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의 통역을 위한 A to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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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회의 통역을 위한 A to Z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5.13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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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역의 바이블: 통번역 전공자와 비즈니스 실무자를 위한 국제회의 전문 용어·교양·상식 | 임종령 지음 | 길벗이지톡 | 748쪽

 

이 책은 32년 경력의 국제회의 통역사이자 대한민국 정부기관 1호 통역사인 저자가 그동안 오류 없는 정확한 통역을 위해 공부하며 모은 전문용어와 표현, 정보들을 엄선하여 정리한 책이다. 정부 부처 명칭, 국정과제를 비롯해 국제회의 필수표현, 의전의례 기본 원칙, 네이티브 관용구, 속담, 사자성어, 고급 실생활 영어 등 통역의 필수표현 및 상식과 함께 경제, 비즈니스·산업, 금융, 정치·국제관계, 환경, 에너지, IT, 의학 등 분야별 배경정보 및 용어를 총망라하였다. 통역·번역 전공자와 종사자는 물론이고 글로벌 비즈니스 실무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정보들을 담고 있다.

 

한 나라의 언어뿐 아니라 문화와 관습을 알아야 행간의 의미까지 놓치지 않고 전달하는 훌륭한 통역을 할 수 있다. 우리말 속담과 사자성어는 물론, 다른 나라의 속담과 명언도 익혀야 하고, 문화와 관습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국식 표현을 타 언어권에서도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해내야 한다.

통역은 한 언어를 그저 다른 언어로 바꾸는 것이 아니다. 언어가 달라져도 말하는 사람의 의중과 의미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통역에서는 언어 실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다방면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다. 해당 분야의 전문용어나 배경지식, 주제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연사의 발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당연히 통역할 때 누구도 못 알아듣는 소위 ‘방언’을 하게 된다. 반대로 분야에 대한 배경 지식이 있으면 모르는 단어가 있더라도 전체 문맥을 고려해서 내용을 추론할 수 있다.

구체적인 사례를 저자의 ‘서문’을 발췌해 살펴보자

협상상대편이 한국 측에 “You are kicking the can down the road.”라고 말합니다. 깡통을 길 아래로 차버린다니 그대로 직역해서는 무슨 말인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이 말은 ‘문제가 골치 아프니 멀리 차버린다’ 즉 ‘당장 해결하지 않고 뒤로 미룬다’라는 의미입니다.

호주 총리가 한호주 경제협력위원회 개회사에서 “punch above our weight”라고 하더니 갑자기 축하의 박수를 보내자고 말합니다. 직역하면 ‘권투에서 체급 이상의 펀치를 날린다’는 뜻인데 이 말만 들어서는 도대체 뭘 축하하자는 건지 이해가 안 될 수 있습니다. 이 표현은 “양국 관계가 비약적인 신장을 하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루었다.”는 뜻으로 두 나라가 눈부신 교역 성장을 이룬 것과 더불어 포괄적 동반자로의 관계 격상을 축하하자는 의미였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우리말에서는 검토하겠다는 의미로 말을 하면서도 ‘적극 검토하겠다’, ‘긍정적인 검토를 하겠다’, ‘검토를 고려해보겠다’ 등 다양한 표현들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통역할 때 이런 표현들의 미묘한 뉘앙스 차이를 정확하게 표현해내지 못하면 긍정적인 의미가 부정적인 의미로 탈바꿈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말에서 사망과 관련된 단어가 무려 25가지가 넘는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존칭어로 표현할 때 ‘별세, 운명, 작고, 붕어, 타계’, 종교에서는 ‘선종, 소천, 입적, 열반’, 국가를 위한 죽음일 때는 ‘전사, 순교, 순국’, 그밖에 일반적인 표현으로 ‘횡사, 객사, 골로 가다’ 등 사용처도 각기 다르고 뉘앙스가 다른 단어들이 존재합니다. 통역사는 이처럼 다양한 단어들을 최대한 많이 익혀서 그 단어가 들어간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통역에서 용어와 배경지식은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한미 FTA 협정 관련 좌담회에서 한국 연사가 “우리도 트립 가야 해.”라고 말합니다. 맥락을 모르면 자칫 ‘우리도 여행(trip) 가야 해’라고 통역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트립’은 여행이 아니라 TRIPS(Agreement on Trade-Related Aspects of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즉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을 말하며 통상 마찰과 분쟁 해소를 위해 TRIPS에 가입하자는 뜻이었습니다.

통역사에도 여러 분야가 있는데, 그중 가장 어렵고 높은 단계의 통역사는 국제회의를 동시통역하는 통역사입니다. 국제회의는 국제 정치, 금융, 경제, 교육, IT 기술, 과학, 환경 등 다양하고 깊이 있는 주제를 다루는 회의이므로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며 또한 말을 들으면서 동시에 다른 언어로 바꾸어 말을 해야 하는 즉 동시통역을 해야 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국제 정치와 같은 분야에서는 형용사 하나를 놓침으로써 말한 사람의 의도와 다른 의미로 전달되어 회의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습니다.

정치 관련 사례도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이 3연임 확정 후 다시 한번 천명한 ‘중국몽’이란 표현을 영어로 옮긴다고 할 때 Chinese Dream이라고 통역하면 일반적인 중국인들이 꾸는 꿈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중국몽에 해당하는 정확한 영어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뜻을 전달하기 위해 설명을 곁들여 통역해야 합니다. 중국몽이 ‘중화민족의 부흥을 내세우며 공세적 대외정책’을 뜻하는 것임을 알고 통역한다면 “Chinese Dream which is the great rejuvenation of the Chinese nation’으로 풀어서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통역을 잘하려면 영어와 한국어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완벽한 준비가 있어야만 완벽한 통역을 할 수 있습니다. 통역할 분야의 배경지식을 철저히 공부하고 해당 분야의 용어를 빠짐없이 외워야 합니다. 전문통역을 하면 할수록 내용과 배경지식이 중요함을 더 절실히 깨닫게 됩니다.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고 용어를 찾고 정리하는 일련의 과정들은 힘들고 고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훌륭한 통역사가 되기 위해서 여러분이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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