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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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은 힘이 세다
  • 이미정 건국대학교·아동문학
  • 승인 2023.04.09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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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어떤 존재일까?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듯하다. 천진난만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천사’가 아니라는 것도 우리는 잘 안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어린이는 매우 작은 존재라는 것이다. 작다라는 신체적 특징은 어린이를 ‘약자’로 규정 짓게 만든다. 아동문학은 이러한 ‘약자’의 문학이기도 하다.

『황제와 연』(제인 욜런 글, 에드 영 그림)의 주인공 드조 소처럼. 황제의 넷째 딸인 드조 소는 아주 조그만 아이였고, 너무나 작아서 아무도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드조 소의 오빠와 언니는 모두 크고 강해서 태양과 달처럼 보인다. 하지만 드조 소는 ‘조그만 별’처럼 보일 뿐이다. 이 작품의 묘미는 이 작은 공주 드조 소가 아무도 못한 일을 해낸 것에 있다. 반역자들에게 황제가 납치 되자, 드조 소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 연을 이용해 황제를 구한다. 지혜와 용기는 강한 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기에. 오히려 지혜와 용기는 강자와 험난한 상황에 맞설 수 있는 ‘약자’들의 강력한 무기다. 그리고 이는 우리 인생의 비유로 읽을 수도 있다. 물질과 권력보다 더욱 소중한 것들의 가치를 알려 주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작은 것에 행복할 수 있는 소박함도 함께 전해 준다. 「나비를 잡는 아버지」 등으로 잘 알려진 현덕은 1932년 『동아일보』에 「고무신」이 당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아동문학 작품을 창작한다. 「고무신」에는 네다섯 살 정도된 영진이가 나온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 “엄마, 나 일어날 테야.”라고 어리광을 부리는 나이인 것이다. 영진이는 낡은 고무신 때문에 제대로 뛰지도 못하고 친구들에게 ‘땅거지’라고 놀림을 받는다. 

엄마에게 새 신을 사달라고 조르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여의치 않다. 친구들은 나와 놀자고 불러도 신 때문에 쉽게 나갈 수도 없다. 결국 영진이는 엄마를 부르고 담을 향해 돌아앉는다. 엄마는 영진이의 낡은 신을 벗겨 가지고 방으로 들어간다. 홀로 남은 영진이는 울다가 제 풀에 그친다. 그렇게 눈물 어린 영진이의 눈에는 새 고무신이 자신에게 오는 상상을 한다. 그때 엄마가 고친 신발을 갖고 들어온다. 영진이는 “경주할 때 일등은 엿 먹기로 하겠”다며 좋아한다. 

이처럼 작은 것에 만족할 수 있는 낙천성은 그들의 작은 세계에서 기인하다. 작기 때문에 명료하며 단순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의 보다 본질적인 것에 주목할 수 있게 된다. 영진이에게 필요한 것은 잘 뛸 수 있는 신발이지 누군가에게 과시하기 위한 멋진 신이 아니다. 영진이가 고친 신발을 신고 기뻐하는 모습은 물질 지향적 삶을 지향하는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조금만, 조금만 더』(존 레이놀즈 가디너 글, 마샤 슈얼 그림)의 주인공 윌리는 열 살 소년이다. 윌리의 ‘작음’이 더욱 강조되는 이유는 쓰러진 할아버지를 대신해 농장을 경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윌리는 돈이 없어 말을 빌리지 못하자 집에서 키우는 개 번개를 데리고 무사히 수확을 마친다. 그렇게 문제가 일단락되는 듯 싶었으나 더 큰일이 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백 달러의 세금을 내야 했던 것이다. 

마침 마을에서 열리는 개 썰매 경주 대회 상금이 오백 달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윌리는 희망을 걸고 번개와 함께 경주에 나갈 준비를 한다. 아직 아이인 윌리와 경주 경험이 전혀 없는 나이 많은 번개가 경주에서 이길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하지만 윌리에게 다른 방법은 없다. 그만큼 필사적이고 간절하다. 책을 읽는 독자들도 윌리와 번개를 응원하며 이들이 우승하는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게 된다. 결말이 명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윌리는 경주에서 이겼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기적은 우승이 아니라 ‘함께하는 마음’에 있다. 열 살인 윌 리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윌리 곁에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내온 번개가 있다. 또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의사 스미스와 윌리의 상황을 알고 경주에서 이기도록 도와주는 얼음 거인까지 모두 윌리를 지지한다. 이를 하나의 ‘연대’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아동문학에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연대가 등장하는 이유는 아직 혼자 힘으로 서기 어려운 아동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이와 같은 선한 마음과 다정한 세계는 아동문학의 대표적 특징이다. 아동문학을 접할 때 치유의 효과를 느낀다는 의견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동문학은 분명 ‘작고 약한 이들의 세계’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인 것이다. 그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우리가 잊고 살아가는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품은 세계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동문학이 힘이 센 이유다. 


이미정 건국대학교·아동문학
건국대학교 글로컬캠퍼스 동화‧한국어문화학과 교수. 아동문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주요 연구 분야는 ‘유년동화’이다. 지은 책으로 역사동화 『역사거울, 형제자매를 비추다』와 연구서 『유년문학과 아동의 발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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