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노동, 자본의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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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노동, 자본의 바이러스!
  • 김철홍 인천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 승인 2023.04.17 10: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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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근거도 맥락도 부족한, 대통령이 툭툭 내뱉는 말 한마디에 정부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노동자 민중의 삶이 위협받는 나라, 불과 1년 만에 끝없이 추락하는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국내외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자신의 말을 수없이 뱉었다가 쓱 주워 담거나, 남 탓으로 돌리거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뭉개버리는 것이 다반사인데도 조용한 것은 분명 정상적인 국가가 아니다. 

그중에서도 최근 69시간 노동, 소위 유연근무제라는 그럴듯하게 포장된 노동정책이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있다. 대선후보 시절 주당 120시간 노동이라는 황당한 발언으로 온 국민을 경악하게 하더니, 어느새 69시간으로 바뀌고, 특정 계층의 미래를 염려하여 60시간, 54시간으로 맥락 없이 줄어들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미 1~2위를 다투는 최장시간 노동의 나라라는 것은 세계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뭘 알고서 말하는지 아니면 툭 던져 놓고 반응 보며 맘대로 하겠다는 것인지? 국정과 노동자의 삶이 장난인가? 모르면 공부하고 배우든지, 제대로 된 전문가를 참모로 두고 제발 점령군이나 대장 놀이 그만하시라! 

노동시간이 잉여가치를 좌우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에게 시간은 돈이다. 하지만 노동자에게 시간은 삶이다. 세계 각국의 노동시간 투쟁과 역사를 보면 산업혁명 전후로 노동시간의 개념이 없던 1830년 영국에서 10시간 노동의 투쟁이 시작되었고, 1886년 미국에서 8시간 노동을 위한 투쟁이 시작되면서 1890년 5월 1일 노동절이 제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1930년 ILO가 각국이 주 40시간 노동의 원칙을 비준하도록 선언하게 된다.

이에 따라 서구사회에서는 노동시간의 단축을 위한 노동조합의 투쟁과 관련 분야의 전문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주 5일에서 주 4일 근무제, 주당 35시간에서 30시간 근무 등으로 노동시간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다. 국제노동기구인 ILO에서도 48시간을 권장하고 있다. 하루 12시간 이상 근무한 노동자의 사고 경험율이 두 배에 가깝다는 연구 결과가 있을 정도로 장시간 노동은 노동자들의 삶과 생명을 갉아먹는 자본의 바이러스다. 

국내 산업재해보상과 관련한 노동부 고시에서도 만성과로의 인정기준으로 “발병 전 4주간 주 평균 64시간, 12주간 주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는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도 법정 연장노동시간인 52시간을 초과하는 불법적 초과 근무 상황에서만 과로를 인정하고 있다고 수없이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그런데 69시간이라고? 이제는 정말 죽도록 일해야 산업재해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인가? 수십 년째 세계 최고의 산업재해 ‘사망만인율’을 유지하고 있는 산재공화국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눈에 보이지 않는가?

시간이 중심이었던 자본의 바이러스는 제도적으로 시간 연장이 한계에 부딪히자 노동의 밀도에 주목한다. 테일러리즘에 기반한 경영학과 생산기술의 발달에 따라 노동의 밀도가 강화되고 있다. 고전적인 교대제 근무, 경영합리화 전략, 4차산업혁명(기술적 신자유주의), 플랫폼 노동 등으로 잉여가치의 증대를 위한 눈물겨운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많은 학문과 전문가들이 이에 화답하며 동시에 자신의 잉여가치(?)를 높여가고 있다. 

노동절은 1886년 그 당시 주당 60시간 이상의 노동이 일반화되어가던 미국에서 하루 8시간 노동의 쟁취를 위한 투쟁이 그 시작이었다. 잉여노동시간과 잉여가치에 대한 평가와 보상 그리고 노동시간과 노동일의 단축을 위한 사회적 합의 과정이 서구 국가는 물론 남미 국가들에서도 사회적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세계적 변화는 외면하고 역행하면서 철저하게 자본과 기득권에 복무하는 현 정권에 대한 노동자 대중의 전면적 대응과 투쟁이 요구되는 엄중한 상황이다. 

역사는 투쟁하는 노동자 민중에 의해 견인되어왔다. 저녁이 있는 삶은 기본이며, 언제나 이윤보다 생명이다.  


김철홍 인천대학교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현) 인천대학교
(현) 교수노조 단협위원장
(전) 교수노조 국공립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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