점에서 다양한 가치관과 서로 다른 전통을 돌아보고 이 ‘세계’ 속 인간의 삶을 다시 새롭게 사유하고자 하는 이 새로운 『세계철학사』의 시도야말로 서로 연관된 철학과 철학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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