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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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고찰
  • 서정혁 숙명여자대학교·철학
  • 승인 2023.04.16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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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에필로그_ 『헤겔의 미학과 예술론』 (서정혁 지음, 소명출판, 477쪽, 2023.02)

 

국내에서 ‘헤겔 미학’은 학술 연구가 본격화되기 전부터 일찌감치 직·간접적으로 예술과 문학 비평에 활용되었다. 그 대표 경우로 꽤 시간을 거슬러 해방 전후에 활동한 임화, 김남천 등을 들 수 있다. 임화의 “위대한 낭만적 정신”이 보여주듯이, 이들은 이미 헤겔 미학을 문학 비평에 적용한 바 있으나, 그 철학적 토대는 허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처럼 헤겔 연구가 부족했던 여건에도 불구하고 문학과의 관련 속에서 철학적 사유를 적극적으로 전개한 과거의 선구적 문학가나 사상가들에 비해 현재 철학 연구자들이나 문학 연구자들은 철학과 비철학의 경계에 대한 의식이 너무 강하고, 적극적으로 상호 소통해야 할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이는 헤겔 미학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연구 상황이 더 열악했던 과거에 비해 지금은 헤겔 미학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해졌지만, 정작 철학과 문학, 예술 사이에 학문적 소통조차도 거의 없는 현실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인문학이나 융합적 사유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철학 전공자와 문학 전공자마저 상호 교류하고 소통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적어도 이제는 이러한 빈틈들을 메우는 작업이 새롭게 시작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특히 헤겔 철학과 관련해서는 그 필요성이 더욱더 절실하다. 헤겔(G. W. F. Hegel, 1770–1831) 자신이 평생 ‘철학과 문학(예술)의 관계’를 고민하고 성찰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철학과 예술, 합리성과 심미성의 소통과 통합은 헤겔 철학 자체에 고유하며 핵심적인 문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필자가 헤겔 미학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한 것도 거의 20년 가까이 된다. 그리고 사실상 2000년대 초부터 비로소 국내에서 헤겔 미학에 대한 학술적 연구가 본격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독일의 게트만-지페르트(A. Gethmann-Siefert) 등과 함께 헤겔 미학에 대한 문헌학 연구를 선구적으로 진행하고 국내에 소개한 권정임 교수, 헤겔의 철학 체계의 관점에서 헤겔 미학을 심층적으로 연구한 권대중 교수는 국내에서 헤겔 미학 연구가 한 단계 도약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대표 연구자들이며, 이들의 주요 연구는 대부분 2000년대 이후 발표되었다. 이러한 선행 연구의 도움을 받아, 필자도 헤겔 미학 전반을 다루어 보려는 계획을 세운 후 『미학 강의(베를린, 1820/21년)』(지만지, 2012)를 완역해 출간하고 다수의 연구 논문들을 꾸준히 발표해 왔으며, 이 책 『헤겔의 미학과 예술론』(소명출판사, 2023)은 그간의 연구성과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엮은 결과물이다.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헤겔의 역사 철학과 세계 문학』(한국문화사, 2018)을 이미 내놓은 적이 있지만, 그 주제는 헤겔 미학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그에 비해 이 책 『헤겔의 미학과 예술론』은 헤겔 미학에 한정된 주제들만을 다루고 있다. 크게 4부로 구성된 이 책은, ‘제1부 예술 일반론’에서 예술의 종언이나 과거성 문제, 예술 형식론과 천재론을 다루며, ‘제2부 예술 장르론’에서는 문학을 제외한 주요 예술 장르들, 즉 조각, 회화, 음악에 관한 헤겔의 철학적 논의를 다룬다. 그리고 ‘제3부 문학론’에서는 시인추방론과 비극론, 희극론, 소설론을 다루며, 이어 마지막 ‘제4부 작가론’에서는 헤겔 미학에 등장하는 문학가들 중 셰익스피어, 괴테, 실러, 슐레겔을 선별해 그들과 헤겔 자신의 입장을 비교 서술한다. 이처럼 이 책은 헤겔 미학에서 주목할 만한 주제들을 선별해 헤겔 자신이 예술론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바를 되새겨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지금 출간되는 책들 중에도 저자가 처음부터 한 권의 책을 기획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집필한 원고들로 체계적으로 구성된 책들이 있는 반면, 실제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편집 재구성하여 펴낸 책들도 있다. 철학자 헤겔의 책으로 알려진 것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의 책들 중 전자의 대표 사례가 『정신 현상학』과 『논리의 학』이며, 후자의 대표 사례가 『세계사의 철학 강의』, 『미학 강의』 등이다. ‘헤겔 미학’은 지금 우리가 보는 것처럼 헤겔 생전에 단행본으로 출간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식적으로 학술 논문과 같은 형태로 발표된 적도 없고, 심지어 헤겔의 자필 원고도 현재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보통 사람들이 부정확하게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사실상 헤겔 자신이 직접 저술하여 출간한 ‘미학’이라는 책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하다. 우리가 ‘헤겔 미학’으로 알고 있는 책은 그의 수강생들이나 제자들이 헤겔의 구술(口述) 강의를 기록해 놓은 노트들에 기초하여 헤겔 사후에 편집 간행된 것이다.

헤겔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1818년 여름 학기부터 시작하여, 그후 베를린 대학에서 1820/21년 겨울 학기, 1823년 여름 학기, 1826년 여름 학기, 1828/29년 겨울 학기까지 다섯 번에 걸쳐 미학을 강의했다. 현재 우리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판본은 헤겔 사후에 그의 제자인 호토(H. G. Hotho)가 베를린 강의에 사용된 헤겔의 수고들과 수강자들의 필기 노트들을 모아 1835년(초판)과 1842년(개정판)에 세 권으로 편집 간행한 것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많이 읽힌 번역본(두행숙 옮김/이창환 옮김)도 이 판본에 기초한 주어캄프 출판사(Suhrkamp Verlag) 헤겔 전집의 제13, 14, 15권을 저본으로 삼은 것이다.

 

                                                             헤겔 필기록 발굴 기사

근래에 독일에서는 문헌학적 연구를 토대로 각 시기별 미학 강의들이 별도로 출간되고 있고, 그에 상응하여 국내에서도 번역본이 순차적으로 국내에 출간되고 있는 중이다. 가장 최근에는 독일의 유력 신문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Frankfurter Allgemeine Zeitung’이 “새로운 발견: 헤겔의 강의들(NEUER FUND: Hegels Vorlesungen)”이라는 제목으로 헤겔 강의를 받아 적은 새로운 필기 노트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보도한 바 있다(2022년 10월 27일자). 이 보도에 의하면 헤겔 연구가인 클라우스 피벡(K. Vieweg)이 뮌헨과 프라이징 대교구의 문서 보관소에서 헤겔이 하이델베르크에서 강연한 내용을 받아 적은 필기 노트들이 담긴 5개의 상자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전에는 전혀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없었던 이 필기 노트들은 헤겔 제자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카로베(F. W. Carové)의 수중에 있던 것이다. 이 노트들에는 논리학, 자연 철학, 정신 철학 등 헤겔의 철학 체계의 거의 모든 부분이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특히 하이델베르크에서 헤겔이 미학을 강의한 내용을 받아 적은 필기록도 거의 온전한 형태도 포함되어 있다고 전해진다. 독일에서 조만간 헤겔의 ‘하이델베르크 미학 강의’가 출간되고 국내에도 다른 강의들과 함께 추가로 번역 소개된다면, ‘헤겔 미학’에 대한 연구와 이해가 한층 더 심화될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의 미학 강의는 특히 베를린 시기에 가장 인기 있는 강의들 중 하나였고, 이 시기에 헤겔은 법철학, 세계사의 철학, 종교 철학 등에 대해서도 함께 번갈아 지속적으로 강의를 했다. 이 강의들은 그 주제는 다르지만 내용 면에서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래서 헤겔 미학을 좀더 심층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학 뿐만 아니라 동일한 시기의 다른 강의들에 대한 연구도 병행되어야 한다. 앞으로 문헌학적 연구와 번역 작업 뿐만 아니라 다른 강의들에 대한 연구가 더욱더 활발하게 진척되면 헤겔 미학에 대한 연구도 좀더 심화되고 확장될 것이다. 헤겔 미학 전반을 체계적으로 다룬 최초의 국내 연구서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이 헤겔 미학을 이해하는 데 아주 작은 길잡이 역할이라도 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서정혁 숙명여자대학교·철학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로 철학, 토론 등을 가르치며 연구하고 있다. 헤겔의 <법철학>, <미학 강의>, <세계사의 철학> 등을 비롯해 여러 책들을 번역했으며, 헤겔의 미학과 법철학, 역사철학, 그리고 교양교육에 관한 다수의 연구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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