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명례성지…‘세상의 소금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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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명례성지…‘세상의 소금이 되게 하소서'
  •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 승인 2023.06.0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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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혜숙의 '여행이야기'_ 경남 밀양 명례성지

 

           명례성당. 1938년 성모승천성당으로 봉헌되었고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526호로 지정되어 있다. 

들이 넓다. 동쪽으로는 밀양강이 남류하고 남쪽에는 낙동강이 흘러 둘이 만들어 놓은 삼각주는 하남(下南)평야로 펼쳐져 있다. 평야를 시원하게 가로지르다 쑥 솟은 낙동강 둑에 폭 안긴다. 둑 아래 새집처럼 자리한 마을은 명례(明禮)다. 옛 이름은 멱례(覓禮), 미례(彌禮)인데 일명 뇌진(磊津)이라고도 했다. 뇌진은 돌무더기 나루터다. 옛날 이곳에는 강 건너 김해를 오가는 나루가 있었다고 한다. 밀주지(密州誌)에는 용진(龍津)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고대부터 낙동강 수운의 요충지였다고 전한다. 나루가 사라진 강변에 돌무더기 언덕이 있다. 옛날 이 언덕에 소금장수가 살았다.  

 

                            명례성지 앞에 강변들이 펼쳐져 있다. 자전거길이 있는 명례강변공원이다. 

언덕마루에 명례성당이 올라 있다. 그는 오래된 팽나무의 그늘 너머 환하게 빛나는 강물을 내다본다. 아래에는 파란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눈처럼 하얀 성모상이 땅과 하늘을 품고 온유하게 자리한다. 이곳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순교한 신석복(申錫福) 마르코가 태어난 곳이다. 그는 소금장수였다고 한다. 진해 웅천 장에서 돌아오다 체포되었고 대구 감영에서 처형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후인 1896년경 명례성당이 설립되었다. 경남지역 최초의 천주교회 본당이다. 초대 주임은 강성삼 라우렌시오 신부다. 그는 김대건, 최양업 신부에 이어 우리나라의 세 번째 사제였고 국내에서 서품을 받은 최초의 신부였다. 

 

                                       명례성지 성모당. 최초의 명례성당이 이 자리에 있었다. 

성당 건물은 이듬해인 1897년에 신석복 마르코의 생가 인근, 현재의 성모동산 부지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1926년에 명례에 부임한 권영조 마르코 신부는 1928년 지금의 자리로 성전을 옮기고 기와지붕을 올렸다. 건물은 1936년 태풍에 무너졌고 1938년 파괴된 성당의 잔해를 모아 다시 작은 성당을 짓고 성모승천성당으로 봉헌했다. 현재의 명례성당이다. 성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에 홑처마 우진각지붕의 목조건물이다. 정면 중앙에는 박공지붕을 올린 현관이 돌출되어 있다. 내부 바닥에는 마루가 깔려 있고 나무기둥과 인방으로 남녀 공간을 구분해 놓았다. 동쪽을 향해 있는 제대의 가장 높은 곳에는 장미의 성모상이 있다. 명례성당은 초기 한국 천주교회의 건축 양식을 엿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중요한 건축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5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신석복 마르코의 생가 터. 야외제단이 설치되어 있다.  

2008년 신석복 마르코의 생가 터가 발견되었다. 명례리 1209번지, 성당의 바로 옆이었다. 당시 생가 터에는 소와 돼지를 키우는 축사가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2011년 천주교 마산교구청에서 일대를 매입하고 이제민 신부를 담당신부로 임명해 성역화 사업을 시작했다. 성지 조성을 위해 소금 장수 신석복의 영성을 따라 ‘녹는 소금 운동’을 펼쳤고 그 일환으로 소금 판매를 시작했다. 수익은 성지 조성에 쓰이지 않았다. 그것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들과 성폭력 피해 외국인 여성들의 자녀들을 위해 사용되었다. 그러한 사이 2014년 8월 순교자 신석복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복자(福者)로 시복되었다. 공식적으로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공경의 대상이 된 것이다.   

 

언덕의 서쪽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신석복 마르코 성당은 성채 같다. 중첩된 면들이 언덕을 감싸 보호하는 듯하다.

성지는 2018년에 완성되었다. 성모당, 순교자 탑, 소금의 언덕, 예수님 무덤, 신석복 마르코 성당과 부속건물 등이 돌 언덕 위에 보일 듯 보이지 않게 들어서 있다. 순교자의 생가 터는 야외 제단이 되었다. 설계는 건축가 승효상이 했다. 테마는 ‘녹는 소금’이다. 이제민 신부는 설계 당시 건축가에게 몇 가지 부탁을 했다고 한다. 이 언덕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 사람들과 신앙선조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언덕과 능선을 살리고, 강이 내려다보이며, 기존 성당인 성모승천성당이 위축되지 않도록 아담하고 절제된 규모로, 녹아 사라지는 소금처럼  순례자들의 마음에 스며드는, 그런 성지.  

 

  언덕위에 순교자 탑과 신석복 마르코 성당 지붕이 드러나 있다. 지붕의 사각 조형물들은 소금을 형상화 했다. 
                 신석복 마르코 성당 입구 벽에 순교자의 두상이 걸려 있다. 조각가 임옥상의 작품이다. 

언덕 위에 순교자탑의 상부와 신석복 마르코 성당의 지붕이 간결한 매스로 드러나 있다. 탑의 하부 공간과 성당의 내부 공간은 언덕의 서쪽 가파른 지형에 깊게 내려서 절반은 땅에 묻혔다. 탑에는 신석복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성당 지붕은 야외제단과 마주보고 있으며 무질서하게 놓인 사각의 조형물은 소금을 형상화한 것으로 내부에서는 천창이 된다. 성당의 입구는 북쪽 아래에 있고 입구 벽면에 신석복의 두상이 걸려 있다. 조각가 임옥상의 작품이다. 아래에 ‘나를 위해 한 푼도 포졸들에게 주지마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말은 그가 체포되었을 때 형에게 한 말이다. 
   

                                            신석복 마르코 성당 내부. 빛과 소금의 공간이다. 

육중한 문을 온몸으로 열고 성당 안으로 들어선다. 직선으로 선 서쪽 벽이 날카롭게 천장과 만나 동쪽으로 기울어지다가 두꺼운 곡선을 그리며 내려선다. 직벽과 천정이 만나는 접선은 가늘고 긴 창으로 떨어져 있어 빛에 떠받쳐진 천장이 더욱 높은 곳에서 가볍게 미끄러진다. 곡선의 천장에서는 외부에서 보았던 소금의 결정체로부터 동쪽의 빛이 천천히 녹아내린다. 직벽의 아래쪽에는 납작한 기둥이 서있어 주 공간의 회중석과 측랑을 분리한다. 측랑의 외측 벽에는 가늘고 세로로 긴 창이 늘어서 있고 그로부터 들어온 빛은 아무도 모르게 실내로 번진다. 정오가 훨씬 지난 시간, 태양은 3시 방향에서 빛나고 긴 천창으로부터 강하게 쏟아지는 하얀 빛으로 인해 공간은 더욱 높게 느껴진다. 눈이 아리다.    

 

        성지 대문 앞에서 둑길이 동쪽으로 뻗어간다. 길 왼쪽은 명례마을, 오른쪽은 명례강변공원이다.

성지 대문 앞에서 둑길이 동쪽으로 뻗어간다. 길은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고 자전거 길과 보행자 길로 나눠져 있다. 둑길의 왼쪽 아래에는 마을의 집들이 제각각인 모습으로 좁고 굴곡이 자유로운 골목길과 연결되어 있다. 마당과 테라스에는 어지러운 세간살이들이 저들만의 법칙을 가지고 널려 있다. 오른쪽은 너른 강변들로 명례강변공원이다. 얼마 전까지 짙은 노랑의 금계국으로 가득했던 들은 완연한 초록이다. 왕성하게 자란 수풀 속에서 성근 단풍나무가 쑥 솟아 띄엄띄엄 늘어선 곳은 자전거길이다. 길은 갯버들 군락지와 왕벚나무길로 이어진다. 성지의 서쪽 언덕아래 들에는 꽃들이 눈부시다. 강 건너 김해 땅이 아른아른하고 언뜻 언뜻 드러나는 길은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다. 서쪽들에서 올려다보면 신석복 마르코 성당은 성채의 형상을 하고 있다. 중첩된 면들이 언덕을 감싸 보호하는 듯하다. 아리도록 하얗게 빛나던 천장 모서리의 긴 창은 너무 많은 빛으로 인해 까맣다. 조용하고 조용하다. 작은 딱새가 연한 오렌지 빛 배를 드러내며 꽃밭 위를 난다. 관을 쓴 후투티가 뽐내듯 느리게 걷는다. 천국 같다.  


류혜숙 여행칼럼니스트

대학에서 불문학을,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무가지 음악잡지 ‘Hole’을 만들었고 이후 무가지 잡지 ‘문화신문 안’ 편집장을 잠시 지냈다. 한겨레신문, 주간동아, 평화뉴스, 대한주택공사 사보, 대구은행 사보, 현대건설매거진 등에 건축, 여행, 문화를 주제로 글을 썼으며 현재 영남일보 여행칼럼니스트 겸 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내 마음의 쉼표 경주 힐링여행』, 『청송의 혼 누정』, 『물의 도시 대구』(공저)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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