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국민투표 통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개편…비례성·대표성 높아지고 다당제로 바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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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국민투표 통해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개편…비례성·대표성 높아지고 다당제로 바뀌어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5.20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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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논점]

 

뉴질랜드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와 폐쇄형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가 혼합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특히 독일과 달리 뉴질랜드는 전국단위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현행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와 유사하다.

과거에 뉴질랜드는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만을 채택하고 있었으나, 정당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간의 불비례성, 대표성의 한계 등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 제기로 인해 선거제도를 개편했다. 1993년에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국민투표가 시행되었고, 그 결과에 따라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제도가 개편되었다. 

선거제도 개편 이후 뉴질랜드는 정당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간의 비례성과 정치적 대표성이 높아지고, 군소정당의 의석수가 증가했으며, 다당제로 바뀌었다고 평가받는다. 2011년에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투표자의 57.8%가 현행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지지를 보냈으며, 현재까지 선거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이에 국회입법조사처(NARS)는 뉴질랜드의 선거제도와 개편 과정, 그리고 이에 대한 평가를 살펴보고, 우리나라 선거제도 개편의 시사점을 도출한 『이슈와 논점』 보고서 〈뉴질랜드 의회 선거제도〉(저자: 송진미 입법조사관)를 5월 17일(수) 발간했다. 

 

◇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뉴질랜드의 선거제도 개편

뉴질랜드 선거제도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제기된 것은 다수대표제의 주요 문제점인 정당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간의 불비례성이다. 특히, 1978년부터 1984년 사이에 치러진 세 번의 선거에서 두 정당의 정당 득표율은 78~80%에 머물렀지만, 의석 점유율은 98~99%에 달했다.

1978년과 1981년 총선거에서는 제3당이 과소 대표되는 불비례성 문제 외에도 양대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순위가 뒤바뀌면서 다수당이 바뀌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뉴질랜드는 의원내각제 국가로, 다수당에서 총리를 선출하여 내각을 구성한다. 1978년 선거에서 노동당의 득표율은 40.4%로 국민당의 득표율(39.8%)보다 근소하게 높았으나, 실제 의석수에서는 노동당이 40석, 국민당이 51석을 획득하며 국민당이 더 앞섰다. 1981년 선거에서도 노동당이 국민당보다 득표율이 높았으나, 국민당이 47석, 노동당이 43석을 차지하며 국민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높은 불비례성의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는 강한 양당제로 이어졌다. 감소하는 득표율에도 불구하고 양대 정당이 대부분의 의석을 차지했다. 1960~1970년대부터 양대 정당의 득표율이 점차 하락하면서 1981년과 1984년 선거에서는 78% 내외에 머물렀지만, 1960년부터 1993년까지 치러진 선거에서 국민당과 노동당은 전체 의석의 96~100%를 차지했다. 

1980년대 들어서 단순다수대표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고, 이후 1984년 노동당이 총선에서 다수당을 차지하면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왕립위원회(the Royal Commission on the Electoral System)’가 설립되었다. 동 위원회는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mixed member proportional)를 채택하고 의원수를 120명으로 늘릴 것을 제안했다. 유권자가 지역구 후보자와 정당명부에 각각 1표씩 행사하는 1인 2표제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정당별 의석 비율을 정하는 방식이다. 

위원회 제안을 계기로 시민사회영역에서의 선거제도 개혁 운동이 본격화되었으며, 결국 양대 정당은 이어진 총선들에서 차례로 국민투표를 약속했고, 1990년 선거에서 국민당이 승리하고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국민투표는 두 번에 걸쳐서 실시되었다. 1992년 9월에 실시된 1차 투표에서 참여자의 84.7%가 선거제도 개혁에 찬성했다. 2차 투표는 1993년 총선과 함께 실시되었으며, 유권자들에게 기존 제도인 단순다수대표제와 1차 투표에서 가장 선호가 높았던 연동형 비례대표제 중 하나를 고르도록 했다. 투표자의 53.9%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선택하면서 1996년 총선부터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다.


■ 뉴질랜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뉴질랜드는 의원내각제 국가이며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의원 임기는 3년이지만 의회 해산으로 인해 조기 총선이 치러질 수 있다. 의회 의석수는 기존 99석에서 선거제 개편 이후 증가하여 총 120석이 되었다.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로 72명, 전국단일선거구 폐쇄형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로 48명을 선출한다. 다만, 뉴질랜드는 지역구 의석이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정된 의석수보다 많으면 초과의석을 인정하기 때문에, 총의석수는 선거마다 조금씩 다르다. 

뉴질랜드는 선거구 획정시 인구 외 다양한 기준을 함께 고려한다. 뉴질랜드는 기본적으로 인구에 비례하여 선거구를 획정하되, 기존 선거구 경계와 이익공동체 (community of interest), 소통의 수월성(facilities of communications), 지형적 특성 등을 함께 고려한다. 선거구 획정할 때 평균 인구 수 편차 기준은 ±5%이다. 

혼합형 선거제도에 따라 유권자는 지역구와 비례대표에 각각 투표한다. 투표용지는 좌우로 나뉘어 있으며, 왼쪽에 나열된 정당 중 한 정당, 오른쪽에 나열된 지역구 후보 중 한 명의 후보에게 투표한다. 

독일과 달리 뉴질랜드는 전국 단위에서 정당별 득표율을 계산하여 의석을 할당하는데, 정당이 비례대표 의석을 할당받기 위해서는 유효투표 총수의 5% 이상을 득표하거나 지역구 의석 1석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이러한 봉쇄조항을 통과한 정당은 전국 득표율에 따라 할당된 의석에서 지역구 당선자 수를 제하고 남은 의석수만큼 비례대표 의석을 배정받으며, 정당의 명부순위에 따라 당선인이 결정된다. 

 

                                                                  뉴질랜드 국회의사당

■ 뉴질랜드 선거제도 개편에 대한 평가

뉴질랜드의 선거제도 개편은 정당 득표율과 의석 점유율 간의 비례성과 소수집단의 대표성을 높였으며, 이를 통해 유권자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높이고 정부의 책임성에 대한 긍정적 태도를 강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후 다양한 정당이 원내 진출에 성공했고, 여성 의원 수가 증가했으며, 의회 구성원의 다양성도 높아졌다. 

제도 개편 후 치러진 첫 선거인 1996년 총선에서 노동당은 37석, 국민당은 44석을 획득했으며, 뉴질랜드 제일당(New Zealand First)이 17석, 기타 다른 정당들이 22석을 차지했다. 이후 실시된 선거에서도 군소정당의 의석수가 증가했다. 선거제도 개편의 결과 사표가 줄어들고, 군소정당의 원내 진출이 용이해지면서 정당 체제가 양당제에서 다당제로 바뀌었다. 최근 치러진 2020년 선거에서는 노동당이 65석, 국민당이 33석으로 전체 의석의 81.7%를 차지했으며, 녹색당이 10석, ACT 뉴질랜드 정당이 10석, 마오리당이 2석을 획득했다. 

선거제도 개편의 두 번째 효과는 정치적 소수자의 대표성 향상과 원내 구성원의 다양성 증진이다. 여성의원 비율은 1993년 선거에서 21%였는데 제도 개편 이후 1996년 선거에서 29%, 2020년 선거에서는 48%까지 증가했다. 국회 구성원도 다양해졌는데, 1993년 마오리족 의원은 8명으로 전체의 8%였으나, 1996년 선거에서는 13%로 증가했으며, 최근에 치러진 2020년 선거에서는 21%에 달했다. 또한, 선거제도 개편 이전에는 아시아계 의원이 없었으나, 2020년 선거에서는 한국계를 포함해 중국, 인도, 이란, 몰디브, 멕시코 등 다양한 국가 배경의 의원이 선출되었다.


■ 시사점

뉴질랜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주로 독일과 비교된다. 전국명부방식을 채택하고 초과의석만 인정하기 때문에 비례성은 독일 선거제도보다 낮지만, 의원정수의 과도한 확대라는 독일의 문제점은 발생하지 않는다.

한편, 뉴질랜드의 선거제도 개편 과정은 주로 영국과 비교된다. 뉴질랜드는 국민투표를 두 번에 나누어 실시하여 제도 개편 자체에 대한 의견과 선호하는 대안에 관한 의견을 수렴했고, 이를 통해 기존 제도와 가장 선호하는 대안 사이에서 유권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반면 영국은 정당 간 협상으로 마련된 대안과 기존 제도 사이에서 선택하도록 했으나, 대안이었던 대안투표제에 대한 반대가 높아 선거제도 개편이 무산되었다.

선거제도 개편 이후 뉴질랜드에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할 것인지에 대한 국민투표가 한 차례 실시되었다. 2008년 총선에서 국민당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검토할 때이며 국민투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이후 선거에서 국민당이 집권하면서 2011년 국민투표가 실시되었다.

국민투표 결과, 유효투표의 57.8%가 찬성하여 현행 제도가 유지되었다. 다만, 반대의 목소리도 42.2% 로 작지 않다는 점은 제도에 대한 검토와 개편 요구가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2011년 국민투표에서는 만약 제도를 바꾼다면 어떤 제도를 선호하는지도 함께 조사했는데,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선택지가 단순다수대표제(First Past the Post)였다. 가장 선호하는 대안이 종전 선거제도로의 회귀로 나타난 것이다. 이 밖에도 봉쇄조항의 기준이 너무 높아 더 다양한 정당의 원내 진출이 어렵다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많은 정당이 선거에 출마하여 혼란을 준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등 제도 개편에 대한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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