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이와 요즘 대학 교육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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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와 요즘 대학 교육에 대한 소고
  • 백혜진 한양대·광고홍보학
  • 승인 2023.04.09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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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대행사>는 “경쟁이라 쓰고 전쟁이라 읽는다”는 드라마 포스터의 타이틀부터 눈길을 끌었다. 불우한 가정에서 자라 이를 악물고 공부했지만, 서울 일류대에 합격했음에도 장학금을 주는 지방대를 갈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 고아인이 국내 1위 광고대행사에 입사해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직장 내 기득권 세력들과의 권력 다툼을 조명한 드라마다. 서울 일류대 대 지방대, 금수저 대 흙수저, 힘 있는 상사에게 줄 서기를 하는 남성 대 외모와 옷차림으로 능력을 평가받고 육아와 직장 사이에서 힘겨운 외줄 타기를 하는 여성의 대립 구도는 식상하면서도 현재진행형인 사회의 단면이다 싶어 씁쓸했다. 

무엇보다 필자는 이러한 드라마 속 인물들과 직장의 모습을 광고홍보학과 학생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해졌다. 1990년대 중반 광고대행사에 입사해 365일 중 300일은 야근하고, 야근이 없는 날은 회식했던 필자에게 이 드라마는 향수마저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에게 이러한 직장의 모습이나 필자의 경험이 “라떼는 말이야~” 사례집에나 들어갈 구습으로 비치지 않을까. 

좁은 취업의 문, 늘어나는 청년 실업률은 여전히 심각한 사회문제다. 그런데도 작은 광고 홍보 대행사나 벤처기업에서는 구인난이 심하단다. 취업 현장에서도 부익부 빈익빈, 공급과 수요의 불균형이 심하다는 뜻이다. 광고홍보학과에 왜 들어왔냐는 질문에 <광고 천재 이제석>과 같은 책을 읽고 감명 받아 광고인이 되고 싶어 왔다고 답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졸업할 때가 되면 광고주와 광고 대리인이라는 영원한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이 되기 싫어 광고주를 택하거나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며 노량진으로 이사하곤 했다. 

4차 산업 혁명의 물결과 함께 빅데이터, 블록체인, 로봇 등 산업의 새로운 키워드가 등장했지만, 혁신을 주도하는 벤처기업 CEO들의 높은 안목에 맞는 젊은이들은 굳이 힘들고 미래가 불확실한 벤처기업을 선택하지 않는다. 심지어 요즘은 공무원에 대한 인기도 한풀 꺾였단다. 연금으로 인한 안정적인 노후 보장도 옛말이 된 데다가 진상 민원에 시달려야 하고, 크고 작은 사건·사고에 불려 다니며 노동의 강도가 높은데도 박봉의 공무원이 좋아 보일 리가 없다. 이름 대면 알만한 대기업 입사는 꽤 매력적이지만 경쟁은 치열하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 보장될 것 같지도 않으니, 중고등학교에서 오로지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경주마처럼 달려온 학생들이 생각하는 ‘좋은 일자리’에 대한 셈법은 복잡하고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학은 직업학교가 아니라고 불끈했던 것도 오래전 일이다. 오히려 급변하는 사회환경에 맞추어 요즘 대학은 ‘제대로 된 직업학교’가 되기 위해 분주하다. 급변하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문제해결형 학습(Problem-based Learning)은 수동적인 교수-학습법에서 벗어나 현장의 생생한 문제를 찾아 학생들의 능동적이고 유연한 문제 해결 능력을 배양한다는 차원에서 취지는 좋았다. 실제로 이러한 학습법이 문제 해결 능력에 효과가 있었다는 메타분석 연구 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그러나 문제 해결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학생들의 자기 보고식 응답 말고 실제로 그들이 유연한 사고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양한 사회의 문제에 창의적인 능력을 발휘하는데 이바지했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다.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것보다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문제 제출자가 원하는 답을 잘 찾아 점수를 높이는 데 집중된 교육을 받은 학생들을 문제해결형 대학 수업 몇 개로 틀에 박힌 사고를 벗어나 창의적인 성인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바람이 아닐까. 사회가 요구하는 미래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대학의 노력을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대학뿐만 아니라 교육과 사회 전반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요즘 젊은이에 대한 새로운 시각도 필요하다. 일본 작가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그의 저서 <절망한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기성세대가 말하는 “요즘 젊은이 담론”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젊은이는 발칙하다”라는 비판은 기성세대가 젊은이를 ‘이질적인 타자’로 여김으로써 자신의 긍정성을 애써 높이려는 시도이며, 반대로 ‘젊은이는 희망이다’라는 예찬은 젊은이를 ‘편리한 협력자’로 간주하고 자신과 사회의 연결 고리를 확인하려는 것으로, 이 모두 구세대의 자의적 해석이라고 일갈한다. 이 책은 경제불황의 늪에 빠진 일본의 우울한 상황에서 행복을 찾는 사토리 세대를 조명한 것이지만, 우리나라 상황에서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요즘 젊은이에 대한 고민은 서양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앤 헬렌 피터슨의 저서 <요즘 애들>에서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경제 성장기에 열심히 일해 중산층의 꿈을 이루었던 부모처럼 살 수도 없고, 살기도 싫은 밀레니얼 세대에 대해 이야기한다. 흥미롭게도 이 책의 원제는 ‘~조차도 할 수 없다’라는 뜻의 ‘can’t even’이다. 열정페이와 계약직 노동, 과도한 성과주의로 요약되는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상황에서 근면 성실해도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무기력과 불안정이 요즘 애들의 삶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광고대행사가 멋진 프로들의 세계였던 70년대생이 가고, 사회 전반에 짙게 깔린 남녀 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던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저)이 가고, 안정의 상징인 9급 공무원을 꿈꾸는 90년생이 오니(<90년생이 온다>, 임홍택 저), 그들을 신입으로 둔 중장년 직장인들이 잔뜩 긴장했던 시기를 넘어왔다. 이제 2000년대에 태어난 요즘 젊은이들을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할까. 교육자인 우리는 어떻게 그들을 사회인으로 준비시켜야 할까. 광고대행사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를 보다가 요즘 젊은이론(論)을 고민하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다니 이것도 직업병이다.


백혜진 한양대·광고홍보학

현재 한양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이론을 실천’하고픈 마음으로 교수직을 잠시 휴직하고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소비자위해예방국장으로 3년 일했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학사,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매스 커뮤니케이션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지아 대학교에서 조교수, 미시간 주립대학교에서 종신교수로 근무 후 귀국해 한양대에 정착했다. 제4대 한국 헬스커뮤니케이션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는 『소셜 마케팅』, 『헬스 커뮤니케이션의 메시지 수용자 미디어 전략』(공저), 『커뮤니케이션 과학의 지평』(공저), 『광고PR 커뮤니케이션 효과 이론』(공저), 『디지털시대의 PR학 신론』 (공저), 『호모퍼블리쿠스와 PR의 미래』(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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