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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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위기
  • 고현석 기자
  • 승인 2023.04.02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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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린연단 〈자유와 이성〉 제43강_ 전재성 서울대 교수의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위기」


네이버문화재단의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아홉 번째 시리즈 ‘자유와 이성’ 강연이 매주 토요일 서울의 네이버 스퀘어 종로에서 진행되고 있다. 자유는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자기실현의 원리라고 할 수 있으며, 그간 인류가 걸어온 길은 자유 실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섯 섹션 총 46강으로 구성된 이번 시리즈는 고전 시대로부터 근대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자유 담론을 검토함으로써, 자유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확장하고 미래 사회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열어보고자 기획됐다. 인류의 자유와 공존을 위해 요구되는 국제 질서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그 미래를 전망해보는 여섯 번째 섹션 ‘자유와 공존을 향한 국제질서’ 제43강 전재성 교수(서울대 정치외교학부)의 강연을 발췌 소개한다.

정리   고현석 기자
사진·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의 위기


전재성 교수는 우선 “국제 정치에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란 무엇인가”를 물은 뒤,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뒷받침하는” 국제 정치 이론과 “패러다임에서 가장 핵심적”이라 할 “현실주의와 자유주의의 대립”을 짚는다. 그러면서 “자유주의 국제 정치 이론가들”이 세 가지의 기제 “즉 시장의 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행동 원칙, 그리고 국가 간에 합의하는 다자주의의 요소”를 논의해왔음을 이야기한다. 이어서 그 같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흐름으로서 “탈냉전기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정점과 쇠락”,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현재와 미국의 부활 노력”을 살펴보고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약화된 원인과 “미래 국제 질서”를 규정할 요소들을 돌아본다. 그리고 “이상의 논의를 바탕으로” 해서 “과연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향후 새로운 형태로 생존하고 확립될 것인가”를 질문하며 “자유주의 정치 지형의 보편성과 철학적 가치에 대한 재확인”과 함께 “일국 패권 불가능의 시대가 된 현재,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이끌어갈 수 있는 국가 간의 연대” 등이 필요해 보인다고 답한다. 

 

지난 3월 11일, 전재성 교수가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 자유와 이성>의 43번째 강연자로 나섰다. 사진제공=네이버문화재단

1. 들어가며

21세기 들어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전반적으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과연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핵심, 그리고 본질은 무엇이며, 앞으로 국제 질서는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인가.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성격과 역사를 통해 현재 국제 질서의 상황 및 국제 질서의 향방, 그리고 한국이 처해 있는 외교의 상황 등을 살펴본다. 

2. 국제 정치에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란 무엇인가

지금의 지구 거버넌스는 17세기경 유럽에서 기원한 근대 주권 국가 질서이다. 주권 국가 질서란 국가가 주권을 소유하며 여기서 주권이란 대내적으로 최고의 권위일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 독립적 권위이기 때문에 다른 어느 국가나 조직의 권위에도 복속되지 않음을 의미한다. 모든 국가가 최상위의 독립적 권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들의 행동을 규율할 수 있는 국가 상위의 어떠한 원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국가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은 국제법적으로 위반이라고 규정되어 있고 타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행위는 불법적인 것으로 규정되었다. 근대 주권 국가 질서하에서 주권 국가의 자유는 매우 중요한 기본적 규범으로 19세기 실증주의 국제법의 시대를 지나면서 이러한 국제법 규범은 좀 더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나 국제 정치의 실제적 힘은 언제나 국제법보다 더 근본적이고 파괴적인 영향을 미쳤다.

 

3.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뒷받침하는 어떠한 국제 정치 이론이 있는가

1)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현실주의 국제 정치 이론은 국제 정치란 최고의 배타적 권위를 가진 주권 국가 간의 관계이기 때문에 이들 간의 관계를 규정하는 요소가 권력과 이익뿐이라고 본다. 국가가 가장 중요한 행위자이며 국가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합리적으로 행위하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국가 상위의 규범에 복속시키는 것을 거부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가의 생존과 이익 이외의 규범은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는 개인의 자유나 인권도 제한되는 것이 국제 정치의 결정 요인이 될 수 있다. 국제 정치는 전쟁과 외교, 즉 국가 이익을 둘러싼 군사적 충돌이나 상호 교섭에 의해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서 강대국 간의 관계가 국제 정치 전반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힘이 된다. 약소국들은 비록 국제법적 주권은 평등하더라도 자유를 누릴 수는 없다. 강대국들의 힘이 약소국들의 행동 범위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2) 시장에 기초한 자유주의 국제 질서 이론

이에 반해 자유주의 국제 정치 이론은 국가 간 관계를 규정하는 다른 요인들이 있다고 주장한다. 현실주의가 최소한으로 용인한 국가 주권의 원칙이 중요하다는 점에서 자유주의도 동의한다. 주권의 신성함, 그리고 주권의 자유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핵심을 이룬다. 그러나 국제 정치를 규정하는 힘이 반드시 국가의 권력과 이익 추구 행위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 국제 정치 이론가들은 세 가지의 기제에 대해 논의한다. 즉 시장의 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행동 원칙, 그리고 국가 간에 합의하는 다자주의의 요소들이다.

우선 시장의 힘을 보면 국가 간 경제적 상호작용은 언제나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비록 국가들이 국가 차원의 이익을 위해 시장에 강하게 개입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경제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을 온전히 규제하지는 못한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본질은 경제 행위자들이 국가들의 정치적 행동과 무관하게 시장의 논리에 따라 이동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는 것이다.

국가들이 완전한 자유시장 경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자국의 거시경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정책을 유지해가면서 가능한 한 시장 논리를 준수하려 했다. 이를 내장된 자유주의(embedded liberalism)라고 부르기도 한다. 

 

3) 민주주의에 기초한 자유주의 국제 질서 이론

자유주의 정치 이론가들은 민주주의 국가 간에는 외교 정책 수립 과정에서 국민들의 의견이 매우 강하게 반영되고 민주주의 국가 간 이익 조정 과정 역시 국내 정치 과정과 유사하게 타협과 대화에 기초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정체성의 측면에서도 자유주의 정치 체제 속 국민들과 정책 결정자들은 정책을 결정할 때 협상과 타협이라는 수단에 의존하는 정치 문화를 체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익과 정치 행태에 관한 것이 아니라 가치와 규범, 정체성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효과가 지속되고 중요한 변수라고 지적된다. 자유주의 이념과 가치를 체현하는 민주주의 국가들이 더욱 많아질수록 보다 평화로운 국제 질서가 가능하다고 추론할 수 있다. 본질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가진 국가 간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구축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국제 정치 이론가들은 민주 평화론을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강력한 축으로 생각하고 있다.

4) 다자주의 국제 제도에 기초한 자유주의 국제 질서 이론

자유주의 국제 정치 이론가들이 논의하는 국제 질서의 중요한 세 번째 축은 바로 다자주의라는 현상이다. 현실주의 이론가들은 국가들이 자신의 이익을 증진하고 권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가 간의 약속을 중시하지 않고 그때그때 서로 다른 행동을 한다고 본다. 반면 자유주의 이론가들은 국가들이 이익을 위해 교섭하고 향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단기적 이익이 아닌 장기적인 행동의 규범과 원칙, 그리고 규칙을 수립하고 이를 준수하는 관계로 발전한다고 본다. 이러한 협력의 반복성은 비단 양자 관계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고 여러 국가가 함께하는 다자 관계에서도 나타나게 된다. 즉 다자주의 국제 제도가 성립하는 것이다.

일단 다자주의 국제 제도가 성립하게 되면 거래 비용이 감소하고 신뢰가 증진되며 장기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명확해지기 때문에, 국가들은 특정 규범에 종속되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자주의를 존중하게 된다는 것이다. 

 

4.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흐름과 위기

1) 탈냉전기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정점과 쇠락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온전히 정착된 것은 냉전이 종식되고 미국 주도의 단극 패권 체제가 수립하는 1990년대부터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냉전기에 존재한 동맹국들을 여전히 유지했고 군사적 패권을 지탱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구했다. 경제적으로 막강한 힘을 보유한 미국은 자국 중심의 다자주의 제도들을 확장해나갔고, 더 나아가 민주주의 정치 체제의 확장이라는 기치 아래 다른 지역과 국가에 대한 개입도 더욱 확대했다.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와 같은 현실주의자들은 자유주의라는 이념이 국제 질서의 가장 기본적인 규범이 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본다. 국가들이 자국의 이익과 정체성을 중시하는 민족주의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자유주의가 내생적 이념이 아니라 다른 강대국의 개입 수단이 될 때 강하게 저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저항은 미국의 국가 이익을 훼손할 뿐 아니라 결국 미국 내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쳐 미국의 자유주의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을 제시한다. 

실제로 미국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기획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결정적인 파국을 맞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국가 이익을 위해 그간 미국이 추진해온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기획을 약화, 또는 포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보았다. 취임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에 미국이 추진해온 민주주의 국가 간의 협력 다자주의 제도의 확산과 같은 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는 조치들을 취한 것이다.

2)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현재와 미국의 부활 노력

2020년 선거에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부활을 내걸며 당선한 조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 시기의 미국 외교 정책을 역전시키는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 간 연대를 중시하여 전통적인 동맹국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양자 간 안보 동맹을 보다 다층화하는 기존의 미국 외교 대전략으로 회귀한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기반을 이루는 다자주의와 민주주의 연대라는 두 축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제 부문에서 바이든 정부는 트럼프 정부가 추구했던 미국 이익 우선주의, 그리고 비자유주의적 대외 경제 정책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이 새로운 것은 물론 아니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고 패권 국가는 시장의 실패, 안보 상황의 악화, 다자주의의 근본적 붕괴를 막기 위해 국제적 공공재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온 것이다. 주기적으로 약화되는 패권의 힘을 고려해볼 때 미국은 일방주의 정책에 의해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자유주의 질서를 재건해왔다. 

 

3) 자유주의 국제 질서 약화의 원인들

현재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위기에 봉착한 원인을 분석해보면 다음의 요인들을 지적해볼 수 있다. 첫째, 미국의 국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미국은 국력 약화 속에서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유지할 동인을 점차 상실해왔다. 만약 미국의 리더십이 쇠퇴하는 동안 대안적 리더십이 마련되지 못한다면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다른 질서와 공존하면서 경쟁할 수도 있고, 또는 비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에 의해 패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두 번째 원인으로 대안적 국제 질서의 등장을 들 수 있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중국은 미국식 자본주의 모델을 강하게 비판하고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 질서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국제 질서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대한 대안적 질서의 제시는 많은 3세계 국가들에 의해서도 이루어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향후의 국제 질서는 강대국들 간 힘의 경쟁일 뿐 아니라 다양한 질서들 간의 경쟁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단순한 다극 국제 질서가 아니라 다 질서 국제 질서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대두된다.

세 번째 원인으로는 지구화의 문제점을 들 수 있다. 기술의 발전과 정체성의 형성 등을 고려해볼 때 지구화는 개별 국가들의 정책에 의해서 되돌이키기는 어려운 거시적이고 불가역적인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지구화가 기존의 국제 질서와 상충하는 부분을 창출하기 때문에 다양한 단계를 거쳐 발전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구화가 진행되면서 개별 국가들이 이를 통제할 수 있는 통제력을 상실한 것도 중요한 문제이다. 높은 수준의 지구화와 국가 주권, 그리고 국내 민주주의 간에는 화해하기 어려운 삼중 딜레마(trilemma)가 작동한다. 국가가 주권적 통제력을 회복하지 못할 경우, 국민들은 국가에 대한 불신에 기초하여 포퓰리즘과 같은 새로운 정치 과정에 호소하게 되거나, 또는 권위주의가 부활하여 민주주의가 약화되는 문제점을 낳게 된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약화하는 네 번째 원인은 초국가적 위협이다. 문제는 여러 분야의 초국가적 위협을 관리할 수 있는 다자주의 규범 질서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각자 자국의 이익에 맞는 규칙과 규범의 내용을 정하기를 원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어긋나는 다수의 규범이 경쟁적으로 자리 잡을 확률이 높다. 규범의 충돌은 결국 국가 간의 물리적 충돌로 이어질 수 있고 이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근본적 약화를 의미하게 될 것이다. 

 

4) 미래 국제 질서는 어떠한 요소들에 의해 규정될 것인가

그렇다면 향후 국제 질서의 방향은 어떠한가. 복합 위기에 봉착한 세계 질서를 자유주의 이념에 맞게 재건하는 것이 가능한가. 

첫째, 향후 국제 질서가 미중 전략 경쟁에 의해 규정될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기존의 패권 경쟁을 답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국제 질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공공재를 어느 한 국가가 독점적으로 제공하기는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지금 국제 질서를 논할 때 양극, 다극 혹은 무극과 같은 극(pole) 개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향후의 국제 정치는 소수의 강대국이 힘을 독점할 수 있는 구조가 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소수의 국가가 극을 이루어 국제 정치를 운용하기보다는 집단적인 거버넌스 체제를 이룩할 확률이 높다. 

셋째, 초국가적 위협은 인류 공멸의 위험이기 때문에 국가 간 이익 경쟁이 이루어져도 결국 협력을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타 선진국들, 그리고 한국과 같은 중견국들의 목소리는 더욱 중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넷째, 주권 국가뿐 아니라 비국가 행위자들의 영향력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미 지구화의 흐름 속에서 국가의 권위는 약화하였고 국제 기구나 국제 제도, 기업, 초국적 시민사회, 국제 여론 그리고 개인 등 비국가 행위자의 역할이 매우 강화되었다. 한국의 경우 국가 차원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다양한 비국가 행위자들 즉 기업과 시민사회 등 여러 행위자의 담론을 개발하고 취합하며, 국가가 이를 채널링하는 노력이 점차 더 중요하게 될 것이다.

 

5.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어떠한 모습으로 재탄생해야 하는가

과연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향후 새로운 형태로 생존하고 확립될 것인가. 앞으로도 자유주의 정치 이념은 국제 정치 차원에서 다양한 이념들과 결합하여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자유주의가 주창하는 자유와 인권 등 주요 개념이 보편적인 역사의 법칙으로 상정된다면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다양한 변화와 고난을 겪더라도 지속적인 국제 질서의 이념으로 남을 수 있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보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정치 지형의 보편성과 철학적 가치에 대한 재확인이 지속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둘째,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질서의 오작동을 막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지도국을 필요로 해왔다. 그러나 일국 패권 불가능의 시대가 된 현재,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이끌어갈 수 있는 국가 간의 연대가 필요한 것이다. 과연 어떤 형태의 연대를 만들어갈지 연대 내 리더십은 어떻게 구성될지 등이 향후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당면하게 될 중요한 사안들이다. 

셋째, 향후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자유민주주의 국가뿐 아니라 권위주의 국가, 혹은 독재 국가들까지 허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있다. 그러나 아직 명확한 판단이 어려운 현시점에서, 비민주주의 국가를 포괄하는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만들어갈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요 강대국 모두를 포함한 다자주의적 거버넌스의 확립 등이 필요할 것이다. 

넷째,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지구화의 시대를 겪고 나서 각 국가의 대응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지난 30년간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제기한 국가들 내부의 불평등 심화, 지구화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주권 국가들의 권능 약화, 특히 약소국들의 대응력 약화는 국민의 불만과 분노를 자아냈다. 향후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완전히 확립되기 위해서는 자유주의 지구화를 조정할 수 있는 메커니즘과 국가들의 내부력 향상 등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국가들만의 합의와 교섭으로는 불가능하고 다양한 기구가 행위자들의 이익과 주장을 반영하여야 할 것이다. 국제 기구, 사회 집단, 기업, 언론, 개인, 전문가 집단 등 이해상관자들이 더욱 증가했기 때문이다. 초국가 위협의 심화로 국가의 권능이 악화하고 다양한 행위자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는 상황 속에서 다층적인 거버넌스의 중요성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이상과 같이 미래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는 국제 정치 장의 변화와 더불어 많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이념은 인간에게 보편적인 가치로 확립됐고 앞으로도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거버넌스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이와 더불어 자유라는 개념, 인권의 가치 또한 재정의되고 과거와 같이 서구 중심적이 아니라 다문화적인 과정 속에서 재확립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역시 신흥 선진국으로서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강조하고 있고 이러한 가치에 기반한 외교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비서구 국가로서 자유민주주의의 놀라운 발전을 이룩한 한국이 한국 자유주의 국제 질서의 진화에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보다 적극적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강연 바로보기: [열린연단]_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위기 (전재성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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