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외적인 시대가 만들어낸 예외적인 지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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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적인 시대가 만들어낸 예외적인 지도자들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5.27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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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를 바꾼 권력자들: 인물로 읽는 20세기 유럽정치사 | 이언 커쇼 지음 | 박종일 옮김 | 한길사 | 720쪽

 

예외적인 시대는 예외적인 일을 해내는 예외적인 지도자를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그 예외성의 공통요소는 다름 아닌 ‘체제의 위기’다. 이 책은 그러한 예외적인 지도자들, 특수한 방식의 권력행사가 가능했던 예외적 상황이 만들어낸 20세기 유럽 지도자들에 관한 사례연구다. 즉, 각자 다른 배경과 다른 정치체제로부터 등장한 그들이 어떻게 권력의 자리에 오르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지, 그 권력이 20세기 유럽을 어느 정도로 바꿔놓았는지를 다룬다.

저자 이언 커쇼(Ian Kershaw)는 이 책에서 ‘개성과 권력’(원제: Personality and Power)을 주제로 12명의 유럽 지도자들을 도전적이고도 설득력 있게 분석해내고 있다. 커쇼는 정치지도자에게서 모호한 수사일 뿐인 ‘위대함’의 요소를 애써 찾으려거나 도덕적인 평가를 가하는 태도를 경계하고 유보한다. 그는 전적으로 한 지도자가 역사에 던진 충격과 역사에 남긴 유산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거기에 따라 각 장의 서술방식은 일관된 형식을 띤다. 먼저 개성의 특징, 특정한 유형의 개성을 지닌 정치지도자가 권력을 획득하는 데 유리한 전제조건을 살핀다. 이어 정치지도자가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과 그것을 가능하게 한 구조를 검토한다. 그런 다음 지도자가 남긴 유산에 대한 평가로 마감한다.

이 책에서 다룬 지도자들은 모두 20세기 유럽의 역사를 여는 데 중요한 방식으로 강력한 영향을 미친 인물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자신의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그렇게 했다. 위기는 권력을 행사하여 거대한 충격과 유산을 남긴 개인이 등장하는 배경이다. 

볼셰비키 혁명의 지도자 레닌을 시작으로, 파시즘의 창시자 무솔리니, 전쟁과 학살의 선동자 히틀러, 대숙청을 단행한 공포의 정치가 스탈린이 책의 전반부를 연다. 이어서 영국의 전쟁영웅 처칠, 항독(抗獨) 의지를 불태운 ‘자유 프랑스’의 지도자 드골, 폐허 위에 서독을 재건한 백전노장의 정치인 아데나워, 스페인내전의 국민파 반란 지도자 프랑코, 유고슬라비아의 절대권력자 티토가 중반부를 구성한다. 그리고 강한 영국을 만든 ‘철의 여인’ 대처, 소련을 개방의 길로 이끈 새로운 유럽의 건설자 고르바초프, 통일독일의 총리이자 유럽통합의 견인차 콜이 종반부를 구성한다.

이 지도자들을 보면 독재자도 있고 민주주의자도 있으며, ‘파괴적인 인물’(Destroyers)도 있고 ‘건설적인 인물’(Builders)도 있다. 하지만 이들을 묶는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그들이 각자의 나라에서 ‘권력’을 장악했다는 하나의 사실이다. 그가 거칠 게 없는 독재자라면 어떻게 해서 그런 위치에 오를 수 있었는지, 그가 민주주의자라고 한다면 어떻게 해서 헌법에서 정한 제약을 극복하고 그런 위치에 오를 수 있었는지, 독재자도 민주주의자도 아니라면 권력행사의 이론적 제약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개성과 환경은 무엇이었는지를 분석한다.

왜 어떤 개인은 출중하고 탁월하여 권력을 획득하고, 그 권력을 행사하여 정치적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특정한 개인의 개성과 힘, 그리고 능력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는 반문한다. “특정한 인물의 성격상 장점이 어떤 때에는 정치적으로 호소력이 없다가 다른 때에는 매우 호소력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인물을 카리스마 있는 존재로 비치게 하는 특정한 사회적 맥락과 조건, 환경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지도자 개인의 행위뿐만 아니라 그의 역할이 가능했던 비인격적, 구조적 조건을 살펴봄으로써 역사적 변화에 한 인물의 개성이 미친 영향을 평가”하고자 시도한다.

돌이켜보면,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깊은 상처를 남긴 유럽의 20세기는 폭력과 증오, 파괴와 학살이 횡행했던 야만의 시대였다. 그 절대적인 원인이 정치에 있었고, 그 핵심에는 지도자의 권력 운용과 리더십이 강력히 자리하고 있었다. 이 책은 20세기 고통스러운 역사에 대한 단순한 성찰을 넘어서, 오늘날에도 냉혹하게 작동하는 정치와 권력의 역학, 그 위태로운 현실을 직면케 한다. 지금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상황이나, 새로운 지정학적 긴장과 경제위기로 빚어진 국가 간 대립에서 보듯이 인류는 문명의 위기를 자초하는 쪽으로 향하고만 있다.

우리는 어쩌면 모든 문제를 일소해줄 수 있는 ‘해결자’를 원하는지도 모른다. 저자는 그런 우리에게 이 책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역사는 현재의 질병을 고칠 수 있는 만병통치약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상황을 급속히 개선하는, 철저한 변화를 제시하는 강력한 인물이 독단하는 정치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정치가들의 말과 주장을 평가할 때 우리의 욕망을 경계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어떤 정치를 원하고, 어떤 지도자를 선택해야 할까. ‘개성과 권력’이란 주제에 천착하며 지도적 인물들을 통해 20세기 유럽정치사를 조망하는 역사학자의 결론적 답변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그것이 유토피아에 대한 또 하나의 정의(定意)일지라도.

“나에게 선택하라고 한다면 카리스마 넘치는 개성 있는 인물은 가급적 피하고 개성은 덜 화려하더라도 (모든 시민의 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집단토의와 건전하고 이성적인 의사결정을 기반으로 한) 실현가능하고 효율적인 거버넌스를 제시하는 인물을 택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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