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에 관한 몇 가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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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에 관한 몇 가지 생각
  • 노중기 한신대
  • 승인 2023.04.1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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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논평]

국가 노동정책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최근 노동‘개혁’과 관련한 소란을 보는 심정은 여러 가지로 불편하다. 지난 연말부터 이른바 노동‘개혁’은 윤 정부의 대표 정책이 되었다. 그것은 3대 개혁과제 중 교육개혁, 연금개혁보다 더 우선순위에 배치되었다. 뭘 알지도 못하는 대통령은 시도 때도 없이 노동‘개혁’을 부르짖었고 노동부 장관과 여당은 장단을 맞추기에 바빴다. 심경이 불편하고 복잡한 이유를 좀 더 생각해보자.

먼저 그 ‘개혁’이란 것이 전혀 개혁이 아니었다. 주 40시간 법정노동시간을 제멋대로 고무줄 늘이듯이 늘여 52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주 69시간까지 허용하는 정책을 ‘개혁’이라 한다. 아무리 수구(守舊) 정부라 하더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나라에서 시도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장시간 노동 때문에 최악의 산업재해 공화국이 된 나라에서는 터무니없는 일이다.

더욱이 그 사연을 보면 더 기가 막힌다. 2003년 법정노동시간이 주 40시간으로 줄자 당시 노무현  정부의 노동부는 꼼수로 주 68시간 제도를 만들어 시행했다. 노동시간 산정에 토요일과 일요일 노동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웃을 수도 없는 행정해석을 동원하는 방법이었다. 이후 무려 20년 가까이 유독 노동자에게만 일주일은 5일이 되었다. 민주노조와 노동자들은 당연히 저항했고 하급심 법원은 일관되게 노동부 해석을 부인하였다. 사법농단의 주역 대법원이 수년간 무작정 판결을 미루는 사이에 촛불혁명이 일어났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주 최대 52시간을 노동법 조항에 명문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않을 수 없었다’에 다시 따옴표가 쓰인 이유도 씁쓸하다. 2018년 당시 관련 법 개정에 대해 문 정부의 태도 또한 가관이었기 때문이다. ‘촛불 정부’는 당연한 법 개정에다 이른바 탄력노동시간제, 선택노동시간제 등의 노동시간 유연화 제도를 덕지덕지 덧붙였다. 너무나 당연한 정상화 조치임에도 다른 손으로 노동자 밥그릇을 빼앗아 자본에 팔아넘긴 일종의 조삼모사였다. 자칭 ‘노동 존중 촛불 정부’라는 이름에 스스로 먹칠을 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터무니없는 노동시간 확대 ‘개혁정책’은 정책 발표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파산지경에 이르렀다. 당사자인 노동자, 특히 정부가 개혁의 주체로 앞세운 MZ세대 노동자들이 강하게 반발한 것이 직접적인 이유였다. 대통령과 노동부 장관, 그리고 대통령실 고위 관련자의 허둥대는 모습은 이제 안쓰럽기조차 하다. 작년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강경 진압으로 확보한 지지율은 반년 만에 사라졌고 나아가 노동‘개혁’은 내년 총선에서 걸림돌이 될 것임이 명확해졌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노동‘개혁’, 곧 ‘노란봉투법’ 노동법개정 시도도 코미디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수십, 수백 명의 노동자를 자살로 내몬 ‘쟁의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한하는 법이 노란봉투법이었다. 작년에 개인당 100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한 대우조선 비정규노동자들에 대한 야만적 억압이 법개정운동을 다시 불러온 계기였다. 2009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파업 투쟁에서 시작된 노란봉투법 운동의 기원은 원래 2003년 ‘열사 정국’에 있었다. 그것은 무려 20년 전 노무현 정부가 약속했으나 지키지 않았던 전정한 ‘노동 개혁’ 사안이었다. 이후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문제가 갑자기 거대 야당의 가장 중요한 ‘개혁’과제가 된 것이다. 왜일까?

필자에게는 노란봉투법의 결말이 너무나도 뻔해 보인다. 우선 거대 야당의 법 개정이 성공해도 대통령 거부권은 필지의 일이다. 사실 거대 야당이 믿고 있는 것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다. 재벌 이해에 전혀 반기를 들지 못하는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이 노란봉투법을 실제 원할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대선 공약으로 손해배상청구소송 제한을 수도 없이 약속했으나 취임 후에는 완전히 무시했던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기만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럴 의지가 있었으면 촛불혁명 직후의 노동 존중 정부에서 추진했었어야 할 일이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에 노란봉투법은 이재명 방탄과 총선 승리를 위한 정략적 공세 수단을 넘지 않는다.

어쨌든 웃을 수도 없는 윤 정부와 거대 야당의 노동‘개혁’ 소동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는 무엇일까? 외환위기 이후 사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는 완전히 야만적인 신자유주의 사회로 고착되었음을 보여준다. 여야를 막론하고 노동유연화의 자본 요구를 물신(物神)으로 숭배하는 현재 한국 사회에는 출구나 미래가 없음을 드러내고 있다.

예컨대 얼마 전 정부가 내놓은 ‘저출산 대책’은 젊은이들의 출산 거부를 전혀 막지 못할 것이다. 이런 사이비 노동 개혁을 범정부적으로 추진하는 나라에서, 또 수십 년 묵은 노동 개혁과제가 기만적 정치공작의 수단이 되는 나라에서 저출산 대책은 도무지 의미 있는 대책이 될 수 없다. 요새 젊은이들에게 비정규적 저임금으로 주 69시간 일하면서 아이를 낳으라고 하는 것은 누가 봐도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끊임없이 싸우는 척하는 정치권의 거대양당은 사실상 입장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법정노동시간 확대 노동‘개혁’ 갈등의 이면에서 보수 양당은 노동시간 유연화, 기업 이해의 보호라는 공감대를 강하게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 논란의 구체적 양상이 어떠하건 간에, 또 정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당이 모두 노란봉투법을 반대한다는 사실은 명확하다. 그러므로 새로운 정치세력과 정치 구도의 출현, 보수양당 지배 체제의 해체와 진보적 정치 개혁이 매우 시급하다.

 

노중기 한신대·사회학

(현)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현) 민주노총 정책자문위원
(전) 전국교수노동조합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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