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어떻게 해서 중국이 되었을까?
상태바
중국은 어떻게 해서 중국이 되었을까?
  • 이현건 기자
  • 승인 2023.04.09 11: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새 중국사 1. 중화의 성립: 당대(唐代)까지 | 와타나베 신이치로 지음 | 이용빈 옮김 | 한울아카데미 | 248쪽

 

일본 교토(京都)학파의 학자들이 집필한 시리즈 중국사(전 5권)의 제1권인 이 책은 고고학과 인류학의 최신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새로 쓴 중국사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기록된 3대(夏, 殷, 周)에 대하여 근대에 들어와 하(夏)는 물론 은(殷)까지도 실재한 나라가 아니라 전설상의 나라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20세기 초 은허(殷墟)가 발굴됨으로써 은(殷)의 실재에 대하여는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은허의 발굴 이후 고고학과 인류학의 연구 성과에 의하여 중국 고대사는 상전벽해라고 할 정도로 그 면모를 일신했다. 

이 책에서 비중 있게 다루는 이리두 문화(二里頭文化)는 하(夏)왕조와 시기 및 장소가 겹치기 때문에 하왕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최근에는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하왕조가 실재하는 나라였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또한 인류학의 인간 게놈(human genome) 연구에 의하면 한족(漢族)의 주류는 남방에서 북방으로 이동하였으며, 여기에 서쪽으로부터 동유럽계의 유입도 있었다고 한다.

이 책에 의하면 역사를 서술하는 데 세 가지 층차가 있다고 한다. 첫째, 정치사처럼 10년·50년을 단위로 하여 변화해 가는 층차가 있다. 둘째, 500년·1000년의 단위로 관찰하지 않으면 변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의식주 및 그 생산의 층차, 환언하자면 사회의 생활권의 층차가 있다. 1000년 단위는 파악하기 어려운 장기간에 걸친 변화이다. 셋째, 정치 과정과 생활권의 중간에는 100년 단위로 변화해 가는 정치 및 사회의 조직·제도의 층차가 있다. 역사는 이 세 가지 층차의 상호 작용을 통해 변화한다. 이 책은 그중에서 기초가 되는 사회 생활권과 정치·사회의 조직을 중심으로 서술을 전개한다. 다시 말해 시간적·공간적인 변화의 모습 속에서 중국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1959년에 하남성의 이리두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이로써 기원전 1800년경부터 1500년경까지 뒷날 중국의 중원이 되는 지역에 이리두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이 이리두 문화로부터 청동기 문명이 시작되었다. 또 이리두 유적에서는 1만 제곱미터 규모의 궁전터도 발굴되었으며, 그 뜰에는 1000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리두 문화를 형성했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하(夏) 또는 하인(夏人)으로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이리두 문화 유형에 속하는 하남성 서부는 후세의 문헌에서 ‘유하지거(有夏之居)’라고 불렸다. 이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이리두 문화는 하왕조와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최근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의 학자 중에서도 이리두 문화에 근거해 하왕조의 실재를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중국의 당나라가 균전제, 조용조제, 부병제를 시행하였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국 사학계의 통설로 되어왔다. 이 책은 이러한 통설을 당대(唐代)의 사료에 입각해 재검토한다. 예컨대 당대(唐代) 사료에는 균전제라는 용어도 조용조제라는 용어도 나오지 않는다. 저자에 의하면 당나라의 균전 조용조제라는 용어는 북송 사마광의 『자치통감』에 최초로 나온다. 저자는 지금까지의 균전제와 조용조제에 대한 이해를 수정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또 구양수(歐陽脩)가 집필한 『당서(唐書)』 ‘병지(兵志)’ 간행 이래로 약 1000년 동안 당나라의 군제는 부병제뿐이며 부병이 위사·방인·행군 등 모든 군역을 담당했던 것으로 오해되어 왔지만, 이제는 과거 약 1000년 동안 계속되었던 오해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때라고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