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 힘들어도, 정신은 깨어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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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 힘들어도, 정신은 깨어있자!
  •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 승인 2023.03.27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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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찬 칼럼]

최근 들어 챗GPT를 비롯한 인공지능(AI) 기반 챗봇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4차 산업혁명, 디지털 전환이라는 흐름에서 인간을 뛰어넘을 것으로 예견되는 AI 관련 아이템들이 빠른 속도로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지난 3월 19일에는 유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전 세계 과학자 1천여 명이 만들어낸 제6차 종합보고서를 발표했다. 앞으로 10년 안에 탄소 감축을 위해 즉각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경우 기후재난, 팬데믹, 식량난, 동식물 멸종 등 여러 재앙을 막을 길이 없다고 경고하였다. 

이러한 대전환의 시대에 대학은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유럽대학들의 움직임을 소개한다. 2021년 2월 유럽대학연합(EUA)은 기후위기, 기술발전, 지정학적 긴장, 인구변화, 팬데믹 등에 따른 지구촌 인류에 대한 각종 도전에 대학들이 연합하여 대응해나가야 함을 천명하였다. 이를 실천해나가기 위해 유럽대학들은 구체적인 방향과 방안을 담은 보고서 ‘비전 2030(A vision for 2030)’을 발표하였으며, 대학이 사회 변화의 엔진으로서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유럽대학들은 이 보고서에서 대학이 그 사명을 실천해나감에 있어 ‘지속가능발전’을 중심 틀로 잡았으며, UN 지속가능발전 목표(UN SDGs)를 포괄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대학에서의 교수, 학습 과정도 ’지속가능발전‘에 요구되는 기량과 지식의 제공을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함을 요구하고 있다. 연구와 혁신에 대한 대학의 사명도 이러한 방향과 연계시키고 있다. 더 나아가 대학들은 유럽을 개방적이고 다원적이며 민주적인 사회로 지켜가는 일에도 지속적으로 적극 참여하고자 한다. 

2022년 7월 유럽대학들은 40여 개국 350여 개의 기관들이 참여한 가운데 회의체(Coalition)를 결성하여, 연구평가에 대한 혁신보고서(Agreement on Reforming Research Assessment)를 채택하였다. 이 보고서에서 유럽대학들은 연구성과는 질(quality)과 영향력(impact)에 초점을 맞춰야 하며, 성과평가는 연구의 ‘질’과 ‘영향력’을 극대화하는데 기여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평가 대상으로 삼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구촌에 닥치는 위기적 도전과제들을 해결하는 데 방향을 맞추는 일이기도 하다. 

이 보고서는 참여하는 대학들에게 연구평가와 관련하여 다음 네 가지 내용을 지켜야 할 핵심 약속사항으로 제시하고 있다. 첫째, 연구평가에서 연구 영역의 특성을 고려하며, 연구성과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과정과 관련 주요 요소들을 평가하여야 한다. 또한 연구 활동 및 성과가 학문 발전과 사회의 유익에 기여하는 다양한 영향을 찾아 인정해주어야 한다. 둘째, 연구평가는 동료평가를 중심으로 질적 평가에 기반을 두어야 하며, 양적 지표 사용은 그 연구의 질과 영향력에 대해 실질적인 의미를 가질 때로 제한해야 한다. 셋째, 연구평가에서 저널 영향력 지수(IF)와 h-인덱스 등 출판물 기반의 계량적 도구를 부적절하게 사용해온 기존 관행은 버려야 한다. 넷째, 연구평가에서 연구기관에 대한 랭킹의 사용은 피해야 한다. 이 협의체는 참여하는 기관을 확대하며, 2027년 말까지 이 보고서에서 제시하는 연구평가 방식을 전면적으로 적용시켜나갈 계획이다. 이러한 약속 사항은 결국 대학의 경쟁력은 본질, 가치, 영향력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대학들은 현재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은 물론 사회가 대학 경쟁력을 국내외 대학 평가 순위 등의 계량적 지표로 인식하고 있다. 이에 지표 자체가 교육과 연구의 목표가 되었고 대학은 획일화되었다. 다행히도 요즈음 질적 평가를 도입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도 대학 스스로 매년 발표되는 국내외 각종 대학평가 순위에 일희일비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좋은’ 저널 게재, 저널 영향력 지수(IF), 피인용횟수, h-인덱스 등으로 인정받아왔다. 이러한 지표 중심의 성과가 국가 경쟁력에는 실질적으로 어떤 도움이 되는 것일까? 지구촌 문제 해결에는 어떤 기여를 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세계적인 학자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2013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랜디 셰크먼 UC버클리 교수는 한국에서의 인터뷰에서 네이처, 사이언스 등의 학술지는 상업화되었으며 학계 발전에 독이 되고 있다고 하였다. 그는 또한 연구자에게 특정한 방향을 정하지 않고 지원해야 혁신적 발견이 이뤄질 수 있다고 하였다. 작년 7월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교수도 뭘 해야겠다고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목표를 정확히 두지 않으면 지적으로 재미있고 흥미로운 시도를 할 가능성이 생긴다고 하였다. 연구 과정에서 '자유로움'이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노벨상은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 엉뚱한 방향, 부주의, 실수하는 과정 등에서 많이 나왔다. 

요즈음 우리 대학들의 상황은 어떠한가? 등록금 동결, 학령인구 감소, 재정 악화, 대학 구조조정 등과 더불어 정부의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사업, 글로컬대학 사업 등에 예민해져 있다. 첨단산업 인재 수급과 의대 쏠림 현상, 의대 정원 확대 논란 등이 오늘의 대학 관련 뉴스의 핵심 용어들이다. 이러한 사회 환경 속에서 그동안 한국 대학들은 많이 힘들었으며 지쳐있다.

그런데 지구촌 전체를 볼 때 다가오는 몇 년간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인류의 미래 생존을 결정하는 중대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는 점에 긴장해야 한다. 정부, 강대국, 기업뿐만이 아니라 개인, 가정들도 즉각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대학이 역사의식, 시대정신을 가지고 위기 극복에 앞장서야 한다. 대학의 존재 이유다. 기후재난뿐만 아니라 AI, 팬데믹 그리고 미∙중 갈등, 북학 핵 위협, 양극화, 저출산 등 수 많은 과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우리 대학들은 문명사적 대전환이라는 새로운 변곡점에서 그동안 추구했던 방향과 가치에 대해 성찰해봐야 한다. 대학 경쟁력은 기존의 획일적, 외형적, 계량적 개념에서 벗어나, 다양성, 맞춤형 기반의 ‘질’과 ‘영향력’의 관점에서 이해하여야 한다. 특히 ‘지속가능발전’ 등 대전환의 시대에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요소들을 중심에 두고, 기존의 첨단기술 인재양성, 창업 활성화 등의 과제들을 풀어가야 한다. 앞에서 소개한 유럽대학들이 만든 두 개의 보고서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제시하고 있다.   

현재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은 현안 중심, 재정 중심이며 기능적, 국부적, 분절적 접근으로 방향, 사람, 미래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대학들이 이러한 정부의 정책 프레임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현재 복잡하게 얽혀있는 대학들의 상황이 힘들고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의 길은, 정부와 사회를 기대하기에 앞서, 대학들이 먼저 자기 성찰부터 시작하여 본질, 가치, 영향력을 향해 깨어있는 것이다. 문명사적 이해의 수준을 높이며, 대학별로 시대에 기여하는 특성화의 길을 스스로 적극 찾는 일이다. 이는 이 시대의 강력한 요구이며, 대학이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는 방책이다. 


민경찬 논설고문/연세대 명예교수·과실연 명예대표

연세대 수학과 명예교수로 연세대 대학원장, 대한수학회 회장, 국제퍼지시스템협회(IFSA) 집행이사 및 부회장, 교육과학기술부 정책자문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과학기술분과 의장, 포스코청암재단 이사, 국무총리 소속 인사혁신추진위원회 민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과실연 명예대표, 태재학원 감사, 국가인재경영연구원 이사장,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자문위원회(SAB) 위원장 등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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