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사태 속의 인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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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속의 인간시장
  • 지규용 동의대학교·한의학
  • 승인 2020.03.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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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림방담(杏林放談)]

목하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는 국가 전체가 심각 단계, 대구와 인근지역은 감염병 특별관리지역으로 선포된 상태이며, 세계적으로도 감염자가 10만 명이 넘었다. 세계화가 일상이 된 세상에서 이번 사태는 여러 가지 시사점과 과제를 던져 준다. 아직 진행 중이지만 하루속히 종식되어 모든 나라가 다시 평화로운 일상으로 복귀하기를 바라면서 몇 장면을 돌아본다.

▲ 충북 진천 주민들이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퇴소하는 우한교민의 배웅하고 있다.
▲ 충북 진천 주민들이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에서 퇴소하는 우한교민의 배웅하고 있다.

# 1. 진천 시민들의 우한 교민 환송

정부가 1월 말 우한 교민들을 국내에 수용할 장소를 물색하던 초기에는 후보지 선정 및 발표과정에서 대상 지역 주민들과의 마찰이 생기면서 잠시 님비현상이니 하는 비난도 잠시 일었었다. 하지만 대화가 지속되면서 결정과정의 불가피성을 이해하고, 막상 교민들이 공항에 도착하자 주민들은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도움을 제공하며 격리기간이 끝난 후에는 아름다운 환송 장면을 연출하였다. 이런 극적인 변화는 여러 가지 분석이 있겠지만, 혹시라도 상정할 수 있는 감염의 위험성과 관 주도의 일방적 지정이라는 부정적 요인보다는 같은 국민이고 이웃이라는 연대의식과 어려움에 처한 타인의 상황에 대한 적극적인 공감이 분명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런 작은 덜컹거림은 반드시 지나야 하는 과정이고, 도리어 없다면 나중에 문제가 더 커질 수 있다. 어려움 속에 빛난 우리 사회의 관용과 성숙함이다.

# 2. 감염 의심 크루즈선의 캄보디아 입항

캄보디아 훈센 총리는 2월 13일 2천 257명이 탑승한 대형 크루즈 웨스테르담호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의심되는 20명에 대해서만 선별검사를 한 뒤 14일 전원 하선시켰다. 그 배는 자국 영토인 괌 포함, 다섯 나라에서 입항이 거부되었던 상태라 선내의 불안과 동요는 매우 컸을 터였다. 35년을 독재와 탄압으로 일관한 통치자가 갑자기 인도주의를 내세우며 마스크 없이 맨손으로 악수하는 쇼를 선보였지만, 말레이시아에서 코로나바이러스로 확진되자 바로 하선을 중단시켰다. 마치 자기 것인 양 국민들의 불안과 불만을 대수롭지 않게 희생하며 정치적으로 남발하는 불순한 관용을 누군들 모를까? 그렇지만 적어도 국제적 외면 속에 고통스런 날들을 보낸 사람들에겐 절실한 구세주가 아니었을까?

▲ 지난 2월 14일 캄보디아 보건당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 하선을 허가했다. 이데 미국 크루즈선 웨스테르담호의 승객들이 배에서 내리고 있다.
▲ 지난 2월 14일 캄보디아 보건당국은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 하선을 허가했다. 이데 미국 크루즈선 웨스테르담호의 승객들이 배에서 내리고 있다.

# 3. 교통, 공해와 미세먼지 감소

이곳 부산에서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은 다른 때와 사뭇 다르다. 우선 교통량이 현저히 줄어 정체가 없고 갑작스런 새치기나 차선 넘나들기 같은 난폭운전도 없어 매우 편안하다. 게다가 하늘이 이렇게 맑았던 적이 있나 싶을 만큼 금정산에서 광안대교가 잘 보인다. 이런 모습이 중국의 하늘에서도 나타났다고 하는데 비단 두 나라에서만은 아닐 것이다. 매일같이 숨 가쁘게 시달리던 지구가 인간의 공포에 싸인 ‘얼음땡’ 중에 드러내 보이는 한순간의 본모습인 듯하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동물들이 서식하는 자연계 질서의 교란에 대한 숱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번창하던 인간 세상의 전쟁사업과 공장 굴뚝, 또는 권력과 재화를 둘러싼 온갖 시장(市場)과 폭력성들이, 바이러스가 한번 풍미하자 일시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는 아이러니에서 보이지 않는 힘과 인간의 초라함을 본다.

# 4. 밤낮이 전도된 신천지 현상

이번에 전국적인 확산과 지역사회 감염의 기폭제가 된 신천지교회는 매우 특이한 점이 있다. 철저하게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암약하듯 포교하며 정부의 역학조사 과정에서도 신분과 행선지와 조직규모 등을 대부분 숨겼다고 한다. 그런데 보통 정상적인 사회에 사는 건강한 사람은 아침에 활동하고 밤에 잠을 잔다. 이것이 자연적인 삶의 방식이고 생리적인 리듬이기 때문에, 사회적 필요에 의해 이런 리듬과 상반되게 사는 사람은 이 교란을 보상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한의학에서는 이처럼 정상기능과 반대되는(反常) 현상을 죽음이 가까워지는 노화의 증거로 본다. 그럴진대, 신천지교인들이 보였던 지극히 비정상적인 행동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있을 수밖에 없는 생활방식의 본질적 문제점을 명백하게 드러낸 바이러스의 반전 성과이다. 신천지교회에 의한 사건, 나아가 모략적 공감 전도에 취약해진 신천지 현상을 검찰은 과연 어떻게 처리하고 사회는 어떻게 교정할지…

# 5. 바이러스를 둘러싼 지식권력의 민낯

지난달 24일 의사협회는 대통령의 바이러스 현안을 오판하게 하여 방역실패로 이끈 비선 인사들이 있다며 기존의 감염병학회 전문가들로 구성된 범학계코로나대책위원회(범대위)를 비난하고 이달 3일 의학회, 의학한림원, 전 질병관리본부장 2인, 미래통합당 등의 의·정연합체를 구성했다. 그러자 범대위는 해체하면서 무력하나마 의협을 고발하는 청와대 청원으로 맞섰다. 기능의학 분야 의사들이 코로나바이러스 예방법으로 제안한 비타민C 요법에 대해 수많은 언론매체가 비과학과 근거 없음으로 융단폭격을 가한 것은 또 어째서일까?

한편 정부의 코로나 사태 특별기구인 국무총리 산하 중앙방역대책본부의 의료봉사 요청으로 모집된 2월 25일 50명, 3월 1일과 3일 99명의 한의사들은 복지부에 신청서를 냈지만 세 차례 모두 복지부 산하 중앙사고수습본부에서 거부하였다. 감염병예방법에 한의사는 감염병 환자를 신고할 의무가 있고, 다른 선별진료소에서 이미 채취하고 있는데다, 미국은 환자들이 자가채취하는 판에, 이유는 채취에 법적 논란이 있어서란다. 의협은 “한방치료는 바이러스 모르던 시절 쓰인 치료법”이라더니, 급기야 대구한의대진료소에서 생활센터로 배송하는 무료한약까지 반송시키며 시에 금지시키라 압박한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 * 지난달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자유한국당(現 미래통합당)·대한의사협회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 * 지난달 5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대응 자유한국당(現 미래통합당)·대한의사협회 긴급 간담회를 열었다.

신학마저 과학의 그늘에 서는 21세기 대명천지에 과학의 논리를 벗어나는 의학이 가당키나 한가? 한의학도 비켜갈 수 없어서 고전이론은 현대학문과 비교하여 재해석되며, SCI가 아니면 논문대우를 못 받는다. 바이러스에 정치색을 입혀 입국 금지와 1년도 더 걸릴 백신이 해결책이고, 바이러스는 치료법이 없다면서 안팎의 타자를 찍어내는 의료패권자의 당당함에 경악할 뿐이다. 바이러스나 세균은 우리 몸의 어느 곳에나 있고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생존은 특정 환경에 최적화되어 있어 지역에 따라 감염병의 종류도 다르다. 한의학은 3세기 초에 체내외 환경의 부적응이 만드는 병리와 처방을, 17세기 중엽엔 코와 입으로 들어오는 여기(戾氣, 전염체)가 일으키는 역병의 병리와 처방을 밝혔으며, 지금은 잠복기 예방법부터 중증기까지의 진료지침이 있고, 중국에선 양방과의 협진 경험이 누적되어 임상효과가 더욱 향상되고 있다. 한의학이 인식의 패러다임은 다르지만, 여기특성에다 환자의 건강상태와 체질 및 기후와 거주환경을 고려함으로써 의학에서의 바이러스 변이나 숙주-병원체 이론의 핵심을 이미 담고 있다. 건강인과 기저 질환자나 노약자의 예후가 다른 이유를 밝히다 보면 결국 같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여러 장면들처럼, 바이러스 사태는 이 사회에 다양한 메시지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진천, 제주, 군산, 대구 등에서 이어지는 봉사활동과 공동모금은 약해져 가는 공동체의 가치를 재확인시켰고, 불순한 관용은 오직 선과 악을 더욱 선명하게 할 뿐이며, 자연은 바이러스를 무기로 가이아를 어루만지기도 한다. 또한 이유 없는 호의에는 대가(代價)가 있음(quid pro quo)을 헤아려 비록 힘들더라도 삶의 방식을 투명하게 하고, 국가적 재난이라는 위급한 사태에 직면하여 세력을 확장하기보다는 나와 다른 생각일수록 서로 연대하고 보완하면서 난국을 함께 타개해야 한다.

금권을 두고 희비와 선악이 요동하는 인간들의 트램펄린 시장에서 모두가 잠시 멈춰선 이때, 주변의 나와 다른 타자에게 공감하고 관용하며, 그 힘으로 함께 도약하여 바이러스 해일을 무사히 건너가길 희망한다.


지규용 동의대학교·한의학

경희대학교 한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세명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로 있다. 대한동의병리학회 회장, 동의대학교 한의학연구소장과 한방바이오연구센터 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관심사는 한의학이 예전에 누렸던 정상과학의 지위를 되찾기 위한 정지(整地) 작업과 한의학 이론의 일반화다. 저서와 역서로는 『격치고역해』, 『새로운 한의학 터닦기』, 『상한론정해』, 『현대상한론』, 『한방병리학』, 『동양철학과 한의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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