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학교설치령」 개정안이 아닌 「국립대학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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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학교설치령」 개정안이 아닌 「국립대학법」이 필요하다
  • 최인철 경북대학교·영어언어학
  • 승인 2023.04.30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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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교육부가 입법 예고한 「국립학교설치령」 일부 개정안을 둘러싸고 교육부와 교수단체 간의 논쟁이 격화되고 있다. 교육부의 개정안은 필요한 경우 교육부장관이 2개 이상의 대학을 통·폐합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동조합, 민주화교수협의회 등 7개 고등교육 단체가 연대한 전국교수연대회의는 이를 대학 자율성을 말살하는 반헌법적 기도로 규정하고 적극적인 반대 활동을 전개했다.

교육부는 4월 21일 카드뉴스 형식의 해명자료를 통해 전국교수연대회의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교육부 주장의 핵심은 지금까지 국립대학의 통·폐합은 두 개 이상 대학이 구성원의 의견 수렴 및 대학 간 합의를 거쳐 신청하는 경우에만 이루어져 왔고, 교육부장관이 자의적으로 통·폐합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입법 예고된 개정안은 현행 고등교육 및 국립대학 관계 법령에 해당 고시 규정이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가 입법예고한 개정안은 대통령령이며 이는 국회에서 제정한 법률을 보충하는 명령이다. 따라서 그 구체적인 내용의 범위가 상위 법률에 규정된 것이어야 한다. 문제는 교육부의 개정안이 담고 있는 국립대학의 통폐합과 관련된 내용이 「국립학교설치령」의 모법인 「고등교육법」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률에서 위임되지 않은 내용을 대통령령으로 규정하는 것은 일반적·포괄적 위임을 금지하는 헌법 제75조의 내용과 배치된다. 따라서 법률 미비가 입법 예고된 개정안의 취지라면 당연히 대통령령 개정을 입법 예고할 것이 아니라 고등교육법을 개정하거나 관련 조항을 포함하는 관계법안을 제정하여야 한다.

교육부의 「국립학교설치령」 개정이 교수단체의 의심을 받는 이유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좀 더 뿌리가 깊다. 현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과거 이명박 정부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서 국립대학 법인화를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교수단체들과 날 선 각을 세운 적이 있었다. 또한 교수단체들은 과거 이주호 장관의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을 신자유주의적 경쟁의 논리를 고등교육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고등교육을 황폐화시킨 주범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 두 정책의 큰 줄기는 국립대학에 대한 중앙정부 손 떼기와 대학에 대한 부당한 간섭의 두 극단적 모습으로 정리할 수 있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교육부 장관으로서 이주호 장관의 모습은 과거 이명박 정부에서의 모습과 그 궤를 같이한다. 교육부는 최근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를 발표하며 오는 2025년부터 정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 예산의 절반을 지방자치단체에 맡기겠다는 안을 발표했다. 또한 그 사업의 연장선에 있는 글로컬대학사업의 선정 요건의 예로서 국립대학의 시립화·도립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이 모든 모습들이 궁극적으로 교수단체들에겐 또 다른 이름의 법인화, 즉 중앙정부의 국립대학 손 떼기로 비춰지고 있는 것이다.

입법 예고된 「국립학교설치령」 일부 개정안은 정부의 의도가 어떠하든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국립대학의 자율성을 무시하는 법안이며 대학에 대한 부당한 간섭이다. 교육부의 의도가 그것이 아니라면 교수단체와 싸우려 할 것이 아니라 그 문제점이 노정된 대통령령을 폐지하여야 한다. 더욱이 대학의 통·폐합과 관련한 관계 법안이 없다는 교육부의 자인은 더 충격적이다.

지금 대학과 관련된 법령체계로는 교육기본법, 고등교육법, 국립대학의 회계 설치 및 재정 운영에 관한 법률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국가와 국립대학의 관계를 설정하고, 국립대학의 사회적 책무와 지위를 규정하는 조항은 없다. 또한 국립대학의 설립과 운영을 규율하는 기본적인 법률도 부재한 상황이다. 입법 예고된 「국립학교설치령」을 둘러싼 논쟁도 결국은 모법인 「고등교육법」이 대학의 목적과 정체성, 심지어는 대학의 구성과 조직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규율을 가지지 못하는 낡고 허술한 법률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등에 의해 제안된 「국립대학법」이 여러 차례 발의된 바 있으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는 명백한 국가와 교육당국의 책임 방기이다. 개별대학에 관한 법률인 「서울대학법」, 「인천대학법」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국립대학법」이 없다는 것은 더 황당한 일이다. 정부와 교육당국은 이번 「국립학교설치령」을 둘러싼 논쟁을 계기로 「국립대학법」 제정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학에 대한 중앙정부의 책임을 다하려는 자세와,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정책의 기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말아야 하는 기관이다. 진정한 학문의 자유와 발전은 대학이 간섭과 통제로부터 자유로울 때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인철 경북대학교·영어언어학

• 경북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
•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 Linguistics 박사
• 현 전국국공립대학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
• 전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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