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삶과 민주주의에 관한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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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삶과 민주주의에 관한 성찰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3.05.27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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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사태의 정치: 역설, 법, 민주주의 | 보니 호닉 지음 | 홍원표 옮김 | 신서원 | 362쪽

 

칼 슈미트는 예외상태 또는 비상사태의 권력을 연구한 이론가이다. 그에게 주권은 예외상태를 선언할 수 있는 권리로, 그 순간 주권은 일원화된 권력으로 드러나거나 탄생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민주주의 이론과 실천을 위해 더 필요할 만한, 비상사태와 주권에 대한 대안적 개념화를 탐구한다. 조르조 아감벤은 비상사태가 값진 민주 정치의 가능성을 차단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비상사태의 특성을 중단으로 규정함으로써 그 핵심을 드러내고 있지 못하다. 그와 반대로, 이 책은 비상사태 상황에서조차 민주적 정향을 갖고 행위에 참여하며 혁신을 꾀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와 권유방안을 명료하게 밝히고자 한다.

이 책의 목표는 우리가 예외를 예외로부터 벗어나게 할 때 기회가 열린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듯이, 비상사태 정치가 법치 아래 이루어지는 일상의 삶을 중단시키는 “결정”과 동일하다면, 법치 아래 이루어지는 민주적 실천과 제도화 또한 “결정”이라고 말하는 게 유용할 수 있다. 이때의 결정은 법치의 전제로서 인간의 재량권 형태이지만, 법치 또한 재량권과 긴장상태에 있다. 또한, 우리가 주권을 비상사태로 뚜렷하게 드러나는 단일화된 권력이라고 생각한다면, 통합적이고 하향적이며 비상사태로 형성된 신홉스주의적 주권 개념도 민주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주권에 대한 대중적 동의를 요구한다.

첫째 저자는 합법적으로 법을 정지시키는 예외적 결정(예외상태)에 관한 문제에 머무르지 않고, 초점을 일상적인 민주 정치에서 예외상태를 만드는 여러 요소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맞추고자 한다. 둘째, 비상 정치의 예외상태에서도 민주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칼 슈미트의 ‘결단주의decisionism’조차 대중적 감수성과 정향에 의존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정치의 역설’이란, 권력은 국민에게 있지만, 그러한 권력을 민주적으로 행사할 만큼 (통합되고 민주적인) 국민이 충분하지 않다는, 민주주의의 근본 문제를 이르는 말이다. 심의민주주의자들은 이것을 민주적 정당성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1장에서는 그것을 정치의 역설로 평가하는 것이 좋다고 주장한다. 민주주의 국가는 루소가 이론화한 문제, 즉 ‘인민/다중(多衆; multitude)’의 ‘공존’과 이들의 결정불가능성이 민주정치에 미치는 효과 때문에 생기는 문제에 매일 직면한다. 정치의 역설과 그 함의(인민은 항상 결정불가능한 다중이다)는 이 책의 모든 장에서 다른 얼굴을 하고 다시 나타난다.

2장에서는 비트겐슈타인, 코널리, 아렌트 그리고 아감벤의 저서를 독해하면서, ‘새로운 권리의 역설’ 덕택에 잠재적으로 나타나는 비상사태와 출현 사이의 연계성을 탐구한다. 이 장에서는 자살할 권리, 동물의 권리, 그리고 식량정치 단체가 주도하는 소비 인프라의 정치화 등의 사례를 살펴본다.

3장은 비상사태 정치에 관한 색다른 사례로, 미국의 ‘제1차 적색공포’ 시기에 노동부 차관보였던 루이스 포스트가 벌인 여러 활동상을 집중해서 살펴본다. 이 장에서는 민주적 행위와 ‘거버넌스(협치)’에서 ‘결정’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4장에서는 법의 합법적 중단이라는 예외상태의 역설에 대해 직접 고찰한다. 여기서 저자는 다시 프란츠 로젠츠바이크에게 주목하여, 슈미트의 예외상태가 낳은 주권에 대한 결정주의적 시각을 바꿀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한다. 이 장에서 저자는 슈미트의 예외상태를 지지하는 이론가들 때문에 강압적이고 냉정하고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보이는 예외 정치에 대해서도 우리가 준비하고 수용하며 지향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5장에서는 비상사태 발동이 어떻게 ‘법의 정지’ 뿐만 아니라 ‘법의 팽창’을 용인하는지에 대해 살펴본다. 세일라 벤하비브는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을 범세계주의의 실례로 집중했다. 벤하비브는 아이히만 재판을 통해 나치의 집단학살과 같은 비상사태의 문제를 환기시킴으로써 새로운 국제형사재판소에 동의하고 믿음을 보여주었다. 벤하비브의 이러한 노력은 특히 중요하다.

이 책은 서론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생존’은 비상사태로 인해 기껏해야 유지하는 단순한 삶(mere life)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이 상태의 극복으로 누리는 장수(여분의 삶; sur-vivre)를 의미하기도 한다. 생존(단순한 삶과 더 많은 삶)의 이러한 두 가지 측면은 상호간 분투적 제휴에서 민주적 삶과 비상사태 정치의 척도를 설정하며 그들에 대한 전망을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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