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어법(矛盾語法)의 매력(魅力)에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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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어법(矛盾語法)의 매력(魅力)에 빠지다
  • 안 윤옥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대한암연구재단 이사장
  • 승인 2019.1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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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동양의 고전 노자(老子, 이전에는 도덕경, 道德經이라 하였음)를 읽을 때마다 또 다른 새로운 이해/깨달음을 얻곤 하는데, 이는 그 전형적인 문체, 즉 모순적 수사법(修辭法 = 모순어법, 矛盾語法)이 지니는 의미전달의 효과 때문이라고 믿어진다. 3장에 처음 나오는 ‘위무위’(爲無爲, 하지 않음을 한다 --> 꾸미지 말고 있는 그대로 한다)는 노자의 key word로 유명하다.

노자에는 형상(形狀)이나 행위를 모순어법으로 표현, 수사(修辭)하는 예는 셀 수 없이 아주 많다. 無狀之狀(道에 대한 설명; 형상이 없는 형상. 14장), 大方無隅(큰 네모는 모퉁이(모서리)가 없다. 41장), 損之而益, 益之而損(덜어짐이 더해짐이고, 더해짐이 덜해짐이다. 42장), 大智若愚, 大巧若拙, 大辯若訥(큰 지혜는 어리석은 듯하고, 뛰어난 솜씨는 서툰 듯, 빼어난 말솜씨는 더듬는 듯하다. 45장) 등은 형상을 표현한 일부 예이다.
 
행위표현으로 爲無爲를 비롯하여 知其白, 守其黑(밝음을 알면서 어두움을 지킨다. 28장), 事無事(일이 없음을 일삼고), 味無味(맛없음을 맛본다. -> 맛보되 맛보지 않은 것처럼 한다. -> 맛이 없는 것에서 맛을 음미할 줄 아는 것. 63장),  欲不欲 . . . 學不學 . . .(바라지 않음을 바래라 . . . -> 억지로 하려 하지 않는다. 64장), 知不知上(알지만 모르는체하는 것이 으뜸이다. -> 모른다는 것을 아는 것이 으뜸이다. -> 지혜가 정점에 도달하면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71장), 弱之勝强, 柔之勝剛.....正言若反(연약함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굳센 것을 이기며 . . . 바른 말이 마치 반대하는 말 같다. 36/78장) 등등 많은 구절이 나온다.
 
동서양의 경구, 속담, 또는 문학작품(예: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모순어법의 예는 많다. ‘必死卽生 必生卽死’(충무공 이순신의 경구), ‘위대한 절망’(시인 고은이 백두산 천지의 장관을 보고), ‘찬란한 슬픔’(김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Festina lente’(more haste, less speed, 서둘러라 천천히), ‘Sweet sorrow’, ‘Loving hate’, ‘Anything of nothing’, ‘Heavy lightness’, ‘Bright smoke’, ‘Sick health’, ‘Still-waking sleep’, ‘That is not what it is’, ‘Born dead’(죽어서 태어난다.), ‘Living dead’(숨죽이고 산다.), ‘Sound of silence’, ‘Fully empty’, ‘Pretty ugly’, ‘Small crowd’, ‘Living apart together’, ‘Open secret’, ‘Current history’, ‘Clearly misunderstood’, ‘Creative destruction’, ‘Guest host’, ‘Faultily faultless’, ‘Agree to disagree’, ‘Same difference’(그게 그거야, 아무거나),  ‘Clear confusion’, ‘Fine mess’, ‘Accidentally on purpose’ 등등.

심리적 판단에 관련되는 “Less is More”이론(by Hertwig & Todd, 2003)이 있다고 한다. 미래예측과 같이 불확실성이 우세한 상황에서의 판단이나 선택에서는 여러 요인보다 한, 두 가지 주요 요인(=take the best)만을 근거로 내리는, 소위 직관적/심리적 판단 또는 무의식적 어림짐작(heuristic)이 훨씬 더 유효하다는 이론이다. The more, the better(多多益善, 많을수록 좋다)와는 상반되는 이 이론은 여러 형태의 실험적 연구에서 타당함이 입증되었다. 예를 들면, on-line에서 profile(4명과 20명)만을 보고 date 상대를 선택하도록 하는 비교군 연구에서, 선택 후의 만족도가 4명에서 고른 경우에서 높았고, 아쉬움도 낮았다(물론 20명에서 고르기를 원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지만). 또한, 진열되는 상품 종류가 적을수록 손님의 구매가 많다는 슈퍼마켓에서의 연구보고도 있다. (예: 잼 6종류 진열시 구매는 30%이나 24종류 진열시 구매는 3%, P&G의 샴푸 종류 26개를 15개로 줄이자 매출이 10% 상승.) 또한 최근 ‘Zero 선택 메뉴’(단일 메뉴) 식당이 구미지역에서 성업 중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새로운 경향도 Less is More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Less is More”와 같이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단어를 결합한 모순적 표현법을 모순어법(Oxymoron)이라고 하는데, 그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즉, 효과적인 표현(강조효과)을 위해 서로 모순/상반되는 단어/어휘를 결합, 구사하는 역설적(逆說的) 수사법(修辭法)으로, oxymoron도 oxy(=sharp, keen, 똑똑한)와 moron(=fool, 바보스러운)을 결합한 단어이다. 한편, 역설[Paradox, para(반대) + doxa(의견)]은 모순적 표현법을 사용한 문장이나 말을 뜻하는데, 언뜻 보면 틀린 말 같으나, 해석과정을 거쳤을 때 일종의 진실을 담고 있는 말이다.
 
모순어법과 혼동하는 표현법으로 반어적 표현법(反語法, Irony)이 있다. 실제 표현하고자 하는 바와는 반대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의미를 강조하거나, 비꼬는 의미를 나타낼 때 즉, 표현의 특수한 효과를 나타내기 위하여 반어(反語)를 쓰는 표현법이다. ‘꼴좋다’(실제는 좋지 않은 꼴이다), ‘너 잘 낫다,’ ‘죽어야 산다,’ ‘살기 위해 죽는다’ 등등이 그 예이다.

논리학의 용어인 변증(辨證, dialectic) 또는 변증법과도 구분되어야 한다. 변증이란 직관이나 경험에 의하지 않고 증거를 기반 논리적으로 분석, 추론하는 것을 지칭하는데, 분석, 추론 대상의 거의 전부가 모순/대립되는 내용이다. 그리하여 변증법을 ‘모순과 대립을 기본원리로 하여 사물의 움직임/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이라고 일컫는다. 따라서 변증법적 진리란 ‘모순/대립된 양면’을 변증법적으로 결합(= 正反合 또는 一般化)하여 이끌어 낸 진리를 뜻한다.


안 윤옥 서울대 의대 명예교수·대한암연구재단 이사장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예방의학 전문의로 서울대 의대 교수, 대한암협회 회장, 대한예방의학회 회장,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의료사고감정단 단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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