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 인문학과 감각 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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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인문학과 감각 리터러시
  • 이기중 전남대학교·영상인류학
  • 승인 2023.05.20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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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진다. 이처럼 우리는 눈, 귀, 코, 혀, 살의 감각 기관을 통해 느끼고, 인식하고, 경험하고, 이해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한다. 이는 우리가 몸과 마음을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다비드 르 브르통(David Le Breton)은 “우리는 감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우리가 지닌 ‘오감(五感)’의 감각은 인간을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자 일상생활을 비롯한 제반 사회활동의 기본이 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오감을 이루는 다섯 감각은 사회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동등하게 취급받지 못했다. 이런 연유로 학문적인 영역에서도 다섯 감각은 연구 대상이나 연구 관심사의 측면에서 서열이 갈렸다. 대체로 시각(視覺)과 관련된 탐구와 논의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였고, 청각(聽覺), 후각(嗅覺), 미각(味覺), 촉각(觸覺)이 그 뒤를 이었다.

최근 서구에서 새로운 연구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는 감각 연구(sensory studies)는 이러한 서구의 시각 지배적인 학문적 풍토에서 벗어나 인간이 지닌 감각의 세계를 총체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인문학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보다 거시적인 학문적 흐름의 틀에서 보자면, 1970년대에는 인류학을 비롯한 여러 인문학 분야에서 언어에 기반한 ‘언어적 전환(linguistic turn)’이 일어났으며, 1980년대에는 이러한 언어학적 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맥락에서 시각적인 사고와 시각문화의 연구를 강조하는 ‘시각적 전환(pictorial turn)’이 나타났고, 이어 1990년대 말에는 다시 이러한 시각적인 이미지 중심의 사고 방식과 학문적 풍토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자 ‘감각적 전환(sensory turn)’이 출현하게 되었다.

감각연구, 즉 감각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는 인간의 감각이 생리적일 뿐 아니라 사회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감각 인문학은 생리학이나 심리학의 영역을 넘어서 우리의 삶과 사회 문화를 구성하는 일상생활, 장소, 사회집단, 계급, 연령, 젠더, 인종, 기억, 역사 등과의 관련 속에서 감각 문화를 탐구하려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연구의 영역을 시각문화뿐 아니라 ‘소리의 세계(soundscape)’, ‘냄새의 세계(smellscape)’, ‘맛의 세계(tastescape)’, ‘촉각의 세계(skinscape)’를 포함하는 ‘감각의 세계(sensoryscape)’로 확장하고, 이를 통해 우리 인간이 지닌 시각 문화, 청각 문화, 후각 문화, 미각 문화, 촉각 문화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고찰하려 한다. 이처럼 감각 인문학은 각 사회와 집단이 지닌 감각 체계와 감각 문화를 총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 역사적 시점과 사회문화적 배경에서 세상을 감각하고, 세상과 관계를 맺고, 사람들과 소통하는지 탐구한다.

또한 감각 연구는 감각적인 방식으로 사회문화를 바라보고 표현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가 최근 인류학 분야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감각 민족지(sensory ethnography)’라고 할 수 있다. 감각 민족지는 다(多)감각적인 관점에서 문화를 바라보고, 이를 영상을 비롯한 다채로운 미디어를 통해 해석하고 재현하려 하는 학문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서로 다른 감각적 세계에 살고 있다. 이는 개인마다 다르며, 시대적으로도 다르고, 사회나 문화마다 다르다. 이에 대한 총체적인 인문학적 연구가 ‘감각 인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감각 인문학은 통시적이면서 공시적이며, 또한 각 감각 기관과 감각 문화를 보는 시각은 총체적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감각에 대한 인문학적 연구는 역사학, 지리학, 인류학, 사회학의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앞으로 감각 문화의 이해를 기반으로 한 감각 리터러시는 예술, 건축, 박물관, 전시 등의 영역뿐 아니라 비즈니스의 측면에서도 다채롭게 활용될 수 있다.

 

                                2023년 한국시각인류학회 봄 학술대회

개인적으로는 이번 학기 대학원 과목으로 ‘감각 인류학’을 개설하여 수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지난 5월 19일 한양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시각인류학회 2023년 봄 학술대회에서도 감각 인문학과 관련된 논의를 진행하였다. 본 학술대회의 대주제 또한 감각 인문학의 추세를 반영하기 위해 ‘글로 쓰지 않는 민족지’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정했으며, 1부에서는 도시 상공업의 다양한 지층을 발굴하려는 학문적 시도로서 청계천 기계 공구상가의 도시경관과 소리에 대한 연구들이 발표되었다. 2부에서는 ‘감각의 시대’라는 제목 하에 감각민족지 영화와 센서리 필드노트, 그리고 시각과 촉각 문화의 결합체라고 할 수 있는 문신(文身) 문화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으며, 3부에서는 VR영상의 일본 사례 등의 연구를 통해 이미지와 기술을 통한 새로운 민족지의 가능성에 대해 탐구하는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 국내에서도 감각 인문학과 감각 리터러시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다채롭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기중 전남대학교·영상인류학

현재 전남대학교 문화인류고고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사)한국시각인류학회 회장과 한국국제민족지영화제(KIEFF)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미국 템플대학교(Temple University)에서 영화와 영상인류학을 전공하고 석사, 박사를 받았다. 『Wedding Through Camera Eyes』로 미국인류학회에서 수상했으며, 저서로 『시네마 베리테』, 『일본 국수에 탐닉하다』, 『렌즈 속의 인류: 민족지영화와 그 거장들』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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