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 질적 위기, 우수인재 의학계열 선호 현상 가속화 시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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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계 질적 위기, 우수인재 의학계열 선호 현상 가속화 시켜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4.0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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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리포트] 과학기술정책 Brief Vol. 7

 

최근 입시에서 고교 성적 우수학생의 의학계열 선호와 이공계 기피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소위 ‘의치한약수’로 불리는 의학계열 쏠림이 더욱 두드러지고 반도체, AI 등 미래유망기술로 평가되거나 대기업 채용이 연계된 학과에서도 1차 합격자 다수가 등록을 포기하고 의학계열로 진학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자연계의 전체 등록 포기율은 33.0%에 달하며, 대부분 의학계열을 선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지난 5년간 국내 최고 연구중심대학인 4대 과기원과 포스텍 학생 중 자퇴생은 1,105명에 달하며 마찬가지로 대부분 의학계열로 진학한 것으로 역시 추정되고 있다.

고교 성적 우수학생의 의학계열 선호와 이공계 진로에서의 이탈은 2000년대 초반에도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어 「국가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이공계지원 특별법」 제정(2004)과 「과학기술인재 육성․ 지원 기본계획」의 수립(2006)으로 이어진 바 있다.

이에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이하 과기정책연 STEPI)은 다시 점화된 우수인재의 이공계 기피 현상에 대해 지난 20년간 과학기술인재정책의 한계를 살펴보고 의학계열 선호 현상 및 근본 원인에 대한 고찰과 이에 따른 대응방안을 제시한 「과학기술정책 Brief」 Vol.7을 4월 3일 발간했다.

보고서는 이공계 기피 현상의 재현은 지난 20년간 과학기술인재정책의 한계를 보여주는 결과로 의학계열 선호 현상의 본질과 근본 원인에 대한 고찰과 대응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시사점으로 첫째, 의학계열 선호는 일정 부분 인정할 필요가 있으며 이공계 위기는 양이 아닌 질적 문제이며, 둘째, 과학기술인재에게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 있고, 셋째, 최우수인재에 대해 과학기술 경력의 안정성과 역동성 제고를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보고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2000년대 초반의 이공계 기피 논의

당시 이공계 위기는 “이공계 인력의 질적 하락”과 “우수인력의 이공계 기피”로 요약된다. 

2000년대 초반 이공계 기피의 결과로 ▲이공계 지원 감소 ▲이공계 학생 수준 저하 ▲기존 이공계 인력의 이탈 ▲이공계 인력 역량의 사회적 수요와의 불일치 등이 문제가 제기되었고 가장 큰 원인으로는 ▲이공계 인력의 사회 경제적 지위 하락이 지적되었으나 각각의 주장에 대한 명확한 근거는 검증된 바 없다.

실제 자연계열 지원자 감소는 없었고 이공계 학생의 전반적인 수준이 저하하였거나 이공계 인력의 객관적인 사회적 지위 하락을 보여주는 결과도 없었으며, 국가적 위기였던 IMF를 전후로 이공계 인력의 직장 유지율이 하락하였음은 일부 확인되었으나 타 분야 대비 상대적인 경제적 지위 하락의 근거는 찾지 못하였다.

다만, IMF 위기 이후 이공계 경력의 불안정성, 경제체제의 전환으로 인한 공공부문 노동시장(교수, 정출연 연구자 등) 축소 등 이공계 현실의 위기에 대한 인식이 고교 성적 최우수학생의 의학계열 진학, 이공계 대학과 대학원 과정에서의 이탈 등으로 이어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이것이 이공계 전반의 위기로 확대 해석됐다.


□ 이공계는 정말 위기인가?

초기 과학기술인재정책은 청소년 단계의 과학교육 정책과 과학기술자 사기진작 대책으로 구성되며 기본방향은 “이공계 인력에 대한 지위와 처우 개선을 통해 우수인력을 유도”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런데 인문·사회계열 노동시장의 악화가 더욱 두드러지면서 고교 이공계 지원, 대학의 이공계 비중 등은 확대됐으며, 이공계 석박사 배출, 과학기술인력 규모 등 양적인 측면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이공계 박사의 공급 과잉과 이로 인한 노동시장 악화가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지역 대학과 중소형 대학 이공계 대학원도 양적 규모는 큰 변화가 없으며, 질적 하락은 이미 10년 전부터 
지적되고 있으나, 이는 대졸 이후 취업 선호, 상위권 대학원으로의 연쇄적 이탈 등이 주된 원인이며, 학령인구 대비 이공계 대학생 비중은 1999년 13.6%에서 2021년 18.6%까지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고교 성적 우수학생의 의학계열 선호는 확대되고 있으나 영재고와 과학고의 효과를 고려할 때 우수인재의 의학계열 쏠림은 다소 과장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과학고와 영재고 입학생은 중등 단계에서 의학계열 진학생과 비교해도 최상위 인재이며 학교 정원은 2022년 기준 각각 1,638명과 669명으로 경쟁률도 3.5 대 1과 6.21 대 1로 높은 상황이다. 과학고·영재고에서 의대로 진학하는 학생의 비중은 자퇴, 전학, 재수, 대학 입학 후 재수 등 측정 기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으나 입시 단계에서는 약 10% 수준으로 대부분 학생은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하고 있다. 또한, 수시에서 최대 6개, 정시에서 3개의 학과를 지원할 수 있는 현재 입시 체제에서 최초합격자의 등록 포기가 마치 이공계 학과 미달로 비춰지는 것은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 의학계열 선호와 이공계 위기의 근본 원인

의학계열 선호의 원인은 대부분의 언론 기사에서도 지적하듯이 이공계 대비 직업 안정성과 고소득에 있으며 이는 자연스러운 사회경제적 변화를 반영한다.

우수인재의 이공계 이탈 혹은 의학계열 선호는 대학-대학원-포닥을 거쳐 교수/연구원으로 이어지는 과거의 선형적 경력개발 경로가 깨어지고 경력개발(취업) 확률이 크게 낮아진 것에 기인한다. 이공계 박사 배출 대비 박사급 과학기술인력 일자리 증가 규모는 90년대 약 2.6배에 달했으나 2005~2010년경에는 약 0.7로 하락했고 현재는 약 50%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의학계열의 경우 대학에만 입학하면 큰 문제가 없는 한 안정적 일자리와 고소득으로 이어진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이공계 노동시장 악화가 의학계열 일자리의 안정성 및 고소득과 비교되면서 고교 성적 우수학생의 의학계열 진학 추세는 점점 더 강화되는 상황이며, 수능성적을 기준으로 할 때 소위 ‘의-치-한-약-수-서울대’의 순서는 점점 더 두드러지는 경향이다.

 

□ 시사점

ㅇ 의학계열 선호는 일정 부분 인정할 필요가 있으며 이공계 위기는 양이 아닌 질적 문제이다. 

• 이공계 위기의 본질은 이공계 인력이 아닌 “이공계 인력이 되고자하는 인력”의 위기이며, 인재 확보의 위기는 전체 과학기술인력이 아닌 최상위 인력의 문제이다.
• 2000년대 초반과는 달리 과학고·영재고를 통한 우수인재의 유입 효과를 고려할 때 현재의 의대 쏠림은 다소 과장된 사회적 우려이다.

ㅇ 과학기술인재에게는 오히려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 현재의 과학기술 투자와 과학기술인력 규모가 유지되는 가운데 배출인력이 줄어든다면 노동시장 여건은 개선될 수 있으며 이는 정보전달 시차를 거쳐 인재의 이공계 유입을 유도할 것이다.
• 과학기술인재 확보의 더 큰 위험은 의학계열 선호가 아니라 급속한 인구감소에 있다.
• 과학기술인력 노동시장은 본질적으로 정보 전달의 시차가 존재하여 정부의 과도한 개입(정원 조정 등)은 항상 부정적인 효과가 더 컸음을 주지할 필요가 있으며 과학기술인력에도 “시장의 원리”가 작동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ㅇ 과학기술 경력의 안정성과 역동성 제고가 필요하다.

• 적어도 최우수인재에 대해서는 경력개발의 안정성과 역동성을 확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 우수학생의 이공계 유입 촉진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고 바람직하지도 않으며, 이공계를 선택한 인재에 대한 교육의 질 제고와 함께 최상위 인재의 경력 경로를 더욱 안정적으로 제공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 이공계 석박사 노동시장이 개선되지 않는 것은 우리 기업 R&D 생태계가 극히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작동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중소·중견기업의 혁신역량 제고와 이를 통한 양질의 일자리 확보가 우선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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